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을 품에 안고 자폭하는 이상한 속편, '독전2'

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2023. 11. 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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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사진=넷플릭스

화제작의 속편 제작 소식이 확정되면 관객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다. 많은 한국 영화들이 엔딩 장면에서 후속편에 대한 여지를 남겨도 제작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해영 감독의 범죄 스릴러 '독전'은 2018년 5월 개봉해 관객 520만 명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마약 조직의 보스를 쫓는 형사 이야기는 식상할 수도 있었으나 반전과 열린 결말, 배우들의 열연과 독특한 캐릭터들 덕분에 화제작 반열에 올랐다. 여세를 몰아 그해 7월에는 다른 결말을 담은 '독전: 익스텐디드 컷'을 공개하며 화제를 이어갔다. 

2022년 '독전 2' 제작 확정 소식이 들려왔을 때 반가움과 동시에 우려가 일었다. 한국 영화 최초로 '미드퀄'을 시도하는 작품에다가 후속편을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 영화로 만난다는 신선함이 '독전'에 대한 흥미를 다시 일으켰다. 전편에서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보여준 이해영 감독에 이어 데뷔작 '뷰티 인사이드'(2015)로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인 백(종열) 감독이 속편을 맡아 기대를 더했다. 다만 1편의 핵심 인물이었던 마약 조직원 서영락 캐릭터가 류준열에서 오승훈 배우로 바뀐 캐스팅은 어떻게 작용할지 미지수였다. 

5년 만에 돌아온 '독전' 속편은 전편 줄거리를 요약하면서 시작한다. 악명 높은 마약 조직의 보스 이선생을 잡으려는 주인공 조원호(조진웅) 형사, 이선생을 사칭하다가 응징당한 브라이언(차승원) 이사가 2편의 중심인 만큼 두 캐릭터를 중심으로 전편을 정리하고, 서영락과 그를 돕는 농아 남매가 전편 마지막에 노르웨이로 가기 전까지 행적을 드러내며 새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서영락이 브라이언을 죽이지 않고 벌하는데 그친 이유를 비롯해 전편의 특정 장면들이 플래시백으로 등장해 2편의 새로운 퍼즐을 제공한다. 

사진=넷플릭스

2편에서 서영락을 연기한 오승훈은 차분한 모습으로 등장해 캐릭터를 이어간다. 서영락의 행방을 추적하는 원호와 팀원들, 서영락에게 반격을 준비하는 브라이언, 그리고 한효주가 연기하는 마약 조직 간부 '큰칼'이 새롭게 얽히며 또 한 번 거대한 마약 전쟁이 벌어진다. '독전' 1편을 재밌게 본 이들이라면 전편의 틈새를 공략해 숨겨진 이야기와 캐릭터를 끌어내는 '미드퀄'의 묘미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전 2'는 다시 '이선생 찾기'라는 의외의 선택을 한다. 

1편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주인공 원호가 그토록 잡고 싶어 했던 이선생은 그의 바로 옆에서 수사에 협조하던 조직원 서영락이었다. 노르웨이에서 재회한 원호와 서영락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다가 총성 소리로 끝난 1편의 열린 결말은 익스텐디드컷에서 둘 중 한 명만 살아남는 결말로 맺어지는 듯했다. 한데 2편은 1편에서 일단락된 이선생의 존재를 번복한다. 서영락도 이선생이 아니었고, 그마저 진짜 이선생 찾기에 뛰어든다는 2편의 설정은 한국 영화에서 반전 캐릭터로 꼽을 만한 주인공 캐릭터를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1편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가 바뀌었기 때문에 캐릭터 몰입에 대한 약점을 지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같은 인물을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이유를 극 안에서 자연스럽게 설명하거나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다. 이선생을 찾는 새 판을 짜고 새로운 얼굴의 서영락을 도구화할 뿐이다. 오히려 전편의 빌런 격인 브라이언과 새로운 빌런인 큰칼의 비중을 키우는 패착을 두면서 서영락을 주연보다 조연에 가까운 인물로 강등한 것처럼 보인다. 미드퀄이기에 극중 다른 캐릭터를 부각하는 허용이 가능하다고 해도 영화 안팎으로 소외된 서영락 캐릭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사진=넷플릭스

'독전 2'가 무너뜨린 주요 캐릭터는 서영락뿐만이 아니다. 전작에서 고 김주혁이 연기한 중국  마약시장의 거물 진하림의 젊은 시절을 변요한이 연기해 캐릭터를 환기하는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인물 배경이 전작과 달라지면서 혼란을 불러오고, 주요 캐릭터 큰칼과 관계성이 모호하게 그려지면서 진하림 캐릭터 또한 수단으로 쓰이는 데 그치고 만다. 전편에서 강한 개성으로 인기를 모은 농아 남매는 2편에서 주요 캐릭터로 부상했으나 이름까지 바뀌고 전편과 같은 장면에서 다른 연기를 하는 수모를 겪는다.

전편 '독전'은 주조연 모두를 돋보이게 만든 캐릭터 무비였다. '독전 2'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주조연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역할에 힘을 쏟는 배우들의 연기가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전석호, 이상희, 양익준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얼굴을 내밀지만 단역 캐릭터에 머물고, 조단역에 가까운 캐릭터가 액션과 드라마의 키를 쥐고 활약하는 모습을 생뚱맞게 부각하는 식이다. 이러한 연출마저 전형적이다. 캐릭터들의 향연이 되어야 할 영화가 캐릭터들의 무덤이 되어버리니 진짜 이선생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일말의 감흥을 안겨주지 못한다.  

'독전 2'는 시리즈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본말전도를 연출하고 말았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을 만들겠다는 야심이 지나쳐 오판을 부른 것인지, 흥행을 입증한 인기 콘텐츠의 드라마화 가능성을 여러 갈래로 시험해 본 것인지 제작 의도에 깊은 의문을 품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독전 2'는 독이 된 속편이 되고 말았다.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새로운 형식이 아니다. 캐릭터와 이야기에 흠뻑 몰입할 수 있는 시나리오와 연출을 바라는 게 무리한 요구일까. 전작보다 뛰어난 속편이 나오기 힘들다는 건 모두가 익히 잘 안다. 하지만 전작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파괴하며 자멸하는 속편의 등장은 심히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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