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90세, 교인 평균 80세… “우리 교회선 70세는 청춘”

김한수 기자 2023. 11.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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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교회’ 올해로 20년 맞아
11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 늘푸른교회에서 늘푸른합주단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우리 교회에선 70세면 ‘청년’입니다.”

교인 평균 연령 80세, 최고령 교인은 100세, 김연기 담임목사 90세... 매주 일요일 오전 서울 인사동 태화복지재단 지하 1층 강당을 빌려 예배 보는 ‘늘푸른교회’다. 이 교회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 소속 만 70세 이상 은퇴한 원로 목사와 사모(부인)들이 모여 예배 보는 교회다. 지난 9월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19일 오전 10시 30분. 11시 예배 시작까지는 30분 남았지만 이미 좌석은 백발 어르신들로 거의 다 차 있었다. 1주일 동안 예배만 기다리던 교인들이 일찍 출석하기 때문에 이 교회 예배는 5분 정도 일찍 시작하곤 한다. 강당 입구에서는 김연기 담임목사와 고(故) 나원용 종교교회 원로목사의 아내 천병숙(91) 여사가 교인들을 맞고 있었다. 예배의 모든 순서를 맡은 이들은 70~80대 어르신 교인들. 늘푸른성가대와 늘푸른합주단은 유니폼을 갖춰 입고 노래와 연주를 선사했다. 고령 교인들이지만 목소리는 우렁찼다.

지난 19일 늘푸른교회 예배에서 '손님'으로 찾아온 서울 종교교회 남선교회 합창단이 원로목사 부부 교인들 앞에서 특송을 부르고 있다. /장련성 기자

늘푸른교회가 창립한 것은 2003년 9월. 감리교신학대 52학번 동기인 김연기 목사와 나원용 목사가 은퇴하면서 “원로목사들끼리 모여 예배드리고 식사하고 차 마시고 교제하면 좋겠다”고 뜻을 모았다. 원로목사들은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담임하던 교회에는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은 것이 ‘원로목사 교회’를 구상한 이유였다. 두 목사는 선배인 고(故) 김봉록 목사에게 이런 뜻을 밝혔지만 단칼에 거절 당했다. “원로목사 교회? 다 해봤어. 그거 안 돼.” 그전에도 원로목사·사모 2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 적 있는데 얼마 못 가서 흐지부지됐다는 이야기였다. 이유는 역설적으로 ‘긴 설교’ 때문이었다.

나·김 목사는 이런 시행착오를 보완해 김봉록 목사를 담임목사로 모셔 교회를 창립했고 20년 동안 순항(順航)하고 있다. 설교는 30여 ‘교인’이 차례를 정해 맡고 있는데, 대개 25분 안팎에 맞추고 20분쯤 지나면 ‘사인’(?)을 드린다고 한다.

교인이 고령이기 때문에 출석 교인 수는 날씨에 많이 좌우된다. 중앙감리교회 담임목사를 은퇴한 후 3년 전부터 회계를 맡고 있는 정의선(78) 목사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90명 안팎이 모였는데, 그 사이에 많이 돌아가시고 연세도 많아져서 지금은 70명 안팎이 모인다”고 했다. 코로나로 예배 인원이 제한될 때에는 교인들이 너무 아쉬워해 1, 2부로 인원을 나눠 예배를 보기도 했다.

늘푸른교회의 자랑은 ‘나눔’이다. 이 교회는 담임목사 사례비와 임차료가 없다. 대신 헌금을 아껴 해외 한인 교회, 국내 미자립 교회와 기관 등을 돕고 있다. 2018년엔 감리교신학대에 역사박물관 설치를 위해 1억원을 기부했고, 예배 장소를 무료로 대여해주는 감리교 태화복지재단에 매년 성금을 400만원 내고 있다.

추수감사절이었던 이날 예배에서는 특히 ‘감사’란 단어가 많이 나왔다. 성가대의 찬양도 ‘날 구원하신 주(主) 감사’, 늘푸른합주단의 특별 연주도 ‘감사 찬양 주님께’, 설교 주제도 ‘시간과 영원에 대한 감사’였다. 이기춘(전 감신대 교수) 목사는 설교에서 “젊을 때는 설교 잘하기 위해 성경을 읽었는데 이젠 나를 찾기 위해 성경을 읽는다”며 “늙음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천병숙 여사는 “코로나 때는 예배에 모이지 못해 서운하고 아쉬웠는데 다시 모여 예배드리니 감사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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