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필요없으니 ‘이것’ 더 달라”…음악 천재들이 푹 빠진 음료의 정체 [전형민의 와인프릭]

전형민 기자(bromin@mk.co.kr) 2023. 11. 1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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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예술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 바늘과 실처럼 붙어다니는 조합이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사교 활동에서부터, 창작 활동에까지 항상 곁에 와인을 뒀죠. 와인은 예술가들의 고뇌를 함께하며 때로는 그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어주는 뮤즈(Muses·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9인의 예술과 학문의 여신)로서 역할을 했습니다.

예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됐습니다. 분야도 문학과 미술부터 음악, 연극, 무용, 곡예에 이르기까지 넓고 깊죠. 오늘은 그 중에서도 와인을 창작의 뮤즈로 적극 활용했던 몇 명의 고전주의 클래식 작곡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들이 애정했던 와인은 묘하게도 그들의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아폴로와 뮤즈(Apollo and the Muses). John Singer Sargent, 1921년. [보스턴 미술관]
작곡료 대신 와인을 가져와!
1685년 독일 아이제나흐(Eisenach)에서 태어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어린 나이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던 작곡가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있죠.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섬세한 감성을 여러 기호품으로 드러내듯, 바흐 역시 와인에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와인 창고로, 저택 지하실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별도의 와인 창고용 방을 2곳이나 따로 뒀습니다. 바흐는 그 방을 채우기 위해 때때로 작곡료로 돈 대신 와인을 가져오라고 했다고 하죠.

사실 바흐는 살아있던 동안에는 그저 재능있는 음악가였고 사후에도 잊혀져갔지만,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 후세 천재 작곡가들이 그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으면서 뒤늦게 천재성을 인정받은 케이스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천재 예술가들과 달리 태어난 독일에서 거의 평생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그의 와인 취향 역시 독일 와인에 국한됐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문가들은 당시 유행하던 라인가우(Rheingau)의 리슬링과 바덴(Baden)의 슈페트부르군더(Spatburgunder·피노누아)를 마셨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첼로의 구약성서’로 일컫어지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Unaccompanied Cello Suites)은 프로에게는 반드시 넘어야할 필수과제, 아마추어에게는 한번쯤 제대로 연주하고 싶은 명곡으로 불리는데요. 깔끔한 과실미 산미, 우아한 질감을 자랑하는 슈페트부르군더와는 썩 잘 어울립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초상화.
발랄하고 젊은 멋쟁이 천재 음악가의 선택
바흐 사후 6년 뒤인 1756년 태어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는 5세부터 작곡을 하며 전 유럽에 이름을 알린 음악 신동이었습니다.

6살부터 순회 연주길에 올라 10년 간 유럽 곳곳을 방문하며 당대 최고 권력자들은 물론 각 지방의 유행하는 음악을 접하고, 당대의 중요한 음악가들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런던에서 바흐의 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에게 작곡법을 배우기도 했고요.

일부 기록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작곡을 하며 긴 밤을 보낼 때 항상 곁에 와인을 뒀다고 합니다.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인데요. 와인이 떨어져서 작곡이 방해받는 일이 없도록 항상 와인을 준비하는 게 주변인들의 중요한 일이었다죠.

모차르트는 구직을 위해 파리로 떠나 자신의 후원자였던 멜히오르 폰 그림 남작의 도움 아래 파리 사교계에 빠지면서 최신 트렌드를 탐닉했고, 이 과정에서 샴페인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문서에 의하면 그는 낮시간에는 샴페인을 잔뜩 마시고, 식사 시간에는 조개류, 과자와 함께 샴페인을 또 마셨다고 합니다. 마침 그 무렵 프랑스 파리 사교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식이 굴과 샴페인이었다는 점도 이러한 모짜르트의 샴페인 사랑을 뒷받침하는 흐름으로 보입니다.

모차르트의 명작 중 우리에게 친숙한 피가로의 결혼 서곡(Le nozze di Figaro K. 492)은 그의 발랄하고 경쾌한 작품관과 그가 사랑했던 샴페인을 잘 표현해줍니다. 곡과 샴페인 모두 탁월한 선명도와 뛰어난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모차르트 가족의 초상화. Johann Nepomuk della Croce, 1780년경.
안타깝다, 안타까워. 너무 늦었다
“안타깝다, 안타까워. 너무 늦었다.”

1827년 3월 26일, 불세출의 작곡가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이런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악성(樂聖)이라고까지 불린 사내가 그토록 안타까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그의 요청에 따라 출판사가 보내온 와인이었습니다. 생전 와인을 무척 좋아했는데, 끝내 마시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게 아쉬웠던게죠.

베토벤의 와인 사랑은 그의 사망 원인(간 경변, 납 중독설)을 놓고 논란이 일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 입니다. 그는 일생 동안 와인, 포도원과 긴밀하게 연결됐는데요. 그의 증조부와 할아버지는 모두 와인 상인이었기 때문에 와인과는 가까울 수밖에 없는 아니,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였던 셈입니다.

또한 그는 당시의 문화적·역사적 인물들과 잘 연결돼 있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사회 지도층과 어울리면서 고급 와인을 비롯해 다양한 와인에 익숙해졌겠죠. 와인 사랑이 잘 알려진 만큼, 베토벤이 좋아했던 와인도 사료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산 화이트 와인과 독일 리슬링, 헝가리산 토카이(Tokaji) 같은 스위트 와인을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베토벤하면 십중팔구 떠올리는 운명 교향곡(Symphony No. 5 in C Minor, Op. 67)은 클래식의 본질을 함축적으로 잘 담은 불세출의 교향곡이자 베토벤의 음악 철학을 집약적으로 잘 보여주는 명곡으로 꼽힙니다. 드라마틱하고 강렬하죠. 공교롭게도 베토벤이 즐겼다는 헝가리산 토카이는 이 모든 형용사가 거부감 없이 통용됩니다.

베토벤의 초상화. 베토벤은 헝가리의 귀부와인인 토카이를 즐겼다.
작곡으로 30대에 은퇴한 최초의 파이어족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는 다른 천재들과 달리 76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작곡가로서는 인생의 중간 부분인 39살에 조기 은퇴했는데요.

그럼에도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탄크레디 △세비야의 이발사 △세미라미데 △윌리엄 텔 등 다시 없을 오페라 명작들을 여럿 남기고 일찌감치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파이어족의 원조, 롤모델인 셈입니다.

그는 은퇴 후 파리에서 미식을 즐기며 명사로서 유명 예술인과 교류를 즐겼습니다. 현재까지 Tournedos Rossini (송로버섯이 듬뿍 들어간 푸짐한 스테이크), Rossini (프로세코 기반 칵테일) 등 그의 이름을 딴 음식과 음료가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그가 미식 분야에서도 인정받는 명사였다는 방증입니다.

미식가였던 로시니가 즐긴 와인은 마데이라와 보르도 와인이였습니다. 1864년 로칠드 남작(Baron de Rothschild)이 보르도 와이너리에서 재배한 포도를 선물로 보내자 로시니가 “고맙지만, 저는 알약 형태의 와인을 먹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고 답한 일화는 유명하죠. 이 말을 들은 로칠드 남작은 그에게 곧바로 당대 최고의 보르도 와인이었던 샤또 라피트 로칠드 한 박스를 보냈다고 합니다.

오페라는 교향곡 이상으로 조화가 중요한 음악인 만큼, 근대 블랜드 와인의 시초격인 보르도 와인을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요. 로시니의 명곡, 윌리엄 텔의 서곡(Overture) 중 피날레 부분은 극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파워풀한 보르도 와인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조아키노 로시니의 사진. 그는 일찌감치 작곡가를 은퇴하고, 미식가로서 인생 제2막을 살았다.
‘아, 항상 맛있다!’ 유언이 된 그 한 마디
고전주의에 속하진 않지만, 고전파스러운 작풍(作風)을 남긴 브람스도 베토벤과 같은 스위트 와인 애호가였습니다. 특히 브람스는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9번이나 여행할 정도로 좋아했는데, 항상 마르살라(Marsala·시칠리아 스위트 와인)와 토카이를 비교시음할 정도로 두 와인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말년에 간암의 악화로 사망한 것도 베토벤과 비슷한데, 그는 죽기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교 뤼데스하임에서 생산된 카비넷(Karbinett) 리슬링 한 모금을 마시고는 “아, 항상 맛있다!” 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뤼데스하임은 괴테가 ‘라인강의 진주’라고 극찬한 독일의 대표적인 리슬링 산지 입니다. 괴테는 와인을 맛보고는 “입술을 통해 혀끝으로 전달되는 순간은 사랑하는 여인과의 첫 키스만큼이나 감미로웠으며, 마시기 직전의 감정은 사모하는 사람을 만나기 직전의 설렘과 비슷하다”라는 평을 남겼습니다.

한편 베토벤의 임종 전날 배달됐다는 와인 역시 뤼데스하임의 카비넷 리슬링으로 추측됩니다. 카비넷은 꽃향, 꿀향, 리슬링의 특징인 패트롤(Patrol·석유향)이 어우러진 새콤달콤한 와인입니다.

당분을 완전히 발효시키지 않고 남기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낮지만, 무게감 있는 달달한 끝맛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브람스의 곡 중 가장 극적이지만 중후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교향곡 제1번 C단조 작품 68(Symphony no.1 in C minor, op.68)과 썩 잘 어울립니다.

브람스는 임종 전, 카비넷 리슬링을 맛보곤, ‘아, 항상 맛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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