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0년 전에도 인류 괴롭힌 감기…이집트 상형문자로 기록 [노석조의 외설]

노석조 기자 2023. 11. 2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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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의 치료술 관련 한 장면. /에버스 파피루스

뉴스레터 ‘외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신지요? 저는 지난 며칠 내내 심한 감기 몸살을 앓아 고생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코를 찔러봤는데, 코로나나 독감은 음성이었습니다. 일반 감기였다는 것인데, 참으로 독하네요.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두통과 오한으로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외설을 펑크 내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됐습니다. 고민하다가 이를 꽉 깨물고 마감을 하기로 했습니다. 주제는 저를 비롯해 요즘 환절기를 맞아 많은 분을 고생시키는 감기로 잡았습니다. 외서, 외국 논문을 뒤져보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인류와 함께해온 ‘감기’

막연하게 감기는 참 오래됐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요. 사실상 인류와 거의 함께해온 녀석이었습니다. 최초의 종이인 고대 이집트의 발명품 ‘파피루스(Papyrus·영어 페이퍼의 기원이죠)’에도 상형문자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파피루스는 무려 기원전 2500년 전 발명된 것인데요, 올해가 2023년이니 4500여년 이미 감기가 요주의 대상으로 우리 인류의 기록 대상이었다는 셈이 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호흡기에 대한 상형문자가 시대별로 다양한 형태로 쓰여졌음을 보여준다. 상단 왼쪽의 A부분의 상형문자는 가장 흔하게 쓰인 호흡기 표시 상형문자다. 상단 오른쪽 B부분은 고대 이집트 초기 왕조의 깨진 항아리에서 발견된 것인데, 두 개의 상형문자 사이에 호흡기 상형문자가 놓여 있는 형태다. 하단 왼쪽 C는 6번째 고대 이집트 왕조의 왕실 항아리에 새겨진 호흡기 상형문자이고, D는 18번째 왕실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러면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로 감기는 어떻게 형상화했을까요? 야쿱 크비친스키 박사의 논문 ‘고대 이집트의 호흡기 시스템에 대한 이미지들’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감기가 호흡기 문제이기 때문에 치료법을 설명하는 여러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문서에서 호흡기 부분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호흡기를 나타내는 상형문자는 동일하지 않았습니다. 고대 이집트 왕조별로 상형문자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야쿱 크비친스키 박사는 호흡기에 대한 4가지 형태의 고대 상형문자를 발견했습니다. 4000년 전 이미 이러한 의술을 갖고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코가 막혔으면 동물기름으로 문질러라”

에버스(1837~1898). 베를린 태생의 이집트학자이다.

‘에버스 파피루스(Ebers Papyrus)’라고 알려진 파피루스에서는 코막힘 감기에 대한 기록이 발견됐습니다. 이건 1987년 독일의 이집트학자인 게오르크 에버스가 구해 연구해서 그의 이름이 붙여진 파피루스인데요. 바로 고대 이집트의 의학서입니다. 기원전 1550년쯤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서 중의 고서입니다. 이런 고서가 19세기에 발견돼 외국인에 팔려 넘어가다니 고대 이집트 유물은 수없는 도굴로 난장판이 됐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연구가 된 것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에버스 파피루스는 총 20m 길이로 110쪽으로 구분돼 있습니다. 당시 이집트의 의학지식과 치료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수술 방법뿐 아니라 마법 주문, 영적 치료 같은 것도 포함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는 귀한 자료인 것입니다.

에버스 파피루스에는 피임, 당뇨병, 모발 내향증, 변비 등 여러 사항에 대해 설명이 있는데요, 여기에 환절기 우리를 괴롭히는 ‘감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변비, 당뇨병, 피임법 등도 우리 인류와 참으로 오래전부터 함께했나 봅니다. 파피루스에 감기와 함께 기록돼 있으니까요.

에버스 파피루스.

일단 코감기(코막힘)에 대해 에버스 파피루스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콧물을 뱉어내라, 점액의 아들아. 뼈를 잡고, 두개골을 만지며, 동물기름으로 문질러라. 환자에게 주어라, 머리에 있는 일곱 개의 구멍을 치료하라, 라의 신에게 봉사하고, 토트 신에게 감사하라. 그리고 나는 너를 위한 치료제를 가져왔다, 너를 위한 음료를 가져왔다, 쫓아내고, 치료하기 위해. 아들을 낳은 여자의 우유와 향기로운 빵.”

살펴보면 콧물을 뱉으라거나 두개골을 만지고, 동물기름으로 문질러라, 치료제를 가져왔다 같이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면서도 종교적인 실천사항도 요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학자는 이런 에버스 파피루스를 통해 당시 고대 이집트가 상당히 종교적이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긴 미라나 피라미드를 생각해보면 고대 이집트, 더 나아가 인간이란 게 삶에 대해, 사후 세계에 대해 끝없이 의문을 갖고 생각에 잠기는 동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프면 별생각이 다 든다고 하는데, 며칠 감기로 앓아누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요. 한두 가지만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당뇨병 입니다.

“노란 딱총나무, 아싯 식물 섬유, 우유, 맥주 찌꺼기, 오이 꽃, 푸른 대추를 포함한 혼합물을 마신다.” 다만 아싯이 무엇인지는 학자들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변비.

맥주와 함께 베리 조각을 씹어 먹으면 완화가 된다.

피임.

“임신을 막기 위해서 대추, 아카시아, 꿀을 섞어 양털에 발라 페서리(pessary)로 사용한다.”

◇감기가 인류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

감기는 대체 왜 이렇게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계속 배회를 하며 인류와 함께해온 걸까요?

자료를 찾아보니 감기가 박멸되지 않고 끈질기게 생존하며 인간의 몸에 스며들어올 수 있는 것이 이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감기의 원인인 바이러스가 계속 변이를 일으키며 수백 가지 변종을 만들어 내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박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끝없는 변화와 혁신? 뭐 이런 기업인 정신 같은 걸로 감기가 생존했다는 얘기입니다.

바이러스의 이러한 다양성과 변이 능력은 인체의 면역 체계가 특정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을 개발해도, 다른 감기 바이러스에는 취약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전문가들은 바로 이런 점이 감기가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주된 이유라고 입을 모읍니다.

문득 저는 챗GPT4에게 감기가 인류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이 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인류와 공존한 녀석이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어떤 쪽으로든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 생각이긴 하지만요. 그랬더니 챗GPT4는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습니다.

감기가 인류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1.면역 체계의 강화: 감기는 인체의 면역 체계를 활성화하고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감기는 면역 체계가 다양한 병원체에 대응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2.과학 및 의학 연구의 발전: 감기 연구는 바이러스학, 면역학, 감염병 연구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해왔습니다.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바이러스의 전염 방식, 면역 반응, 치료 및 예방 전략에 대한 이해가 증가했습니다.

3.질병 감시 및 대응 능력 향상: 감기는 공중 보건 및 질병 감시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다른 심각한 질병들을 감지하고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기여합니다.

4.일상 생활에서의 건강 관리 인식 증진: 감기는 손 씻기, 기침 예절, 건강한 생활 습관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이러한 일상적인 건강 관리 습관은 다른 질병의 전파를 줄이는 데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감기는 여전히 불편함과 일상 생활의 방해를 초래하는 흔한 질병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름 감기가 더 큰 질병을 예방하고 연구하는데 시험판 같은 역할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인체의 면역력도 강화하고요. 특히 저는 4번이 공감됐습니다. 이번에 감기에 호되게 당하면서 ‘건강한 생활 습관’과 관련해 ' 참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에 깊이 반성했거든요.

챗 GPT 대답엔 없는 한 가지를 저는 이번에 더 느꼈는데요. 바로 감기로 겸허한 마음을 ‘잠시나마(?)’ 갖게 됐다는 것입니다.분명 감기가 씻은 듯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 듯 까맣게 잊겠지만요, 며칠 동안 골골 되면서 얼마나 인간이란 게 나약한 존재인지, 건강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되새겼습니다. 아프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이상 외설이었습니다. 쓰다 보니 상태가 신기하게 호전된 것 같습니다. 독자님들도 감기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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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외설’ 다시 보기]

하마스는 이집트판 주사파의 팔레스타인 프락치

●하마스는 ‘이집트판 주사파’의 팔레스타인 ‘프락치’였다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3/11/14/XCQXI72HXND67CEHIH6P7VB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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