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DJ도 들었던 “젖비린내 나는 놈”…고대 로마땐 다른 뜻이었다? [김기정의 와인클럽]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3. 11. 1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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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의 와인클럽 25- 파스퇴르와 와인

루이 파스퇴르
사람이 소의 젖, 즉 우유(牛乳)를 비롯한 다른 동물의 젖을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지 아시나요?

‘우유의 역사’라는 책에 따르면 약1만 년 전부터라고 하네요. 하지만 인간이 우유를 일상에서 안심하고 마시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루이 파스퇴르가 1864년 ‘저온살균법’을 개발할 때 까지 우유는 생명을 위협하는 ‘하얀 독약’에 더 가까웠습니다.

우유 유통의 혁신을 가져온 ‘저온살균법’은 파스퇴르가 와인의 발효와 부패를 연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파스퇴르와 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한국 우유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이유도 파헤쳐 보겠습니다.

젖비린내 나는 놈! 무슨 뜻일까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얼마 전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60)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50)에 대해 “어린 놈”이라고 비하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보통 어린 놈이란 의미로 “젖비린내가 난다”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지난 1969년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에선 박정희 정권의 거대 여당에 맞서기 위해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을 들고나오고 김대중, 이철승도 호응합니다. 신민당의 당수 유진산은 “입에서 젖비린내가 나는 정치적 미성년자들이 무슨 대통령이냐”고 평가절하합니다.

“젖비린내 나는 놈”이란 표현은 고대 로마에서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젖비린내 나는 놈”의 뜻이 어린 놈이라기보다는 무식하고 미개하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로마 시대 우유는 하층민의 음료였습니다. 냉장유통, 저장시설이 덜 발달해 있던 당시에 신선한 우유는 농장에서만 마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인들에게 우유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은 미개한 하층민 농부를 의미했습니다.

참고로 인간은 어른이 돼서도 젖을 먹는 유일한 포유동물이라고 합니다. 다른 동물은 성장하면서 젖을 소화하는 효소인 락타아제가 분비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파스퇴르와 와인, 공룡의 고향 ‘쥐라’
영화 쥬라기 공원 포스터
루이 파스퇴르는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지대 ‘쥐라산맥’의 돌(Dole)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쥐라(Jura)’라는 지명은 생소하지만, 많은 분들이 어디선가 들어봤을 이름입니다. 영화 ‘쥬라기 공원’ 기억나시나요? 지구상에서 공룡이 번성하던 시기가 쥐라기(Jurassic period)인데 프랑스 쥐라 지역의 독특한 지층에서 나온 말입니다.

파스퇴르가 와인의 발효와 부패를 연구하게 된 배경에는 쥐라가 주요 와인 산지라는 특성도 작용했습니다. 아무래도 와인과 접할 기회가 많았으니까요. 파스퇴르의 고향 쥐라에선 개성 강한 와인들이 생산됩니다.

최근 열린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RWA) 스파클링 와인 부문에서 ‘도멘 필립 반델’이 만든 프랑스 쥐라의 스파클링 와인 크레망 뒤 쥐라(Cremant du Jura)가 1등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수 브알(Sous Voile) 숙성으로 만드는 뱅 존(Vin Jaune), 스위트 와인 뱅드 파이유(Vin de Paille), 주정강화 와인 막뱅(Macvin) 등이 대표 와인들입니다. 스파클링 와인은 18세기 부터 샹파뉴 지역의 샴페인과 같은 전통방식으로 생산됐고 1995년 크레망 뒤 쥐라가 AOC 지위를 획득합니다.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RWA) 스파클링/샴페인 부문 수상 와인들
‘썩다’와 ‘삭다’의 차이를 밝혀낸 파스퇴르
1856년 쥐라 지역의 한 와인 양조업자가 파스퇴르를 찾습니다. 와인에서 나는 시큼한 맛을 해결해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입니다. 파스퇴르는 와인을 본격적인 연구대상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당시 파스퇴르는 대학교 교수였는데 양조업자의 아들이 파스퇴르의 학생이었습니다.

이어 프랑스의 주요 수출품이던 와인에서 대규모 산패가 일어나 식초가 돼버린 사건이 일어납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파스퇴르에게 와인 부패의 원인을 밝혀달라고 의뢰합니다. 당시 부패는 공기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자연발생설’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주류 칼럼니스트 명욱 교수는 “부모가 없어도 자식이 생긴다고 주장하는 게 자연발생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네이버
파스퇴르는 끓인 육즙을 백조목 플라스크(그림)에 넣어 공기를 차단하자 부패가 일어나지 않음을 보여주고 공기 중에 있는 미생물이 와인 부패의 원인이라고 분석합니다. 부패의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책도 찾아야겠지요. 파스퇴르가 미생물을 죽이는 방법을 연구하다 나온 것이 ‘저온살균법’입니다. 맛과 향이 변하지 않도록 65℃ 정도로 30분동안 살균해주는 방법이 저온살균법입니다.

술의 메카니즘을 밝혀낸 것도 파스퇴르입니다. 파스퇴르는 와인을 만들 때 효모가 포도의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전환시킨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우리말로 ‘썩다’와 ‘삭다’의 차이를 알아낸 겁니다. 썩은 것은 부패라고 하고 삭은 것은 발효라고 합니다. 유기물을 썩게 만드는 균은 부패균이고 삭히는 건 효모균인데 이 효모균의 역할을 파스퇴르가 알아낸 거지요.

강원도 횡성 민사고와 파스퇴르 우유
파스퇴르 유업과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설립한 최명재 회장 생전(1994년) 모습. 연합뉴스
한국에선 파스퇴르하면 ‘우유’를 먼저 떠올립니다.

강원도 횡성에는 민족사관고등학교가 있습니다. 민사고 앞에 롯데푸드 횡성공장이 있는데 원래는 파스퇴르 우유공장이었습니다.

파스퇴르 유업은 1987년 최명재 회장이 설립했습니다. 파스퇴르가 개발한 저온 살균법을 강조하기 위해 우유 이름도 ‘파스퇴르’라고 지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엔 고온 살균우유만 존재했습니다.

최 회장은 파스퇴르 우유로 번 1000억원을 투자해 민사고를 세웁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어려움을 겪던 파스퇴르 유업은 1998년 최종 부도 처리됩니다. 이후 파스퇴르 유업은 한국야쿠르트를 거쳐 롯데그룹에 인수됩니다.

파스퇴르 유업과 민사고를 설립한 최명재 회장은 지난 2022년 6월 노환으로 별세합니다.

민족사관고등학교. 연합뉴스
해외 멸균우유의 한국시장 침공
한국 우유 시장에 파스퇴르가 ‘저온 살균우유’를 알렸다면 한국 우유시장의 왜곡된 가격구조를 알린 건 폴란드산 ‘멸균우유’입니다.

멸균우유란 초고온에서 미생물을 죽여 무균 포장한 제품입니다. 일반 우유(살균 우유)는 냉장 상태에서 10일 정도만 보관이 가능합니다. 반면 멸균우유는 살균우유와 영양분은 같으면서도 상온에서 10주간(최대 6개월) 보관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입니다. 그동안 우유는 수입이 어려웠지만 유통기한이 길어진 멸균우유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 어디서나 수입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한국산 우유보다 가격이 싼 폴란드산 멸균우유가 한국 시장에 등장한 이유입니다. 폴란드 우유는 생산원가가 낮습니다. 우유로 가공을 하기 전 단계인 소의 젖이라 부를 수 있는 원유(原乳) 가격이 국산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유통 마진과 관세 등 각종 세금을 추가해도 한국산 우유보다 가격이 30%이상 낮습니다. 오는 2026년부터는 폴란드산 멸균우유에 부과되던 관세도 없어집니다.

왜 한국 우윳값이 세계 최고수준인가
지난해 8월에 쓴 기사인데 올해는 수입산 멸균우유의 공세가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산 우유의 가격은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축산농가의 생산 원가가 높습니다.

대안이 없을 땐 가격을 따지고 드는 게 무의미했습니다. 수입 멸균우유가 없었을 때는 국산우유만 마셔야 했으니 소비자도 가격에 덜 민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국내 소비자도 전 세계 우유와 가격을 비교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결정합니다. 하지만 국내 우유시장은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가격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하지 않습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 해마다 넘쳐나는 원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고민하는 게 한국산 우유의 현주소입니다. 그런데도 왜 우유 가격은 매년 인상될까요?

축산농가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은 우유회사들이 축산농가로부터 정해진 가격에 원유를 사 오는 구조입니다. 이때 가격책정은 ‘수요’보다는 ‘생산원가’가 기준이 됩니다. 국내 우유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이 없는 국산 우유를 구매해주는 대신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습니다. 국민의 세금입니다.

국내 우유업계 1위는 서울우유협동조합입니다. 전국 5000여 축산농가 중 1500여 곳이 서울우유 조합 소속입니다. 우유 가격이 인상될 때 마다 소수의 낙농가를 돕는 데 국민의 세금이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민의 세금 지원 없이는 국내 축산농가의 생존의 불투명하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기사를 썼지만 올해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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