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매력적 오답’이라는 난센스

기자 2023. 11. 2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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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수능이 끝났다. 대통령까지 나서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고 공언했지만, ‘매력적 오답’이라는 기상천외의 표현까지 등장시키면서 기어이 불수능을 만들었다. 재수생이 대거 등장한 이번 수능에서 적절한 변별력이 필요했다지만, 그 유탄을 고스란히 고3 ‘현역’ 수험생들이 맛봐야 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수능은 종을 울리는가?

이런 질문을 해 본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수능이 ‘좋은 수능’인가? 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그 기준은 미리 결정되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대학 선발 생태계의 전반적 지향점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참에 그 방향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첫째, 수능은 공정을 지향해야 하는가? 물론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의 수능은 공정성에 있어서 큰 결함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현역’들에 비해 재수생들에게 결과적으로 유리한 시험이기 때문이다. 이 불공정성으로 인해서 해마다 재수는 필수가 되어간다. 입시는 우선적으로 ‘현역’들에게 유리해야 하며, 재수는 기회 불균형에 대한 보조적 수단으로만 남아야 한다. 인구 감소와 경제활동인구 규모 축소 속에서 재수생, 취준생, 실업자군 등 정체된 인적 흐름을 촉발하는 정책은 교정되어야 한다.

둘째, 수능의 변별력은 높을수록 좋은 것인가? 그럴 리 없다. 과일을 깎는 칼이 너무 날카로우면 손을 베는 법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수능은 오히려 적당히 무딜 필요가 있다. 수능만으로 변별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어야 하고, 그것은 당연히 각 대학의 자체 전형을 통해 채워져야 한다. 수능의 칼이 너무 날카로우면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고, 그 왜곡은 우리 사회의 피라미드 구조를 더욱 가파르게 만든다. 수능이 변별해 낸 과도하게 민감한 차이가 결국 대학 서열을 뚜렷하게 확대 재생산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등의 서열은 전혀 객관적이지 않으며, 단지 전국화된 입학생들의 수능점수 비교를 통해 만들어진 허구적 신기루일 뿐이다.

셋째, 현재의 수능 열기는 영원할까? 그럴 수 없다. 수능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사회에서 나타날 구조적 변화와 운명을 함께할 것이다. 예컨대 인구 감소, 대학 통폐합, 인공지능과 직업 구조 변화, 고령화 사회, 이주노동자 증가 등의 흐름 속에서 수능이 뿜던 열기도 점차 고개를 숙일 것이다.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면 많은 대학들이 개방 입학 방식(open access)을 선택하게 될 것이며, 인공지능 영향 아래 의사와 변호사를 지향하는 입시 열기도 곧 내림세를 타게 될지 모른다. 학벌의 영향력도 점차 약화될 수 있다. 그럴 경우, 현재 같은 수능 변별력은 오직 최상위 대학 집단의 몇몇 학과들에만 필요한 차이가 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을 위한 게임 방식이 입시생 전체를 흔들고, 온 국가의 사교육을 유발하며, 수십만명에게 좌절감을 안기게 해서는 안 된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10년 이내에 수능은 자격고사 정도의 의미로 변할 수 있다. 또한 대학입시의 풍경도 과거의 추억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젊은 날의 ‘열공’을 통해 인생의 기회를 단번에 잡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대학이 하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가 ‘소멸’의 위기를 넘어 ‘부활’의 단계로 전환될 수 있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참으로 많다. 그 가운데 꼭 필요한 것은 교육과 대학입시를 보는 전 국민의 눈이 달라지는 것이다. 먼 남의 나라 이야기 같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5년 혹은 10년 안에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뉴노멀’의 세상이 닥친다. 이미 2022년에 비해서 2029년 전국의 초·중·고등학생 수는 총 20% 감소할 것이다. 지금처럼 GPT 등 인공지능 테크놀로지 속에서 병원, 법원, 교육 현장에서 의사, 변호사, 교사의 위치가 흔들린다. 2024년 후반이면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올해 교육부가 손질하고 있는 입시제도 변화가 적용되는 시기는 2028년이다. 하지만 지금 손보고 있는 그 제도 안에 미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휴먼 웰빙, 지속가능경제, 그리고 환경과 공존하는 삶 등을 포함한 삶의 전반을 완전히 바꾸는 포괄적 공론화 과정이 없다면 한국 사회는 이대로 침몰할 것이다. 그 안에서 수능의 ‘공정성’과 ‘변별력’은 더 이상 예전 방식을 고집할 수 없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생의 지위와 일자리가 결정되던 고부담 고위험 시험으로서의 수능은 2030년 이후의 한국 사회를 지탱해 낼 수 없다. 선진국으로 진입해가는 마당에 한국은 새로운 변신이 필요하다. 수능도 극복해야 할 것 중 하나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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