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물맛'…이렇게 흘러 왔구나

정종오 2023. 11. 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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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전 상수도 공무원들의 분투기, ‘서울 물 만드는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 발간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일본말로 돼 있던 상수도 관련 기술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고, ‘실비제’였던 수도관 인입공사비를 ‘정액제’로 만들고, 직결급수 추진을 위해 지하 저수조를 없애고, ‘아리수’를 브랜드화 하는 등 서울시 상수도와 관련된 일을 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울역사편찬원이 ‘서울 물 만드는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를 발간했다. 서울의 ‘물맛’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생생한 역사 속에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1970~80년대 산업화 시기는 서울의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난 시기다. 급격한 인구 증가에 미치지 못하고 생활에 필요한 기반시설(인프라)은 항상 부족한 실정이었다. 교통과 주택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시기 서울 곳곳은 언제나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시기 시장들은 모두 토목공사와 관련된 별칭을 얻었다. ‘불도저’로 불렸던 김현옥 시장, ‘두더지’로 불린 양택식 시장, ‘황야의 무법자’로 불린 구자춘 시장. 서울은 언제나 만원이었고, 언제나 공사 중이었다.

서울 중구 배재어린이공원에 아리수 음수대가 설치돼 있다 [사진=뉴시스]

상수도 역시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부족한 수돗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서울 곳곳에 배수지가 건설됐고 수도관 공사도 밤낮으로 이어졌다. 고지대에 사는 시민들은 물 부족에 시달려야했다. 이 시기 우리네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동수도나 급수차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구청이나 시청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게 된 수돗물의 배경에는 서울시 상수도의 발전과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서울 물 만드는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는 상수도 시설과 행정의 역사와 함께 일했던 담당 공무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 책에는 △김정수(전(前) 서울시 수도국 기전과장)을 비롯해 △김의재(前 서울시 제1부시장) △김홍석(前 서울시 상수도본부 차장) △진익철(前 서울시 상수도본부장)의 이야기가 담겼다.

서울역사편찬원이 ‘서울 물 만드는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를 발간했다 [사진=서울역사편찬원]

◇상수도 기술용어 사전을 우리말로=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김정수 전 과장이 맡았다. 1935년생으로 1971년 수도국 기계계장으로 발령받았다. 그 당시 서울 곳곳에는 추가로 배수지가 건설 중이었다. 늘어나는 인구와 사용량을 감당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수준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당시 상수도 부문의 기술 용어는 대부분 일본식이었다. 광복 이전 일본인들이 운용했던 상수도 시설을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청계천 헌책방을 뒤져가며 일본책을 구해 따로 상수도 분야를 공부해 용어를 우리 식으로 바로 잡았다. 그 지식으로 후배들에게 상수도 기술교육을 이어 나갔다.

◇실비제를 정액제로, 일대변혁=김의재 전 제1부시장은 1937년생으로 수도국 업무과장을 비롯해 서울시 감사관, 상수도 본부장을 거쳐 제1부시장을 지냈다.

그는 1982년 수도국 업무과장을 맡았을 당시 기존의 ‘실비제’였던 수도관 인입공사비를 조사를 거쳐 정액제로 바꿨다. 서울시 ‘수도조례’로 명문화하기도 했다.

당시 강남에는 대형 아파트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동시에 주변에 대형 수도관이 부설됐다. 그 수도관에서 각 가정으로 수도가 연결되며 서울시는 공사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실제로 1984년에만 240억원의 큰 흑자를 낼 수 있었다. ‘수도공사 정액제’가 수도 역사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직결급수가 필요하다=김홍석 전 차장은 1940년생으로 서울시 수도국 구의수원지 사무소장, 수도국 수원기전과 과장, 수도기술연구원 소장을 비롯해 상수도본부 차장을 지냈다. 당시 서울의 확장과 개발에 따른 물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있던 소형 임시 배수지로는 역부족이었다.

김 전 차장은 1980년대 당시 상계동 지역에 대형 아파트단지를 건설하고 있던 대한주택공사의 협조를 얻어 해당 지역에 10만톤 규모의 월계배수지를 만들었다.

이때 김 전 차장이 강조한 것은 선입선출과 직결급수다. 선입선출이 되지 않으면 어딘가에서 물이 고여 썩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주택가 옥상에 있던 노란색 물탱크, 혹은 지하 저수조가 문제의 대상이었다.

목동 아파트단지 건설 단시 직결급수 추진을 위해 지하 저수조 대신 대형 배수지를 건설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수돗물도 브랜화가 필요하다=1951년생인 진익철 전 본부장은 서울시 상수도국 업무계장을 비롯, 환경국 국장 등을 지냈다. 그가 상수도본부장으로 취임할 당시 가장 큰 현안은 시민들의 음용률이었다.

깨끗한 물의 음용을 위해 세금이 크게 투입됐는데 수돗물 음용은 낯설고 꺼려지는 존재였다. 김 전 본부장은 ‘아리수’를 브랜드화하고 페트병에 넣어 판매하는 것을 기획했다.

시민들의 음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아리수를 판매해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두고 당시 정치인들이 “시민들에게 물까지 팔려고 하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아리수의 수질 향상에 1조원 이상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 비판하지 않았는데 그들을 완전히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여전히 아쉽다고 김 전 본부장은 말한다.

‘서울 물 만드는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는 서울 주요 공공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서울시청 지하 1층의 시민청에 있는 서울책방에서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으로도 열람할 수 있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이번 ‘서울 물 만드는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는 그 시절 서울의 상수도 건설과 운영, 안전한 수돗물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했던 상수도 공무원들의 모습을 생생히 엿보는 기회”라며 “앞으로도 더 다양한 주제의 역사구술자료집 발간을 통해 시민들이 서울의 역사를 더욱 생생히 접하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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