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는 분홍빛, 국물은 뽀얀 색..젓갈, 어디 한번 골라볼까?

황지원 기자 2023. 11. 1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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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과 젓갈] 광천 토굴 새우젓
父 이어 2대째 운영중인 ‘신광상회’
매년 김장철이면 사람들로 문전성시
토굴에 들어가 직접 고르는 특별함
숙성 위한 최적환경 갖춰 품질 ‘최상’
진한 감칠맛 품은 육젓·추젓 등 가득
젓갈 고르면 인심 좋게 용기에 ‘꾹꾹’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 있는 신광상회의 토굴 내부. 1958년쯤 파낸 토굴에 일렬로 놓인 통에선 오젓부터 동백하젓까지 여러가지 새우젓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김장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젓갈이다. 충남 홍성군 광천읍은 김장철이면 젓갈, 그 가운데서도 새우젓을 사러 온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토굴 숙성한 새우젓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천을 찾아 새우젓의 각양각색 매력을 알아봤다.

1950년대 이후 광천 사람들은 곡괭이를 들고 산비탈을 파서 토굴을 만들었다. 토굴 입구에 ‘원조 토굴 새우젓 1호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광천으로 새우젓을 사러 온 사람들은 조금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직접 굴속에 들어가 새우젓을 보고 고르는 것이다. 2대째 새우젓을 팔고 있는 신광상회 바로 뒤편에도 토굴이 있다.

이 굴은 신광상회 대표인 허니씨(65)의 아버지 허삼안씨가 1958년쯤 판 것이다. 산비탈에 있는 커다란 토굴 문을 열자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를 지나자 각기 다른 새우젓이 든 드럼통 십여개가 늘어서 있다.

“제일 좋은 것 좀 줘보세요.”

천안에서 온 김옥자씨(73)는 10년 넘게 김장철이면 신광상회를 찾아 새우젓을 구매한다. 김씨 요청에 허 대표는 가장 안쪽에 있는 드럼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곳엔 지난해에 담근 ‘육젓’이 들어 있었다. 육젓은 음력 6월에 잡은 산란기 새우로 만들어 살이 통통하며 고소한 맛이 가장 뛰어나다. 이는 김장에 쓰는 것은 물론 그대로 밥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김씨는 새우를 먹어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2㎏을 사겠다고 했다.

허니 신광상회 대표는 아버지를 이어 2대째 토굴 새우젓을 판매한다. 토굴에서 새우젓을 보여주는 허 대표.

허 대표는 새우젓을 삼지창같이 생긴 ‘젓갈포크’로 퍼서 용기에 꾹꾹 눌러 담는다. 새우젓 한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심 좋게 젓갈 국물까지 서비스로 다른 통에 담아준다. 새우젓 국물은 국이나 반찬 간을 맞출 때 소금 대신 써서 감칠맛을 내는 데 그만이다.

김씨를 따라 육젓 새우 한마리를 집어 들어 봤다. 젓갈로 담갔는데도 머리부터 꼬리까지 부스러진 곳 없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새우는 성인 엄지손가락 한마디가 될 정도로 길다. 입에 넣으니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짠맛이 느껴졌다. 새우를 씹자 오동통한 살에서 은은한 감칠맛이 났다. 감칠맛은 씹으면 씹을수록 진하다.

왼쪽부터 추젓·오젓·육젓.

올해 신광상회에서 파는 최상급 육젓은 1㎏에 10만원에 이른다.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1㎏당 1만원부터 시작하는 ‘추젓’도 있다. 추젓은 가을에 잡은 자잘한 새우로 담가 살이 희고 염도가 낮은 게 특징이다. 김치를 비롯해 여러 음식에 널리 활용된다. 육젓과 추젓의 중간 크기가 음력 5월에 수확한 새우로 만든 ‘오젓’이다. 찌개나 나물 간을 맞출 때 쓰면 좋다. 겨울 새우로 담근 ‘동백하젓’은 수육이나 순대에 찍어 먹으면 잘 어우러진다.

허 대표는 좋은 새우젓을 고르는 방법도 소개했다. 새우가 밝고 분홍빛을 띠며 으깨지지 않고 원형 그대로여야 한다. 또 국물은 뽀얀 색을 내면서 비린내가 나면 안된다. 김장할 때는 오젓부터 동백하젓까지 모든 새우젓을 쓸 수 있다. 주머니 사정과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배추 20㎏에 새우젓 1㎏ 정도를 쓰는 게 적당하다.

광천과 새우젓의 만남은 오래됐다. 지금은 물길이 막혔지만 과거 광천읍 옹암리엔 옹암포구가 있었다. 이곳에선 고려시대부터 새우젓을 파는 장터가 열렸다고 한다. 1930년대 장항선이 개통하며 다른 지역 상인들까지 광천을 찾았고, 그 덕분에 장날이면 포구에 수산물을 실은 배가 150여척이나 들어왔다. 상업에, 광산업까지 발달해 ‘광천에서는 돈 자랑하지 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1970년대 시작한 간척사업으로 옹암포구가 막히며 광천도 예전 명성을 잃게 됐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100여개의 새우젓 상점이 ‘젓갈 성지’로서 명맥을 잇고 있다. 광천에선 새우젓뿐 아니라 국산 갈치속젓·어리굴젓·오징어젓 등도 맛볼 수 있다.

토굴 새우젓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과거 광천에선 새우젓을 항아리에 넣고 땅에 파묻어 숙성했다. 하지만 여름만 되면 햇빛과 지열 때문에 쉽게 부패했다. 1954년 광부로 일한 경험이 있던 윤병원씨는 광산 내부가 1년 내내 시원했던 것을 떠올리고 새우젓이 담긴 독을 폐광 안에 들여놨다. 3개월 뒤 새우젓 항아리 뚜껑을 열자 젓갈은 우윳빛을 띠며 알맞게 익어 있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산을 파 굴을 만들기 시작했다. 광천 곳곳엔 토굴 40여개가 만들어졌다. 토굴 내부 온도는 사계절 내내 13∼15℃, 습도는 85%를 유지하며 새우젓이 숙성되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간하기 좋은 오젓

옹암포구가 있던 시절엔 다들 근처 바다에서 잡은 새우로 젓갈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인천 강화, 전남 목포·신안에서 잡은 새우를 쓴다. 산지에서는 새우를 일차적으로 염장한 뒤 광천 젓갈상으로 보낸다. 광천에선 염도를 맞춰 새우에 다시 소금을 뿌리고 토굴에서 3개월 이상 숙성시킨다.

허 대표는 “대한민국 최고의 새우젓을 만든다는 일념으로 국산 1등급 새우만 써서 젓갈을 담가왔다”며 “앞으로도 명품 새우젓의 명맥을 잇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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