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후발 대학의 성장 비결

2023. 11. 2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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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인 1993년 11월 17일, 광주에 작은 이공계대학이 설립됐다.

그동안 한국의 대학들은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서울대를 전범으로 하여 나름의 종합대학 체계를 갖추려고 하면서 백화점식 학과 운영을 해왔다.

전통 있는 명문 사학들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그것도 비수도권에 생긴 대학들이 전국구 경쟁력과 국제적 수월성을 갖춘 학교로 성장한 사례를 국내에서는 대전, 광주, 대구, 울산에 차례로 생긴 4대 과학기술원과 포항의 포스텍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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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개교한 광주과학기술원
첨단분야 도전하고 국제화
교육·연구·창업 분야서 두각
글로컬 강소 대학 성공하려면
종합대 백화점식 운영보다는
유망분야에 R&D 역량 집중을

30년 전인 1993년 11월 17일, 광주에 작은 이공계대학이 설립됐다. 지금의 지스트(GIST), 광주과학기술원이다. 30주년 기념식 때 설립 초창기의 고락을 함께한 1기 대학원 입학생과 당시 교수였던 노학자의 회고사가 짠하면서도 묵직했다.

1기 입학생은 허허벌판 공사장에 최소 시설만 갖춘 채 문을 연 학교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무연고지의 신생 학교에 진학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기술 창업의 성공으로 보여줬다. 그는 모교에 대한 사랑으로 수년간 동문회장을 맡아왔다.

설립 교원으로 부임한 노학자는 행정동과 사무실이 없어서 인근 중학교 교실을 빌려 쓰던 상황을 회고했다. 선풍기도 없는 교실에서 한여름에는 모두 상의 속옷 바람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주변에 음식점이 없어서 공사장 함바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신발에 낀 흙을 털면서 학교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학교는 30년 안에 신생 대학 랭킹 국내 3위(세계 30위), 교원 1인당 논문 피인용 국내 1위(세계 2~5위), 매경대학창업지수 1위 등 교육·연구·창업의 다양한 영역에서 우수 대학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의 후발 대학이 이렇게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초기 교원이었던 노학자는 학교의 성공 비결이 유망한 전공에 집중하고 처음부터 국제화를 지향해 첨단 분야의 세계적 연구에 도전해온 전략에 있었다고 진단했다. 첫 학생 모집을 시작했을 때 전국에서 지원 서류가 들어와 높은 경쟁률을 나타내는 걸 보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이전에 있던 기관에서 연구하던 프로젝트가 아니라 초창기 교원들이 지스트에 와서 초기 학생들과 함께 처음 착수한 연구가 결실을 거뒀을 때 감격과 함께 학교가 본궤도에 올랐음에 안도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지역에 있고 작은 규모이지만 세계 수준의 수월성을 갖춘 대학으로 발돋움한 글로컬 강소 대학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대학들은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서울대를 전범으로 하여 나름의 종합대학 체계를 갖추려고 하면서 백화점식 학과 운영을 해왔다. 학과 간 칸막이, 공급자 중심 교육, 총장 권한의 한계 등으로 학과 간 정원 조정은 힘들었다. 그러다 학령인구 격감과 서울 집중으로 지역 대학들이 신입생 충원 및 존립의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된 학교에 5년간 1000억원씩 지원하겠다며 지역 대학들의 통폐합과 구조개혁을 유도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타성이 강한 조직을 개혁해 혁신적이고 경쟁력이 높은 기관으로 만드는 일은 어렵다. 그런 기관을 새로 만드는 일이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전통 있는 명문 사학들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그것도 비수도권에 생긴 대학들이 전국구 경쟁력과 국제적 수월성을 갖춘 학교로 성장한 사례를 국내에서는 대전, 광주, 대구, 울산에 차례로 생긴 4대 과학기술원과 포항의 포스텍에서 볼 수 있다. 모두 과학기술특성화대학으로서 기술 패권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기정학의 시대에 필수 무기인 과학기술 인재와 R&D 역량을 키우는 곳이다.

나는 국가정책을 연구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10년 있다가 지스트에 와서 8년을 보냈다. 낙후된 호남에 과학기술원 하나 건립해 달라며 30여 년 전에 외쳤다는 한 인사의 걸쭉한 말을 전해 들은 적 있다. 훌륭한 교원들을 모셔서 지역에 좋은 씨(유전자)라도 받으려고 하니 들어 달라고. 어쨌거나 그때의 설립 결정은 국가적으로도 좋은 투자였던 셈이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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