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식량 불량” 인정은커녕 책임 떠넘기는 軍…공방 뒤로 숨은 ‘책임감’ [저격]

권선미 기자(arma@mk.co.kr) 2023. 11. 18. 13: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격-2] 군필자라면 대부분 기억할 전투식량. 저도 군필자라 전투식량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데요. 즉각취식형(전투식량3형) 아몬드케이크는 그럭저럭 먹을만 한데, 정작 주식(主食)인 비빔밥 등은 먹으면 사기가 저하되는 맛이라고들 하지요. 그럴 땐 전설의 조미료 ‘맛다시’(군 장병들에게 사랑받는 볶음고추장의 상품명)만 있으면 사기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맛다시 [자료=온라인 캡처]
이번 화에서는 전투식량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매일경제는 지난 9월부터 10월 총 6회에 걸쳐 ‘불량 전투식량’의혹에 대한 연속보도를 했습니다. 이 시기에 군 생활하신 분들은 충격을 받으실까 우려가 됩니다. 해당 기사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A사에서 납품한 전투식량2형은 유통기한 설정이 잘못된 ‘불량’이라는 것.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계약 당사자인 방위사업청, 품질보증기관인 방사청의 산하 기관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과 국방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가 유통기한에 대한 검증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서 검증조차 하지 않아 장병들이 불량 전투식량을 먹게 됐다는 것입니다.

육군 장병들이 보급받은 전투식량을 먹고 있다. 본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사진 출처=육군 페이스북]
하지만 방사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본지와 전투식량 불량 여부에 대해 공방을 벌였습니다. 방사청은 언론중재위원회에 “또 ‘불량 전투식량’ 논란…170만개 버릴판”(▶9월 8일자 A23면 보도), “불량 전투식량 의혹…방사청 ‘나몰라라’”(▶9월 12일자 A25면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를 했습니다.

본지와 방사청의 생생한 공방 과정을 통해 문제의 전투식량에 ‘진짜 문제’가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A사 전투식량2형 포장 불량” vs “포장으로 인한 유통기한 문제 없다”
이 문제를 짚으려면 ‘품목제조보고서’라는 게 무엇인지부터 간단히 알아봐야합니다. 식품을 만드는 업체는 제조하는 모든 식품에 대해 ‘품목제조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요. 제조 공장이 위치한 지자체에 제출합니다.
품목제조보고서 양식 [자료=온라인 캡처]
품목제조보고서는 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의 유형 및 제품명, 제조 기간, 유통기한 설정시험서, 영업허가번호 등을 첨부하게 돼 있습니다. 해당 지자체는 품목제조보고서를 제출 받은 뒤, 관할 지역에서 어떤 제품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생산되는지 인지하게 됩니다.

품목제조보고서에는 식품 포장 방법도 포함됩니다. 당연히 포장 방법이 유통기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포장 방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A사가 납품한 전투식량2형의 포장 방법이 왜 문제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A사가 납품한 전투식량2형 참기름 품목제조보고서에는 1차(폴리에틸렌+나일론), 2차(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나일론+폴리에틸렌) 재질의 4겹 포장재로 이중 밀봉 포장했을 때 유통기한 39개월이 유지된다고 써 있습니다.

A업체가 안성시에 승인 받은 참기름 유통기한 포장방법 조건
하지만 A사는 참기름을 1차 밀봉 포장밖에 하지 않은 채 전투식량에 넣었습니다. 또 옥수수유는 ‘주석도금강판(두께 0.155~0.6㎜의 강판)’방식으로 포장해야 유통기한이 제조일로부터 42개월로 인정된다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비닐로만 포장돼 있었습니다.
A업체가 화성시에 승인 받은 유통기한 승인에 대한 포장방법 조건
방사청은 이에 대해 ‘A사가 옥수수유를 구매하여 국방규격에 맞게 비닐 포장재로 7g씩 소분 포장하여 최종 납품 하였으므로 관련 법령에 따라 유통기한이 제조일로부터 42개월로 인정된다’고 반론했습니다.

하지만 ‘관련 법령’이 유통기한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요. 옥수수유와 참기름은 품목제조보고서에 적은 대로 포장하여 유통기한을 유지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옥수수유는 일반 비닐로만 포장시에는 권장 유통기한이 12개월밖에 되지 않습니다.

전투식량은 유통기한이 임박했을 때 장병들이 취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지난 수년간 장병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전투식량을 먹여온 것입니다.

“A사 전투식량 유통기한 설정기준 위반” vs “그런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본지는 A사의 참기름과 옥수수유 납품 업체가 각 지자체에 제출한 유통기한 설정시험서에서도 수상한 점을 확인했습니다. 유통기한은 식품을 만드는 업체가 제3기관에 의뢰해 설정시험서를 받거나, 유사한 제조방법이나 제품군의 유통기한으로 갈음할 수 있습니다. 국내 참기름의 최대 유통기한은 24개월입니다. 옥수수유도 18개월 수준입니다.
국내산 참기름
그런데 A사 전투식량에 납품한 참기름과 옥수수유는 각각 39개월, 42개월로 납품했으므로 제3기관에 의뢰해 설정시험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본지 확인 결과 참기름 유통기한 설정시험서에는 책임연구자 등 연구자들의 이름이 모두 빠져 있었고, 옥수수유 유통기한 설정시험서는 의뢰기관, 책임연구자, 연구자, 인감 등이 빠져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본지는 유통기한 설정시험서 위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방사청은 ‘A사가 2016년 전투식량 납품 당시, 참기름과 옥수수유를 납품한 협력업체가 품목제조보고를 하였고, 이 때 2012년 ‘중앙대 산학협력단’의 연구결과 보고서를 근거로 하였으나, 이는 동일한 품목에 대해 동일한 포장방법을 사용한 연구방법을 근거로 하였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9월 본지 보도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특별점검을 실시한 결과, 참기름과 옥수수유 제조업체는 ‘유통기한 설정 기준 위반’으로, A사는 ‘유통기한 설정 기준 위반 제품 사용에 의한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행정처분 요청 조치됐습니다.

“참기름 유통기한 설정사유서는 위조다” vs “문제 없다”
방사청은 ‘A사의 협력업체가 관할 지자체에 신고한 품목제조보고서의 유통기한 설정시험서 붙임자료인 중앙대 산학협력단 결과 보고서 겉표지에 연구책임자의 이름이 나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본지는 방사청과 A사가 연구책임자라고 주장한 B교수에게 해당 유통기한 설정시험서를 작성했는지 직접 확인했습니다.

B교수는 처음 보는 것이며 자신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고 답변했으며, 찍혀 있는 자신의 인감도 위조된 것이라고 확인해주었습니다.

본지와 B교수 대화 내용 일부
본지는 해당 내용을 방사청과 식약처에 공유했습니다.

하지만 방사청은 이를 해결하려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난 10월 10일 ‘2020년에 식약처, 기품원 등이 A사에 대해 합동위생점검을 실시하여 원자재 및 완제품의 유통기한 등을 점검한 결과 유통기한에 대한 문제점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라는 내용을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식약처는 중앙대에 공문을 보내 해당 내용(유통기한 설정시험서 위조 의혹)이 사실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식약처 특별사법경찰관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전투식량 품질은 방사청 책임” vs “전투식량 유통기한은 지자체·식약처 책임”
방사청 및 산하 품질보증기관 기품원·국기연은 군수품 계약 시 납품 검수와 관련해 여러 형태의 품질보증 조건(Ⅰ·Ⅱ·Ⅲ·Ⅳ형)을 정하고 있습니다.

전투식량 2형의 납품검수는 주로 납품업체가 제출한 품질보증 관련 서류(전투식량2형 종합 품질실험보고서·참기름 등 각 구성제품에 대한 성분검사 및 유통기한 설정실험서·품목제조보고서 등)의 이상유무를 통해 확인하고 있습니다.

군에서 현재 보관 중인 전투식량Ⅱ형의 모습. [사진 = 안규백 의원실]
기품원의 임무는 ‘군수품 품질보증 및 방산물자 품질경영 등에 대한 업무지원’입니다. 방위사업품질관리 규정에 ‘품질보증(QA, Quality Assurance)이란 품질요구사항이 충족될 것이라는 신뢰를 제공하기 위한 제반활동’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제반활동의 범주에는 품질활동 계획, 기술검사 및 검수업무, 개발시험 및 운용성평가, 제출된 시험성적서 등에 대한 검증업무 등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국기연은 지난 7~8월 3차례에 걸쳐 제기된 A사 전투식량2형 감사청구 민원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기품원(국기연)은 해당 지자체 및 식약처의 승인 결과를 원용하게 됨으로 (유통기한 등의) 허위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제한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자체와 식약처는 본지에 공식적으로 유통기한을 승인하는 기관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실제로 유통기한을 ‘승인’하는 기관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유통기한은 식품 제조 업체가 제3기관에 의뢰하거나 유사한 제조방법이나 제품군의 유통기한으로 갈음하여 ‘설정’을 받습니다. 이후 해당 업체와 계약하는 업체 또는 기관이 이를 ‘검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A사-방사청 짬짜미 의혹” vs “짬짜미 의혹 근거 미약”
본지는 A사와 방사청의 짬짜미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방사청은 이에 대해 ‘실체도 명확하지 않고 근거도 미약한 주장으로 판단된다’고 반박했습니다.

짬짜미 의혹은 이렇습니다.

본지 취재 결과, A사에 참기름을 납품한 업체는 전투식량1형 납품업체의 유통기한 설정시험서를 빼돌려 이를 기반으로 유통기한 39개월 참기름 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납품했습니다. A사는 이를 알거나, 혹은 확인하지 않은 채 참기름을 사용한 의혹을 받습니다.

또 방사청은 품질보증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아 검증 과정에서 이를 적발하지 못해, 혹은 알면서 짬짜미로 불량 전투식량을 2016년부터 줄곧 장병들에게 먹여온 의혹을 받습니다.

기존 국방규격은 외포장상태에서 유통기한 설정시험을 통해 내부 음식물이 유통기한 36개월 이상이 넘는지 확인하여 납품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투식량 안에 들어가는 제품 중 참기름, 옥수수유 등 개별적으로 유통기한이 36개월이 넘지 않는 제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투식량 S형 [자료=연합뉴스]
그런데 A사가 2016년부터 전투식량2형을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혼자서만 참기름과 옥수수유에 유통기한을 찍었습니다. 그러면서 전투식량2형을 나누어 납품하는 경쟁사가 유통기한 24개월짜리 참기름(오뚜기)을 36개월짜리 유통기한인 전투식량 안에 넣어 납품한다며 ‘불량’이라는 이유로 민원을 넣었습니다.

경쟁사의 전투식량도 외포장상태에서 유통기한을 점검했을 때 내용물 모두 36개월이 넘어 이상 없는 제품이었습니다.

2018년 방사청은 돌연 허위 유통기한 제품을 사용한 A사에 맞춰 외부 업체에서 들여오는 제품에 개별 유통기한을 찍도록 ‘국방규격’을 바꿔버렸습니다. A사와 똑같은 업체의 참기름을 사용하고 있던 전투식량1형 납품업체는 이로 인해 2018년부터 참기름을 빼게 됩니다. 해당 참기름 업체가 정상적으로 납품하는 유통기한은 최대 24개월이었고, 현실적으로 개별 유통기한 36개월이 넘는 참기름은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A사는 ‘유통기한 39개월짜리 참기름’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식량1형과 같은 업체의 참기름을 사용하는데, 전투식량1형 납품업체는 참기름을 빼고 A사는 계속 사용했다는 점. 또 방사청이 단 한 번도 A사의 외부 시험서 등 문서 검증(품질보증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짬짜미 의혹을 뒷받침합니다.

방사청·기품원·국기연, 국민 앞에 약속한대로만 이행하길
지난 10월 10일, 방사청은 출입기자들에게 본지 보도(전투식량 공문서 위조 방위사업청 ‘나몰라라’)에 대한 반박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첫 문단에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방위사업청 새 현판 [자료=연합뉴스]
‘먼저, 방위사업청은 관계 기관과 협조하여 우리 국군 장병이 취식하는 전투식량 품질문제 제기에 대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하고 한치의 의혹이 없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이후 어떤 조치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약속이 사실이라면 본지가 지적한 130만개의 A사 전투식량2형에 대한 검증 절차를 밟고 있을 것입니다. “軍장병이 봉인가…전투식량에 ‘수상한 중국산’ 참기름”(▶9월 18일자 A23면 보도)

방사청 스스로 말한 ’전투식량 품질문제 제기에 대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하고 한치의 의혹이 없도록‘ 하는 어떤 조치도 하고 있지 않다면 국민 앞에 거짓말을 한 것이 되겠지요.

이번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불량 전투식량에 대해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부터 (전투식량 제조업체가) 전투식량2형 유통기간을 속이는 문제, 그리고 유통기한 설정시험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 드러났다”며 “장병들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 제품(전투식량)에 대한 책임 있는 수행을 해줘야 되겠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는 허건영 기품원장(좌)과 손재홍 국기연 소장
임병헌 국민의힘 의원도 “병사들의 건강 문제다. 전투식량을 먹고 전역한 군인도 많다”며 “향후 이런 사례가 없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허건영 기품원장과 손재홍 국기연 소장은 “책임감 있게 업무 수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전투식량은 평시 훈련뿐만 아니라 전시에서도 먹는 매우 중요한 군수물자입니다. 요즘 군 간부들은 맛이 없다고, 건강에 안 좋을 것 같다고 전투식량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선택사항이 없는 병사들은 불량을 주면 주는대로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방사청과 기품원·국기연이 공식적으로 한 ‘책임감 있게 조치하고 업무 수행하겠다’고 한 말.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고 지적을 넘기기 위한 영혼 없는 약속이 아니었길 바랍니다.

9년차 ‘사건 기자’입니다. 사회부에서 온갖 사회 이슈를 다루며 스나이퍼 역할을 해왔습니다.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단독보도와 핫이슈의 속깊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이슈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꿰뚫겠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