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유망주, 스마트팜]⑤ 무더운 베트남에서 겨울 딸기 키우는 비결은… ‘종자부터 기술까지’ 뻗는 K농업

하노이=김민정 기자 2023. 11.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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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의 ‘아페스 스마트팜’ 방문해 보니
한국 품종 딸기 기르는 기술력에 바이어도 ‘관심’
韓 농기계도 덩달아 인기… ‘패키지 수출’ 노린다
양잠·땅콩·종자 기술력 전파해 상생 방안 찾는 코피아
지난 9일 찾은 베트남 하노이 탄찌(Thanh Trì) 지역의 아페스 스마트팜 내부 모습. 온실에서 딸기가 줄지어 자라고 있다. /김민정 기자

“무더운 날씨인데 추운 곳에서 자라는 딸기를 재배한다고 하니 처음에는 다들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하더라고요.”

지난 9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차를 타고 출발해 남쪽으로 50분쯤 달리자 온실처럼 생긴 10여개의 비닐하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하노이에서 12㎞ 떨어진 탄찌(Thanh Trì) 지역에 있는 이 농장은 하노이에서 유일하게 딸기를 재배하는 곳이다. 현장에서 만난 김진성 아페스 대표는 “여름 날씨인 하노이에서도 겨울 과일을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딸기를 선택했다”면서 “이것을 보여주면 베트남 어디서든 원하는 과일을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철골 비닐하우스 형태인 이 스마트팜은 총면적 1만2120㎡(약 3672평) 규모다. 고온 극복형 냉방시설과 복합환경제어 시스템이 적용된 구조로 총 14개의 비닐하우스가 붙어있는 형태다. 아페스는 베트남 현지 온실에서 딸기와 참외, 멜론 등 베트남에서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과일들을 길러내고 있다. 베트남에 한국 종자, 영농기술, 스마트팜 등을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지난 9일 찾은 베트남 하노이 탄찌(Thanh Trì) 지역의 아페스 스마트팜 외부 모습. 총 14개의 비닐하우스가 붙어있는 구조다. 한국형 스마트팜이 베트남에 지어져 있다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김민정 기자

◇ “日 품종 비켜” 한국 종자·기술력으로 기른 딸기

요즘은 겨울 제철 과일이 돼버린 딸기를 연중 무더운 날씨인 베트남에서 기르기 위해 아페스는 ‘밤 냉방’ 기술을 선택했다. 오후 3시쯤 방문한 아페스 온실은 30도를 넘는 더위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겨울에 딸기를 기르려면 낮에 난방을 가동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야간에 해가 떨어질 때 냉방기를 켜 온도를 뚝 떨어뜨린다”라며 “온도 차이가 클수록 딸기의 당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낮에는 온실 안에서 병해충으로부터 딸기를 지키고, 밤엔 냉방기를 가동해 딸기를 기르는 것이다.

딸기 뿌리 쪽을 따라 설치된 공조기는 딸기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밤에 공조기를 가동해 냉기를 주입하고 제습하면서 겨울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는 셈이다. 스마트팜 천장은 이중스크린으로 제작돼 있었다. 차광막으로 강한 빛을 차단해 온도를 낮추기도 하고, 산란광을 통해 광합성 효율을 높이기도 한다. 스마트팜 솔루션 기계에는 딸기가 자라는 환경 데이터가 모인다. 베트남에서 딸기가 잘 자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아페스가 온실에서 기르는 딸기는 국산 ‘고슬’ 종자다. 아페스는 5년간 고슬 딸기를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 독점 공급하고, 품종 재배에 대한 사용료를 받을 수 있다. 김 대표는 “베트남 농가에서는 대부분 일본 품종의 딸기를 기른다”라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인 ‘종자 산업’을 키우고, 일본 품종을 대체해 국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 하노이의 아페스 스마트팜에서 딸기가 자라고 있다. 딸기 뿌리 쪽을 따라 수로와 냉방 시설이 설치돼 있다. 스마트팜의 모든 구조물은 국산으로 이뤄져 있다. 냉방 호스에 난연(難燃) 글자가 쓰여있다. /김민정 기자

아페스는 지난해 9월 딸기 작물 재배를 시작해 올해 초부터 3월까지 수확했다. 수확량은 총 3310kg으로, 당도는 평균 11브릭스(Brix) 안팎이었다. 우리나라의 하나로마트와 비슷한 현지 마트와 수확 체험, 현장 판매 등을 진행해 전체 수확물을 모두 판매했다. 3000평이 넘는 스마트팜 시설 중 딸기만 총 7824㎡(약 2370평)를 심었는데, 현지에서 모든 물량을 소화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스마트팜 수출을 촉진하고, 국내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발판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 6월 하노이에 아페스와 손을 잡고 시범(데모) 온실을 구축했다. 우리 정부가 70%, 아페스가 30%를 투자해 지은 스마트팜이다. 스마트팜 내부에는 국산 냉방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다양한 회사의 농기계들이 줄지어 있었다. 한국 기술력으로 베트남 현지에 맞는 재배법을 개발해 현지에 알리면서 동시에 한국산 제품 수출까지 연계할 수 있는 중심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 손잡고 함께 나아가는 ‘패키지 수출’ 꾀하는 정부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은 한국 농업의 수출 활성화를 위해 기자재·인력·기술 등을 패키지로 묶어 수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페스같은 ‘한국형 스마트팜’ 수출거점을 외국에 구축한 뒤, 국내 스마트팜 기업·종사자의 해외 진출을 돕는 것이다.

지난 2021년 카자흐스탄에 이어 지난해 6월 베트남 사업을 시작했고, 올해 12월에는 호주에 스마트팜을 짓고 현지 협력 기관과 손잡는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카자흐스탄 국립농대, 베트남에서는 베트남농업과학원(VAAS), 호주에서는 그리피스 대학교와 협력해 스마트팜을 운영한다.

농진원은 지난 8일과 9일 베트남 현지 협력 기관이나 바이어와 국내 기업이 만나는 장도 마련했다. 하노이 그랜드플라자 호텔에서 ‘K-농업기술 비즈니스 매칭 상담회’를 열고 참가기업과 바이어 간 1대 1 매칭 상담회를 진행했다.

김진성 아페스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와 신연중 아페스 베트남 법인장(오른쪽 맨 끝)이 스마트팜을 방문한 바이어들과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스마트팜에는 딸기가 줄지어 자라고 있다. /김민정 기자

하노이 현지에서 만난 바이어들은 한국 스마트팜 기술력을 기반으로 딸기, 멜론 등 고부가가치 작물들을 기르고 싶다고 했다. 다만, 비용적 측면에서 다소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베트남 농산물 유통업체 농산반부온(Nông Sản Bán Buôn)의 탕 반 호앙(Thang Van Hoang) 대표는 “베트남에 온실은 있지만, 내부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팜은 거의 없다”라면서 “온도 조절로 고급 작물들을 효과적으로 많이 생산할 수 있어 관심이 가지만, 투자 비용이 높다는 게 장벽”이라고 말했다.

◇ ‘中 대체할 생산기지’ 역할 맡는 베트남 양잠

정부는 베트남에 국내 농업기술을 전파하면서 종자부터 스마트팜까지 묶어 전파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개발도상국 현지 농업기관과 협력해 국가별 맞춤형 농업기술을 개발·실증·보급해 생산성을 높여 소득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농진청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코피아·KOPIA) 센터는 베트남을 ‘1호 사업지’로 선택한 뒤 아시아 8곳, 아프리카 7곳, 중남미 6곳 등 총 23개국으로 뻗어나갔다.

베트남을 1호 사업지로 선정한 이유는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협력 관계가 끈끈하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은 베트남의 3대 교역 파트너이자 1위 투자국이다. 베트남은 한국의 4대 교역 상대국이자 아세안 지역 내 최대 개발 협력 파트너다.

현종내 코피아(KOPIA) 베트남 사무소장이 누에고치로 만든 홍보물을 들고 있다. 코피아 베트남 센터는 하노이 베트남농업과학원(VAAS)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 /김민정 기자

코피아는 베트남 기후에 맞는 흰 누에 신품종 ‘VH2020′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했다. 코피아가 양잠(養蠶) 사업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실크 생산량 세계 1위의 중국 시장을 대체하기 위해서다. 노동 집약적 산업인 양잠은 중국이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코로나19 이후 생산성이 저하되며 단가도 껑충 뛰었다.

코피아는 베트남에서 고품질의 누에를 기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한국 양잠 기술을 도입해 양질의 실크로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양잠 사업은 벼 생산의 3.3~4.6배, 옥수수 생산의 5.6~8.3배 소득을 올릴 수 있어 베트남 농민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현종내 코피아 베트남 사무소장은 “베트남이 중국을 대체하는 원료 생산 기지로 부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라면서 “양질의 실크를 생산해 한국 견직 업체에 보급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피아가 베트남 농가에 전파한 누에 '한국식 3단 재배 방식'. 베트남 양잠 농가는 전통적으로 바닥에서 누에를 키운다. 코피아는 철제 3단 선반에서 누에를 사육해 품질 및 수량성이 높고 노동력이 절감되는 재배 방식을 전수했다. /코피아 베트남 센터

베트남 중북부 지역 환경에 적합한 땅콩 종자를 개발하고 재배 기술을 전파하는 역할도 맡았다. 베트남에서 땅콩을 대부분 노지 재배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본 코피아는 비닐을 씌우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땅콩을 심도록 재배법을 개선했다.

시범 생산 단지가 땅콩 수확에 성공하자 하노이에서 300㎞ 떨어진 곳부터 다낭 인근 지역까지 총 1430헥타르(㏊)에서 한국 기술이 접목된 땅콩이 생산되고 있다.

현 소장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땅콩 수출을 하고 있지 않아 베트남 생산량이 올라가도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며 “베트남 농가의 생산성이 올라가면서 한국 농기계 수출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피아는 한국의 채소 종자를 베트남으로 수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베트남 기후에 적응한 한국산 양배추 ‘CT 17′과 참외 ‘슈퍼007 허니(honey)’, 무 ‘송정’, 상추 ‘하청’ 등을 수출해 연간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곽성일 대외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베트남 인구의 약 60% 정도는 농촌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라며 “베트남 마을 단지에 우리 농업을 통해 농가 소득을 높이는 등 성공 사례를 만들면 주변 마을로 퍼져 수출에도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지원: 2023년 FTA이행지원 교육홍보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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