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지진 피한 바젤, 수능 전날 덮친 포항...같은 지열발전인데 무엇이 달랐나

이종현 기자 2023. 11. 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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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 국가 손해배상책임 인정한 법원
과학 무시하고 무리한 공사 강행이 지진 불러
스위스는 지진 나자 공사 멈추고 3년 조사
한국은 쉬쉬하다 대형 지진으로 큰 피해

2017년 경상북도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은 무리한 지열(地熱)발전 추진으로 인한 인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16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제1민사부가 3년에 걸친 소송 끝에 대한민국 정부와 주식회사 포스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법정 다툼이 일단락됐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에게 200만~300만원의 위자료를 줘야 한다”고 선고했다.

자연 재해로 여겨지는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왜 정부와 발전사업자가 물어주게 된 걸까. 사이언스조선은 이번 사건의 판결문을 입수해 산업통상자원부와 사업자들이 과학을 무시하고 사업을 초래한 결과 포항 시민들이 끔찍한 지진 피해를 겪게 된 사실을 분석했다.

지난 16일 경북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 집행위원회가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앞에서 2017년 11월 15일과 2018년 2월에 발생한 지진 피해에 대해 정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정신적 피해 위자료 소송에서 승소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지열발전은 죄가 없다… 잘못은 사람이 했다

지열발전은 지하 4㎞ 이상 깊이에 두 개의 구멍을 뚫고 한쪽에 물을 주입한 뒤 뜨거운 지열로 데우고, 이때 발생하는 수증기를 다른 구멍으로 빼내서 발전기 터빈을 돌리는 방식이다. 지열을 이용하는 발전 방법이기 때문에 주로 화산활동이 많은 지역에서 활용한다. 미국과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지열발전량 1~3위를 차지하는 것도 화산활동이 활발하고 지각 판의 활동이 많은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지열발전은 온실가스 배출이 없고 별도의 연료가 필요없는 친환경 에너지원이다. 원자력 발전처럼 방사성폐기물이 생기지도 않으니 안전만 담보되면 지열발전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열발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미국은 2050년 전체 전기수요의 10%인 100GWe를 지열발전으로 충당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한국은 비화산지대로 전통적인 지열발전에는 적합한 지역은 아니다. 하지만 국토 전역에 온천지대가 있고 특히 경상도 일대는 지온경사도가 높아 지열발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예전부터 있었다.

2010년 산업통상자원부(구 지식경제부)가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사업 신규지원 대상과제 공고를 하면서 지열발전을 포함시키면서 국내에서도 지열발전소 건설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넥스지오가 사업 주관기관을 맡고 포스코, 이노지오테크놀로지, 지질자원연구원, 건설기술연구원, 서울대 등이 연구에 참여했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은 사업 진행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참여했다. 사업단은 강릉, 석모도, 제주도, 울릉도, 포항 등 5곳을 후보지역으로 선정했는데 최소한의 경제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 포항이라는 이유로 포항이 최종 사업지로 결정됐다.

◇지진나자마자 멈춘 바젤, 쉬쉬한 한국

지열발전은 땅 속에 깊은 구멍을 뚫고 물을 주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지진의 위험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열발전을 활용하는 다른 국가들은 소규모의 미소(微小) 지진을 철저하게 관측하며 사업을 추진한다. 대형 지진의 전조 증상인 미소지진을 관측하고 대비하는 게 필수라는 것이다.

산업부와 포항 지열발전 사업단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2014년 4월 1일에 열린 산업부와 지열발전 사업단 관계자의 회의에서 산업부 담당 공무원은 이런 발언을 했다.

지열발전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미세진동 발생)이 발생하면 끝장이다.

2014년 6월에 산업부에 제출된 관련 연구용역 보고서에도 ‘수리자극은 필연적으로 미소진동을 유도하게 되는데 완벽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지진 발생 즉시 상황별 대응매뉴얼에 따라 주입압력을 줄이거나 유량을 즉각 감소시키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나온다. 지열발전 사업단은 2015년 12월에 ‘미소진동 관리방안’을 수립하기도 했다. 수리자극은 지열발전을 위해 지열정(구멍)에 엄청난 양의 물을 투입하는 걸 말한다.

이렇게 만반의 조치를 통해 대형 지진을 막은 사례도 있다. 스위스 바젤이다. 2006년 12월 8일 스위스 바젤의 지열발전소에서 5009m 깊이의 시추공에 수리자극을 하던 도중 규모 1이상의 지진이 100여 회 이상 발생하는 일이 있었다. 최대 규모는 3.4에 달했다. 바젤 주정부는 지열발전 프로젝트를 즉각 중단하고 전문가 그룹을 구성해 3년에 걸쳐 연구를 진행했다. 2009년 11월에 나온 조사 보고서에는 지열발전을 계속 개발했다면 개발단계에서 30번, 운영단계에서 최대 170번의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결국 바젤 주정부는 지열발전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제때 개발을 멈췄기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한국은 달랐다. 포항지열발전소는 2016년 1월 29일부터 2017년 9월 18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수리자극을 실시했다. 그런데 2차 수리자극을 하던 2016년 12월 23일 규모 2.2의 지진이 발생했다. 같은 달 29일에도 규모 2.3의 지진이 잇따라 일어났다. 3차 수리자극 종료 이튿날인 2017년 4월 15일에는 포항시 북구 북쪽 8㎞ 지역에서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했다. 4차 수리자극을 진행한 2017년 8월 14일에도 규모 1.8의 지진이 있었다. 5차에 걸친 수리자극 기간에 발생한 모든 지진을 합치면 331회에 달한다.

그래픽=손민균

수백회에 걸쳐 미소지진이 발생했지만 지열발전 프로젝트는 중단되지 않았다. 결국 2017년 11월 15일에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고, 2018년 2월 11일에 규모 4.6의 여진이 발생하며 포항 전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1차 지진은 2018년도 대학수학능력 평가를 하루 앞두고 발생해 사회적으로도 큰 혼란을 초래했다.

판결문은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했는데도 수리자극을 중단하지 않고 4·5차 수리자극을 강행한 과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돈 아끼려고 지진 위험성 검토도 패스

포항 지열발전소는 지열정을 만드는 시추 과정부터 문제가 적지 않았다. PX-2 시추 과정에서 지하 3800m 지점에서 이수가 집중 누출됐고, 단층비지대도 확인됐다. 단층비지대는 단층 중심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단층활동이 있다는 증거다. 원마도가 좋은 암편이 발견된 것도 단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였다.

하지만 사업단은 비용 문제를 들어 추정 단층의 규모나 방향을 파악하는 지진 위험성 검토를 생략했다. 지하 4200m 지점에서 추가 이수 누출로 또 다른 추정 단층이 나타났지만 역시나 정밀한 조사는 생략했다.

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던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수리자극이 더 큰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자체 분석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업단은 주입한계량을 넘어서는 수준의 5차 수리자극에 나섰다. 5차 수리자극 시 사업단 현장소장은 320㎡의 물을 더 주입하겠다고 사업단에 통보했는데 실제로는 당초 계획의 5배에 달하는 1722㎡의 물을 주입했다.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한 시점부터 사업을 중단해야 했지만, 오히려 정해진 한계량을 넘어서는 물을 주입하는 등 과학적 근거 없이 주먹구구로 사업이 진행된 셈이다. 유발지진을 관측하는 업무를 맡고 있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역시 3~5개의 지진계를 동시에 운영해야 하지만, 1개의 지진계만을 이용해 지진을 감시하는 날이 많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깜깜이 상태에서 단층을 두드려댄 격이었다.

◇물 주입이 직접적인 원인… 응력 쌓일대로 쌓인 것도 맞아

포항 지진의 원인을 놓고 과학계에서는 지열발전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당시 홍태경 연세대 교수는 물 주입보다는 동일본 대지진과 경주 지진의 여파로 응력(應力·물질을 변형시키는 힘)이 쌓여 지진이 일어났다는 분석을 내놨다.

2017년 포항 지진 발생 과정./조선DB

실제로 2017년 11월 15일 당시 포항 지역의 공극압은 0.55~0.57로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분석됐다. 정부조사연구단이 2019년 3월 발표한 조사보고서도 “지진이 발생한 단층은 자연 상태에서 임계치의 응력이거나 이에 근접한 상태였다”고 평가했다.

법원의 판단은 명확했다. 응력이 쌓일대로 쌓여 있던 상태는 맞지만, 결국 방아쇠를 당긴 건 지열발전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단층이 임계응력상태인 경우 작은 공극압의 변화에도 지진이 촉발될 수 있다”며 “3차 수리자극이 종료된 직후인 2017년 4월 15일 두 개의 지열정 사이 단층에 0.1MPa 이상의 공극압이 증가했고, 5차 수리자극 이후 약 두달이 지난 시점에도 지열발전소 인근 단층대에 0.02MPa 이상의 공극압 변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극압이 0.02~0.06MPa 만큼 증가하는 경우 지진 발생빈도가 커지는데, 수리자극이 이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정부조사연구단을 이끈 이진한 고려대 교수도 “지열정 굴착시 발생한 이수 누출과 지열정(PX-2)을 통해 높은 압력으로 주입한 물에 의해 확산된 공극압이 포항지진 단층면 상에 남서방향으로 깊어지는 심도의 미소지진들을 순차적으로 유발했다”고 설명했다.

참고자료

대한지질학회, doi : http://data.doi.or.kr/10.22719/KETEP-201904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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