[김윤세의 산정무한] 곳곳에 '출입금지'…산에, 길이 지워진다

김윤세 본지 객원 기자, 인산가 회장 2023. 11. 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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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지리산 벽송사 길
와불산 능선전망대에서 본 지리산 하봉 두류봉

2023년 10월 말까지 총 70회 산에 올랐다. 지난 10월 28일 토요일, 인산가 웰니스 호텔에서 열린 '바른 지역 언론연대 워크숍' 1박2일 행사를 마친 뒤 29일 오전 10시에 지리산 벽송사로 이동해 11시 20분 단독으로 70회차 산행에 나섰다.

이날, 대략 산행 시간을 추산해 보니 목적지 와불산까지 거리는 4km, 왕복 8km이고 소요 시간은 5~6시간으로 예상됐다. 와불산은 흙산이고 주로 능선길을 걷게 되어 자일을 쓸 일이 없겠지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다소 무겁다고 생각하면서도 20여 m 길이의 자일과 8자 하강기, 헤드랜턴을 챙겨 배낭에 넣고 출발했다.

벽송사에서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오르다가 와불산 능선길로 접어들어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걷고 또 걸었다. 출발 지점으로부터 약 2km 거리를 막 지날 즈음, 국립공원공단에서 세워놓은 듯한 푯말이 뽑혀 나뒹구는데 그 위로 낙엽들이 쌓여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워 낙엽을 치우고 확인하니 '출입 금지' 푯말이었다.

그 푯말 너머로는 '등산객들의 출입이 거의 없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등산로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낙엽이 쌓여 길을 구별하기 어려운 등산로를 따라 걷다가 렘블러 앱을 통해 확인하니 약 2.7km 거리의 어느 봉우리이고 시간은 벌써 1시간 50분이 지나고 있었다.

와불산 미타봉에 놓인 정상표지석

초라한 정상석에 무거워진 마음

갈증도 심해지고 배도 고파서 그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탁여현 한 잔과 빵 한 개로 점심을 해결한 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산행을 이어갔다.

이곳부터 오르막 경사가 점차 심해지고 크고 작은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는 과정에서 몇 차례 길을 잃었다가 되찾기를 반복하면서 출발지점으로부터 4.5km 남짓 걸어서 큰 바위들이 겹겹으로 얽혀 거대한 석굴을 형성하고 있는 미타봉에 당도하니 벌써 오후 3시였다.

와불산은, 산의 건너편에 자리한 '견불동見佛洞'이나 고양마을 '견불사見佛寺' 역시 이 산으로 인해 이름이 붙여졌을 정도로 유명한 산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 하봉을 거쳐 와불산 정상인 향로봉으로 솟았다가 다시 장대한 흐름을 이어가 산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자리한 벽송사는 벽송 지엄碧松智儼 선사에 의해 1520년 창건된 고찰로서, 억불숭유정책으로 인해 끊어질 뻔했던 조선불교의 법맥을 다시금 이어지게 만든 유서 깊은 절이다.

와불산 미타봉에서 본 지리산 하봉 두류봉

미타봉에 당도해 이곳저곳 둘러보니 한쪽 모서리 조그만 바위 위에 한자로 '臥佛山' 이란 글자를 새긴 정상 표지석이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최소 500~600m를 더 올라야 하는데 '아마도 정상 표지석을 운반하다가 너무 힘들어 이곳에 세워놓고 간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마저 든다.

애초 예상했던 산행 거리보다 500m 이상 더 걸은 데다 몸도 지칠 대로 지치고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제 그만 더 이상의 오르막 산행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 하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추의 낙엽이 지운 길을 더듬다

그러다가 문득 월간山에 와불산 산행기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금 몸과 마음을 추슬러 정상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나갔다.

힘겹게 30분쯤 더 걸어서 마침내 해발 1,213.9m의 와불산 정상에 당도하니 상내봉(향로봉)이라고 쓴 조그만 푯말이 서 있고 조금 더 걸으니 함양 독바위 쪽으로 가는 길과 산청 공개 바위 쪽으로 가는 길로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해는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4시 15분이다. 이곳까지 오는 데 4시간 55분이 소요됐고 총거리는 5.1km에 달해 다시 출발했던 지점으로 내려갈 일에 걱정이 태산 같아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다소 험준한 바위 벼랑길을 만나 자일을 꺼내 벼랑 위 나무에 건 뒤 두 손으로 자일을 움켜쥐고 조심조심 10여 m를 내려와 한쪽을 당겨 자일을 회수한 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만추의 낙엽이 이어졌다 끊어졌다가 하는 산길을 뒤덮어, 길인가? 생각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곤 하는 횟수도 점점 많아지고 설상가상으로 어둠이 내리깔리기 시작한다. 갈 길은 아직 멀었는데….

배낭에서 헤드랜턴을 꺼내 모자 위에 쓴 뒤 사방이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데다 낙엽으로 뒤덮인 산길의 윤곽만을 희미하게 비춰주는 불빛을 따라 조심조심 힘겨운 발걸음을 옮긴다. 몸은 지치고, 배낭은 무겁고, 밤 산길은 어둡고, 시간은 더디게 흐르니 그야말로 끝없는 고통의 바다苦海를 힘겹게 항해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심경을 읊은 법구경의 한 글귀가 떠오른다.

"잠 못 드는 이에게 밤은 길고不寐夜長/지친 사람에게 길은 멀어라疲倦道長/어리석은 자에게 생사윤회의 고통은 끝이 없나니愚生死長/바른 법을 모르기 때문이리라莫知正法"

캄캄한 어둠 속의 산길을 오로지 희미한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1시간 30분 걸은 끝에 마침내 출발 지점인 벽송사에 도착했다.

지리산 하봉을 배경으로 필자.

합리적 근거 없이 길을 막는 정책이 옳은가

이번 와불산 산행을 통해 우리나라 4,000여 개의 주요 산에서 산길이 사라져가고 있는 무서운 현실을 절감했다. 환경을 보존하고 자연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곳곳에 '출입 금지' 푯말을 세워놓고 국민의 공원인 국립공원에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출입을, 이해 납득할 만한 뚜렷한 합리적 근거 없이, 그리고 기약도 없이 막고 있는 산림 및 국립공원 관리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크고 작은 대부분 산에서 예부터 있었던 길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공사公私 간에 볼일이 있어서 산을 가거나 산행 중 길을 잃고 조난당했을 때 조난현장으로 접근하는 뚜렷한 길도 없는 데다 우거진 숲과 가시덤불이 앞길을 막아 구조조차 불가능해져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없게 되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말아야 하겠다.

전국 산들의 주요 산길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산림청 공무원이나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에게 임무를 부여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우리나라 주요 산의 산길을 지도에 표시하고 그 산길이 황폐해지지 않도록 지속해서 관리하는 등 산길의 유지보수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산가 김윤세 회장

인산가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의 유지를 펴기 위해, 차남인 김윤세 現 대표이사이자 회장이 1987년 설립한 기업이다. 인산 선생이 발명한 죽염을 비롯해 선생이 여러 저술을 통해 제시한 물질들을 상품화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2018년 식품업계로는 드물게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죽염 제조를 기반으로 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다. 김윤세 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내 안의 의사를 깨워라〉, 〈내 안의 自然이 나를 살린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노자 사상을 통해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한 〈自然 치유에 몸을 맡겨라〉를 펴냈다.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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