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12일 밤, 결말을 알아도 심장은 요동칠 것

신정선 기자 2023. 11.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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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개봉한 역사 영화 ‘서울의 봄’
위에서부터 황정민(극 중 전두광·실제 전두환), 정우성(이태신·장태완), 박해준(노태건·노태우).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22일 개봉)은 올해 나온 한국 영화 중 가장 박력 있는 작품이다. 쿠데타군과 진압군이 맞선 1979년 12월 12일 그날 밤 역사의 고동을 2시간으로 압축해 관객의 심박수를 끌어올린다. 순간의 판단이 전세를 가르고, 잠시의 오판이 패배로 이어진다. 허점이 기회가 되고, 기회가 실책으로 바뀌는 찰나의 숨가쁜 공수(攻守) 전환은 환호와 탄식을 오가게 한다. 결말을 알고 보는데도 긴장되는 역사물의 밀도란 이런 것이다.

상황을 장악한 인물은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실제 인물 전두환)이다. 전두광의 집요한 목적 의식은 진압군의 우왕좌왕과 대비된다. “내 한마디면 그 집 개도 간첩으로 만들 수 있다”는 오만함, 육사 동기인 노태건(박해준, 실제 인물 노태우)에게 “쪼매만 도와도”라며 애걸하는 능수능란함까지 갖췄다. 전두광은 마지막에도 승리에만 젖지 않고 역사의 후과(後果)를 감지하는 걸로 묘사된다. 그가 마침내 감정을 터뜨리는 곳은 배설의 공간 화장실이다. 이 장면에서 황정민은 오래 기억될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다.

끓어오르던 영화는 감독이 선과 악의 최종 대결로 설정한 종반부에 이르러 오히려 차게 식는다. 한국 영화로는 드물게 무자비할 정도로 끝까지 밀어붙였던 김 감독의 전작 ‘아수라’(2016)의 악력(握力)이 이번 작품에서는 힘을 잃었다. 역사의 단죄자이자 관객의 대리인으로 등장하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실제 인물 장태완)에게 지나치게 감정을 들이부었다. 그가 군인이 아니라 열사나 선비처럼 대의명분과 정의, 선(善)의 수호자로 나설 때마다 영화가 아니라 동화가 된다. 전두광을 단죄하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넘어 돌진하는 장면에선 이태신도 장태완도 아닌 배우 정우성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온다. 감독도 정우성도 원한 결과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태신 인물 설정은 진상과도 가장 거리가 있다. 실제 장태완 사령관은 마지막에 바리케이드를 건너가 맞선 것이 아니라 공격을 포기하고 사령관실로 돌아갔다가 체포됐다. 전세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부하들을 살리기 위한 선택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는 선도 악도 아닌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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