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탈날까 계란 두번 굽고 절·교회 찾아 기도…"아가, 수능 잘봐"
"빨리 일어나. 오늘 수능 보는 날이잖아."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당일인 16일 이모씨(53)가 오전 5시에 일어나 부엌에서 쌀을 씻었다. 오전 8시40분부터 수능을 보는 딸 정모양(18)을 위해서다. 수능 날은 급식이 따로 나오지 않아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이씨는 정양이 평소 좋아하는 불고기와 계란말이를 준비했다. 살짝 덜 익은 계란말이를 자르던 이씨는 시험 중 혹여나 배탈이라도 날까 다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잠에서 덜 깬 표정으로 부엌에 온 정양에게 이씨는 도시락부터 들이밀었다. 이씨는 도시락 뚜껑을 하나씩 열며 "음식이 되게 맛있게 됐다. 든든히 챙겨 먹고 시험 보자"고 말했다. 도시락 가방엔 초콜릿, 귤, 물, 비타민도 담았다.
정양을 차에 태운 이씨는 운전대를 잡고 "휴대폰은 어떻게 하냐, 시계는 잘 챙겼냐, 신분증과 수험표도 가지고 왔냐"고 딸을 챙겼다.
이씨는 차가 잠시 멈출 때마다 "할 수 있다!"고 외치며 딸의 손을 잡았다. 긴장한 딸을 흘끔흘끔 바라보던 이씨는 "밖에 해가 뜨고 있다. 미래도 같이 밝아지는 기분이다"며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오전 7시30분 경기 의정부시 호원고 앞에서 급하게 내리는 딸에게 이씨는 "도시락 챙겨가라"고 외쳤다. 정양은 도시락을 챙기곤 차 앞에서 "시험 잘 보고 오겠다"고 인사했다. 이씨는 "시험 끝나고 맛있는 저녁 먹으러 가자"고 답했다.
이씨는 딸의 뒷모습을 1분간 멍하니 바라봤다. 이씨는 "짠하다. 수시 합격해서 편하게 대학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긴 시간 혼자 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이지 않냐"고 말했다.
수험생 가족을 둔 학부모들은 이날 저마다의 방식으로 뒷바라지를 했다. 아이들을 수험장에 보내고 기도할 곳을 찾은 학부모, 조부모들도 많았다. 절과 교회 등 장소는 달랐지만 수험생을 향한 간절한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오전 8시,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서울 강남구 봉은사 대웅전 앞 220개의 좌석은 신자들로 가득 찼다. 야외에 마련된 초 공양대 앞에서 우산도 쓰지 않고 자녀를 위해 두 손을 모으는 이들도 많았다.
50대 남성 A씨는 장수생인 아들을 위해 기도하러 사찰을 찾았다. A씨는 "처음엔 수험 생활이 길어져 반대도 했지만 진로 때문에 선택한 길을 응원하기로 했다"며 시험이 끝나면 아들을 안아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예진씨(29)는 3수생인 동생을 생각하며 사찰을 돌았다. 박씨는 "시험을 여러 번 봤으니 이 과정이 익숙해져서 실수할까 봐 걱정"이라며 "중간에 안돼도 포기하지 않고 긴장감을 갖고 시험에 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진행된 '수능 기도회'에도 1000여명의 사람이 예배당을 채웠다. 기도회는 오전 8시40분부터 진행되는 국어 영역과 함께 시작 예정이었으나, 오전 8시가 채 되기도 전부터 성도들은 하나둘 예배당에 나와 기도를 시작했다.
민현주씨(53)는 "떡갈비, 소고기뭇국 등 아침에 도시락을 싸고 데려다주느라 기도회에는 조금 늦게 왔다"며 "아들 키가 185㎝인데 아까 '엄마 시험 잘 못 볼 것 같아요'라며 다 큰 것이 울먹거려서 덩달아 마음이 그랬다. 꼭 안아주고 왔는데 잘 보고 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딸 두 명이 모두 수험생인 이씨(50대 중반)는 "딸들이 모두 수능을 보는데,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하러 왔다"며 "딸들에게 국어 선생님이 해줬다는 말이 있다. '찬란한 미래를 향하여'라는 문구인데, 아침에 갑자기 생각나서 딸들을 한 명씩 안아주면서 '찬란한 미래를 향하여'라고 말해 줬다"고 했다.
짧은 계단을 오르는 것도 버거워 숨이 차는 어르신들도 손주들 걱정에 이른 시간부터 기도회에 나왔다. 손녀딸을 직접 다 키웠다는 문창숙씨(76)는 "집에서 혼자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이렇게 와서 기도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며 "내 손으로 키우니 더 애틋하다. 하나님의 섭리대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여의도순복음교회 수능 기도회는 실제 수능 시험 시간표와 동일하게 진행된다. 국어 영역이 시작되는 오전 8시40분부터 제2외국어가 끝나는 오후 5시45분까지, 약 9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정진솔 기자 pinetree@mt.co.kr 김온유 기자 onyoo@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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