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좋은 나무가 선비의 사랑방 가구로 [ESC]

한겨레 2023. 11. 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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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박효성의 욕망하는 공예]박효성의 욕망하는 공예
진주의 전통 공예인 소목 가구와 도자·금속·섬유 등 한국 공예의 정수를 소개하는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주제관 전경.

주말이면 농부들이 직접 키운 채소를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시장 ‘마르쉐’에 즐겨 간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성수동, 서교동 등을 거점으로 다양한 주제로 열려 맛보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마감을 이틀 남겨두고도 아직 이번 원고의 갈피를 잡지 못해 무거운 마음이었지만 주제를 잡는 예열만으로도 이미 뜨거워진 머리를 차가운 바람에 식히자는 마음으로 지난 11일 마르쉐를 찾았다. 이번 시장은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코테’에서 ‘토종'을 주제로 판이 벌어졌다. 우리 땅에서 비와 바람, 햇빛을 공유하며 여러 대를 거쳐 살아낸 씨앗으로 수확한 토종작물이 주인공이었다. 생물 다양성이 위협받는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 땅에 적응한 씨앗은 소중히 간직해야 할 미래이자 이 땅에서 살아갈 후손들의 먹거리를 위해 귀하게 물려줄 유산이라는 사실을 곱씹으며 장바구니 가득 장을 봤다. 대학원에서 전통문화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향유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되묻고 있던 상황에서 토종작물을 통해 원고의 실마리도 찾았다. 바로 전통문화가 한국 문화의 현재와 미래의 번성을 이끌 토종 씨앗이라는 점에서다.

소목 가구, 담담하지만 세련된

지난 10월부터 한 달여 동안은 전국 곳곳을 누비며 유적과 전통문화를 답사하는 날이 유독 많았다. 맛집 투어나 가을 단풍놀이 대신 경남 진주와 광주, 제주에서 전통 문화유산 기행을 계속 이어갔다. 모두 공예를 소재로 한 전시가 열린 곳이었다. 진주라고 하면 임진왜란 당시 충절의 상징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한 남강과 김시민 장군이 이끈 진주대첩이 먼저 떠오른다. 요즘 들어서는 진주 남강에서 펼쳐지는 유등축제와 전국구 먹거리로 알려지고 있는 진주냉면 등의 음식도 주목받는다. 충절과 풍류의 고장 진주에서 열리는 전통 공예 전시는 어떤 모습일까. 조금은 생소한 조합에 기대감을 가지며 제2회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전시가 열리고 있는 진주시 철도문화공원으로 향했다.

진주공예비엔날레 중 진주에서 전통 공예의 맥을 이어가는 공예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 전경.

옛 진주역사와 차량정비고 등을 가득 채운 공예품 중에서도 유독 고졸한 아름다움으로 반듯하게 자리 잡은 소목(나무로 가구나 문방구 따위를 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교를 초월한 담담하고 간박한 모습이 오히려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진주 소목의 전통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를 향유했던 진주 선비들 덕분이다. 조선 중기 퇴계 이황과 어깨를 나란히 한 유학자 남명 조식이 경남 진주, 산청, 지리산 일대에서 영남 사림을 이끌면서 높은 안목의 선비 문화가 형성됐고 이런 연유로 진주 소목은 사랑방 가구가 특히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지리산이 풍성하게 내어준 결 좋은 나무도 가구의 품격을 높여 진주의 자랑이 된 것이다. 2019년 진주가 유네스코 공예 및 민속예술 분야 창의도시로 선정된 데에도 진주 소목의 전통이 큰 힘을 보탰다. 이번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의 주제관에서는 정진호(단원공방, 경남도 무형문화재 29호), 김병수(한송공방, 대한민국 가구제작 명장), 구한회(율목공방, 소목 경력 60년) 등 6명의 진주소목장인들과 유명 현대가구 디자이너 6인이 협업해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소목 가구를 소개했다. 이 밖에 도자·금속·섬유 등 4대 공예 분야에서 국내 대표 작가 37명의 작품 200여점이 펼쳐져 한국 공예의 진가를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주제관 옆에 작지만 알찬 공간에 마련한 진주공예인 전시에서도 은장도로 잘 알려진 장도장, 진주 실크로 지은 한복, 전통 매듭, 한지와 삼베 등을 선보여 진주 공예의 내공과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공예, 내일의 전통’이라는 주제의 이번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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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토종문화 ‘전통공예’

고려 시대 번성했던 차 문화를 토대로 청자 유물을 전시한 국립광주박물관 아시아도자실.

‘조선의 공간과 도자기’ 주제의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광주광역시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아시아도자문화실’의 매력에 흠뻑 반했다. 신석기시대 토기부터 청자, 분청사기, 백자로 이어지는 한국 도자의 흐름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차 문화, 문인문화, 길상, 의례 등 주제에 맞춰 사회문화사로 구성해놓았다. 서해에서 침몰해 전남 신안군 증도에서 발굴된 일본·중국 무역선의 해저문화재를 통해 도자 무역의 역사를 살펴보고, 아시아 각국의 도자기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이곳은 한국 도자 역사를 중심으로 아시아 도자의 흐름까지 시야를 넓혀 파악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박물관이다.

10월 마지막 주에는 석양 아래 그려지는 한라산 능선과 억새가 아름답다는 제주돌문화공원을 방문해 이색적이면서 원초적인 제주 전통의 힘을 엿보았다. 제주의 전통 설화인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내용을 기반으로 제주의 돌 문화와 생활문화와 생태까지 드넓은 대지에 펼쳐져 있다. 화산 활동으로 자연이 빚은 돌을 제주 사람들이 지혜롭게 사용하고 의지했던 모습에서 제주 전통 공예의 원류 중 하나가 돌이었음을 깨달았다.

한반도 곳곳에서 적응하고 피어난 전통 공예는 우리 몸과 마음에 최적화된 토종 문화이자 예술이다. ‘신토불이’,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등의 예전 광고 카피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이 좋다는 의미는 누구나 이해할 테고 그것은 농산물이든 공예품이든 마찬가지다.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한 문장으로 한국 문화의 씨앗인 전통 공예 이야기를 갈음하고자 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강산에서 먼 조상 때부터 내내 조국의 흙이 되어가면서 순박하게 살아왔다.”

박효성 리빙 칼럼니스트

잡지를 만들다가 공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우리 공예가 가깝게 쓰이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가꿔주길 바라고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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