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등 둬야 일 시키기 좋다”…비정규직 쓰라는 말에 학을 뗐다

한겨레 2023. 11. 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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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종교단체 사무직원 정아씨
게티이미지뱅크

교회로 가는 발걸음은 멈춘 지 오래지만, 정아(가명)씨는 여전히 기도로 하루를 여닫는다. 날마다 외는 기도문에서 ‘평화’, ‘이웃’, ‘사랑’, ‘저희’라는 말이 눈에 띈다.

“저는 ‘저희’라는 말이 좋아요. 내가 하는 기도를 모두를 위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듯해서요.”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석사 과정까지 공부하고, 정아씨는 모교에서 계약직 행정조교로 5년을 일했다.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는 비정규직보호법을 악용해 근무 2년이 될 무렵 조교들을 해고(계약만료 권고사직)했다. 대학평가를 앞두고 경력 있는 유능한 조교가 필요하자, 반년 뒤에 다시 정아씨를 불렀다. 학교는 조교들에게 도합 4년을 근무해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다. 대학평가 준비는 워낙 힘들어 뭔 핑계로라도 조교를 관둔다는데, 외려 정아씨는 “관계를 잘 마무리하겠다”며 일을 맡았다. 성실과 의리에 걸맞은 대우도, 정규직 전환이나 추천도 없었다.

서른을 넘기고도 변하지 않는 계약직 조교 생활에 “인생이 실패한” 걸까 하는 마음도 설핏 들었다는데, 직장 밖에서 정아씨는 야학 활동으로 빛났다. 대학 때부터 하고 싶었지만 돈 버느라 못 했던, 돈과 상관없는 일로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키웠다. 퇴근 뒤, 집 방향을 거슬러 전철을 타고 야학에 가기를 일주일에 두세번. 아예 사회단체 활동가로 살아볼까도 꿈꿔, 평생교육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따두었다.

동료를 계약직으로 부리는 ‘끔찍한 일’

어느 날, 종교단체에서 사무직원을 뽑는다는 소식에 마지막 날 마감 시간에 원서를 냈다. 학교 쪽처럼 종교 쪽도 이미 비정규직 고용이 만연했는데, 정아씨는 비로소 정규직이 됐다. “인생은 타이밍”이고 정규직 모집 공고 자체가 “대단한 특혜”였다며, 자신을 낮춘다.

“제 전임자가 뭔가 불만스러운 조건이 있었나 봐요. 막 일이 돌아가는 중간에 갑자기 그만둬 급하게 공고가 올라왔죠. 보통 수습 기간을 두거나, 계약직으로 최소 1~2년 쓰고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식이었는데 바로 정규직으로 뽑았어요.”

부서 이동이 한차례, 어느덧 나이 마흔 줄을 넘긴 정아씨는 여전히 그곳에서 일한다. 그간 야학 활동은 부대표까지 맡아 근속 10년을 채우고 휴직 중이다. 아픈 어머니를 돌보고 직장 일도 바빠져서다. 윗선에서 짜여 내려온 프로그램을 실행하느라, 바쁠 때는 잠시도 의자에 앉을 틈 없이 하루 평균 1만3천보를 걸으며 일했다는데, 요즘은 사무실 한자리에 붙박여 일한다. “쑤시고 다니지 말라”던 윗분의 말로 표현하자면 “쑤시고 다닌” 결과다.

“나는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좋아요. 회사에서 주는 대로 받는 거에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나는 밉보이고 찍혀도 요구해요. 일하는 환경이 조금이라도 개선되면 좋잖아요. 처음 일한 부서에서 일은 많은데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윗분한테 계속 요구했어요. 생각보다 빨리 직원을 충원했어요. 그 동료는 계약직 2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때 다른 부서에 들어간 직원은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5년 뒤에야 정규직이 됐더군요. 그런 불합리한 일이 같은 직장에서 있었다는 걸 나는 몰랐어요.”

사실 정아씨네 부서도 그럴 뻔했다. “정규직 전환이 반드시 좋은 게 아닐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차등을 두는 게 사람은 일을 시키기가 좋다”는 윗사람 말에 정아씨는 “학을 떼며” 반응했다. 타협하지 않았다.

“내가 그랬어요. ‘그렇게 차등을 두고 싶으면 저를 올려주시라. 그 사람은 정규직 전환하고 내 직급을 올려주면 되지 않느냐’고. 그 윗분은 대학에서 비정규직·계약직으로 사람을 쓰던 분이라 갑의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죠. 나는 을의 처지에 있고, 특히 계약직에 있어 본 사람이잖아요. 내가 그랬어요. ‘저 대학에서 비정규직으로 5년 일했다. 그게 얼마나 끔찍한데 나한테 같은 부서 같은 동료를 계약직으로 계속 쓰라느냐.’ 이 동료도 여기 오기 전 다른 종교재단 직장에서 정규직 전환을 믿고 5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했다가 뒤통수 맞고 나왔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세번째 직원을 충원할 때도 무기계약직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사람을 쓰도록 만들었다. 정아씨 혼자서가 아니라 먼저 정규직으로 전환한 동료와 의견을 모으며 함께했다. 노동조합이 없으니, 힘 있는 윗사람을 설득해 움직이게 했다. 한명이라도 정규직이 되면 좋은 선례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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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 있을 때 보이는 것들”

“종교단체를 직장으로 선택하는 데에는 경쟁이 아니라 수평적인 구조에서 협력 관계로 일해보겠다는 마음이 클 거예요. 동일한 업무에 정규직과 계약직, 무기계약직으로 차등을 두는 건 편법이죠.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정규직이고 누구는 계약직이라면 동등하게 일할 수가 없죠. 똑같이 책임을 나눌 수가 없어요. 정규직 일반 사원한테 비정규직 직원 관리까지 하면서 일을 하라는 거거든요. 예를 들면 주방 같은 경우는 한명만 정규직으로 하고 나머지를 다 일용직으로 써서는, 정규직 한명에게 일용직 관리를 맡겨요. 그럼 그 사람은 공공의 적이 되죠. 원래 관리자가 먹어야 하는 욕을 직원이 대신 먹는 거죠. 내가 대학에서 비정규직으로 5년 겪어보니 그래요. 대학에 비정규직이 좀 많은가요.”

비정규직 조교는 정아씨가 당사자. 계약직 교수와 시간강사, 대학원생 조교가 어떤 처우를 받는지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청소 노동자와 주차·경비 노동자가 어떻게 아웃소싱되는지도 보았다. 대학 사회에서 층층이, 켜켜이 불공평과 차별을 쌓아가는 모습을 세세히 보았다.

“그냥 이렇게 밑바닥에 있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밑에서 올려다봤을 때 보이는 것들이요. 어떻게 보면 그때 학교에서 누군가 나를 정규직 전환에 추천해주지 않아 상처받고 떠났지만, 사실 있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있고 싶지 않았어요”를 곰곰 들여다본다. 정아씨는 “사실 잊고 싶지 않았어요”라고도 말했을까.

이제 정아씨의 일터에서는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가 거의 이뤄졌을 거라는데, 일반 직원으로서는 정확히 다 알 수는 없을 터. 우리 사회 곳곳 비정규직 문제는 더 많고 깊다.

정아씨는 밤마다 기도문을 외는 기도 말고도 더 기도한다.

“뭐 해달라는 기도보다는 고맙다는 기도를 되게 많이 해요. 퇴근해 집에 오면 엄마 밥을 먼저 챙겨드리고, 우리 집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길고양이 밥을 챙겨줘요. 밥을 먹이는 건 얼굴을 보는 거죠. 살아 있으니까 얼굴을 보겠죠? 오늘도 얼굴을 봤다는 것에 감사 기도를 해요. 세상 모두가 편안히, 배부르고 등 따습게 잤으면 좋겠다고 기도해요.”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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