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최강의 집착·탐지력·끈질김 소유…사람이 이 전쟁 이길 수 있을까 [매경데스크]

이호승 기자(jbravo@mk.co.kr) 2023. 11. 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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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활용도 검토될만큼
인간 탐지능력 뛰어난 빈대
살충제 저항성 키우며 진화
국제교류 늘면서 전세계 몸살
생태계 파괴하는 인간이지만
해충과의 싸움에선 유독 약해
해충 완전박멸은 비현실적
실태파악과 빠른대응으로 관리해야
14일 오후 서울 구로구 코레일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에서 방제 관계자들이 빈대 확산 방지를 위한 철도시설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5년. 미군 소속 국지전연구소(Limited Warfare Laboratory)는 신박한 실험을 시도했다. 당시 미군은 정글에 숨어 게릴라전을 펼치던 베트콩들에게 고전하고 있었다. 에이전트 오렌지 등 고엽제와 군견을 동원했지만 베트콩 색출과 섬멸은 쉽지 않은 일. 그때 미군이 주목한 건 빈대였다. 빈대는 인체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나 체온 등을 감지해 멋잇감(인간)을 찾는 능력이 뛰어나다. 다른 이점도 많았다. 군견보다 관리도 쉽고 운반도 용이하며 훈련도 필요 없다. 이, 쥐벼룩, 진드기, 모기 등 다른 만만찮은 독한 해충들도 실험 후보군에 포함됐지만 역시 발군의 능력을 보여준 것은 빈대였다. 하지만 연구진은 빈대들의 반응을 전자기적 신호로 증폭시켜 전장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까지 성공하진 못했다. 프로젝트는 결국 중단됐다.

과학전문 칼럼니스트 브룩 보렐의 책 ‘빈대는 어떻게 침대와 세상을 정복했는가’에 소개된 일화다.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의 유명한 빈대 일화에서도 나오듯 빈대는 물을 채운 세수대야 때문에 침상에 오르지 못하자, 벽을 타고 천장에서 고공낙하해 사람을 공격할 정도로 집요함과 뛰어난 탐지력을 갖고 있다. 끈질기기도 엄청나서 빈대의 고통에서 해방되려다 집까지 태워버린다는 옛 속담도 있다. 해외 여행길에 빈대를 달고 왔다는 한 지인은 집에서 빈대를 몰아내는데 1년이 걸렸다 한다.

빈대는 살충제에 대한 저항성을 키우며 지독하게 살아남았다. 미국과 유럽, 동남아 등 각지에선 일찌감치 창궐하며 사회문제가 됐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순례자들 뿐 아니라 빈대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순례길에 다녀온 이들은 다른 지역 호텔 투숙이 금지되는 일이 다반사다. 내년 올림픽 개최를 앞둔 프랑스에선 빈대가 재앙 수준으로 퍼져 비상이 걸렸다. 홍콩 역시 빈대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빈대의 디즈니랜드’란 비웃음을 산다. 코로나19가 사실상 종식되면서 급격히 늘어난 인적·물적 국제 교류는 빈대들을 글로벌화시켜버렸다.

한국도 1970년대 살충제 DDT로 빈대가 박멸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외국인·해외 여행이 늘면서 다시 빈대 공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서울 자치구 절반 이상에서 빈대 의심 신고가 이뤄졌다. 기숙사, 고시원, 찜질방부터 열차 내에서도 신고가 잇따른다. 정부는 빈대 정부합동대책본부를 출범하고, 12월 8일까지‘빈대 집중 점검 및 방제 기간’으로 정했다. ‘빈대 제로’를 외치고는 있지만 솔직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인류는 무지바한 생태계 파괴자다. 2018년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론 밀로 교수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진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류는 지금까지 야생 포유동물 83%와 식물의 절반을 멸종시켰다. 2019년 ‘생물 보전‘ 저널에 실린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독일, 영국, 푸에르토리코 등에서 해마다 곤충 총량이 2.5%씩 줄어들고 있고, 수십년래 전세계 곤충종 40%가 멸종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이토록 난폭한 인간이지만 유독 해충과의 전쟁에선 약한 모습을 보였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빈대는 물론이고, 바퀴벌레, 모기 등도 여전히 건재하다. 빈대만 해도 이미 피레스로이드 계열 살충제에는 저항성을 가지게 됐고, 침구 뿐아니라 전기콘센트 등으로 은신처를 옮기는 등 갈수록 진화 중이다.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는 70년대 국내에선 사라졌다지만 최근 재유행한다. 모기와 진드기가 매개체인 일본뇌염, 쯔쯔가무시증 등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찜찜하지만 인류는 해충들과 어느정도는 공생할 수밖에 없는 숙명인가보다. 빈대 사태 대처도 실현 불가능한 ‘박멸’이나 ‘제로’를 내세우기보다는 조기대응과 확산방지 등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게 현실적으로 보인다.

좀더 조직적인 사회적 방제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실태파악이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신고의무가 없다보니 실태파악이 안되는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진 않지만 빈대의 번식력, 피해자들의 고통 등을 감안하면 법정감염병에 준하는 대응을 검토해볼 시점”이라며 “신고자에게는 방제 지원 자금을 지원하며 좀더 적극적으로 신고가 이뤄지도록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호승 콘텐츠기획부장(jbravo@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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