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미·일만 건조하는 '신의방패'의 요람, HD현중 특수선사업부 가보니

최호 2023. 11. 2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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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이 금단의 구역 '특수선사업부'를 언론에 최초 공개했다. 국가전략자산인 이지스구축함 등 특수선의 요람으로 그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쌓여있던 이 곳에서 'K-특수선' 경쟁력의 면면을 들여다 봤다.

HD현대중공업 내 특수선사업장에 정박중인 정조대왕함(왼쪽)과 충남함

◇우리손으로 만드는 '신의방패'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내 특수선사업부를 방문한 20일 오전, 나란히 정박 중인 충남함, 정조대왕함이 한눈에 들어왔다. 각각 미니·최신형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특수선으로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 경쟁력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장면이었다.

이지스함은 탄도탄 등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최초로 개념과 관련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름 그대로 '신의방패'와 같은 위력을 보여 국가전략자산으로 분류한다. 방공 전투 체계와 무기 관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대공 공격을 무력화하는데 해상에 투입하면 해역, 우군 세력 전체를 방어한다고 말할 정도로 압도적 전력을 자랑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4년 도입을 결정했고 배치-1 사업을 통해 당시 세종대왕함을 포함, 총 3척을 확보했다.

이날 공개한 정조대왕함은 HD현대중공업이 2019년 배치-2 1번함 사업을 수주, 지난해 7월 진수한 최신형 이지스구축함이다. 현재 시험평가 중으로 500여개 항목의 평가를 마치면 내년 11월, 해군에 인도된다.

정조대왕함은 8200톤급으로 길이와 폭은 각각 170m, 21m다. 축구장 크기의 1.5배 정도되는 이 배의 가격은 1조5000억원에 육박한다. 고부가가치 상선으로 분류되는 LNG운반선의 가격이 2~3000억원 안팎. 최고·최신의 무기체계와 기술, 설계 노하우가 집약됐기 때문에 상선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가격이 높은 게 특징이다.

배의 꼬리에 해당하는 함미에 오르자 가장 먼저 'ㅅ' 모양의 양갈래 레일이 눈에 들어왔다. 각 레일은 2개의 격납고로 이어지는데 헬기의 이동 통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미로같은 통로를 따라 곳곳에 문이 달려 있었다. 정조대왕함 내부는 총 500여개의 독립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한 공간에서 폭발, 침수 등 비상상황이 발생해도 문을 닫으면 피해가 외부로 확산되지 않게 설계됐다.

정조대왕함 선상 전경

함수로 자리를 옮겼다. 정조대왕함은 한국 최초로 해상에서 적의 탄도탄을 탐지, 추적, 요격까지 할 수 있는 '해상기반 기동형 3축 체계의 핵심전력' 역량을 갖췄다. 1000㎞ 밖에서 발사된 1000개의 공중 표적을 탐지해 요격한다. 선미에는 이러한 핵심전력 관련 기술과 설비가 집결돼 있다. 그러나 함포 1기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게 없었다. 탐지 능력의 핵심인 SPY-1D 위상 배열레이더나 신형 수직발사체계(VLS)를 모두 선체안으로 숨겨 노출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정조대왕함은 헬기 뿐만 아니라 무기체계 등을 모두 외부에서 탐지하게 어렵게 설계했다”면서 “RCS(레이더 탐지면적)를 최소화해 스탤스 기능을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다.

◇건조에 이어 체계통합 능력도 세계 정상

이지스구축함을 건조하는 나라는 현재 한국과 미국, 일본으로 한정된다. 단순히 조선 기술만 뛰어나다고 해서 이지스함을 건조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이지스구축함은 탐지, 요격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만큼 최고 기술·무기체계를 탑재한다. 정조대왕함에는 SPY-1D 위상 배열레이더, SM-6 요격미사일과 개선된 '통합소나(Sona)체계'와 '전기 추진체계(HED) 엔진' 등이 실렸다. 이와함께 '장거리 대잠어뢰 홍상어', 스텔스 선체, MH-60R 해상작전헬기를 적용해 대잠 방어 및 공격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대잠·대함·대공·대지를 아우르는 무기체계와 이를 운용하는 전투체계를 일체화하는 '체계통합' 능력이 이지스구축함 건조의 핵심 역량인데 이는 함정 건조 설계 단계서부터 구현된다.

HD현대중공업은 일찍이 체계통합 역량 강화에 주력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해군과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세종대왕함 이지스 전투체계를 도입할 당시부터 이지스 전투체계를 함정 플랫폼에 통합시키는 연동·통합 능력 내재화를 핵심 과제로 삼았다.

미 해군은 한국 해군의 성공적 이지스 함정사업을 위해 전투체계 제작사와 조선소 인원이 주축이 되는 전투체계통합팀(ITT) 조직 구성을 권고했다. 전투체계와 함정을 통합하고 운용할 수 있는 핵심 역량을 갖추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HD현대중공업은 기술인력 30여 명이 참여하는 ITT 조직을 국내 최초로 구성했다. 미 해군의 전투체계 개발 시설 내에서 실시된 이지스 전투체계 통합시험 교육을 이수토록 하는 등 각고의 노력끝에 세종대왕함 전투체계 인수 시운전에 참여, 전투체계 통합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ITT를 구성한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HD현대중공업은 세종대왕함 건조때 최적의 다기능위상배열 레이더의 선체 부착 방식을 고민했다. 회전형 레이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형식의 레이더를 부착해야 하는 숙제를 앞에 두고 당시 미국 측 실무자는 플랫폼 설계도를 그대로 차용해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HD현대중공업은 위험 부담을 안고 자체 설계에 착수했고 이 결정은 신의 한수가 됐다. 이지스구축함 독자 설계 기술을 보유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한국형 이지스구축함 개발 역량 확보로 이어졌다.

우리손으로 만든 이지스구축함은 '본가' 미국으로부터도 호평을 받고 있다. 최근 정조대왕함을 둘러본 미 해군 고위 장성은 “미국이 건조한 이지스함보다 훌륭하다”면서 “설계, 디자인상 비율이 아름다울 정도”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최태복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이사는 “연구개발(R&D)과 직접 설계를 통해 이지수구축함 체계통합을 구현한 경험과 기술은 국내에서 HD현대중공업만이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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