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ip] 아제르바이잔 여행② 북서부 키날리크, 셰키

2023. 11. 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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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람, 역사와 예술을 품다
‘산 속의 섬’ 키날리크 vs ‘실크로드의 시간’ 셰키

국토 면적의 약 60%를 차지할 만큼 아제르바이잔은 산봉우리로 덮여 있는 나라다. 산악 지형이 넓게 형성되어 있어 인근 소도시나 산악 마을로의 여행이 유독 관심을 끈다. 그 중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대 코카서스 산맥 주변에 두 개의 산악 마을이 있다. ‘산 속의 섬’이라 불리는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높고 외진 마을인 키날리크(Khinaliq)와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셰키(Sheki)가 바로 그곳이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높은 키날리크 마을
[챗GPT로 요약한 ‘아제르바이잔 여행2’ 미리보기]
아제르바이잔 여행기②에서는 산악 마을인 키날리크와 셰키의 두 지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출발과 교통의 어려움으로 시작된 여행에서 키날리크로 향하는 여정에서 프라이빗 택시 대신 히치하이킹을 선택한 경험이 나와있습다. 키날리크는 고립된 산악마을로, 특이한 언어와 독특한 환경, 주민들의 어려움 등이 소개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독특한 매력과 어려움 속에서 찾은 소소한 행복들이 여행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키날루크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이 없어 현지인의 홈스테이가 주로 제공되며,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가족들의 소개와 이 지역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키날루크의 에코마마 게스트하우스를 중심으로 현지 생태관광과 관련된 이야기도 소개되었습니다. 셰키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실크로드의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 꼽힙니다. 여행자는 셰키에서 역사적인 건축물과 실크로드 시대의 문화적 유산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셰키의 중심부와 궁전, 교회, 백인 알바니아 교회 등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명소로 언급되었으며, 특히 역사적인 건축물과 문화적 영향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지 예술인의 샤바카 공예, 키시 교회, 그리고 실크로드 시대의 여관인 캐러밴세라이 등이 셰키의 문화적인 풍경과 예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내용도 다루고 있습니다.

불편한 여행의 시작, 쿠바(Quba)로 향하다
바쿠에서 가장 부유하고 화려한 곳, 도시의 중심부인 니자미 거리의 호화로운 풍경을 뒤로 하고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목은 그제서야 현실에 당도한 것 같은 기분을 안겼다. 니자미 거리에서 북쪽으로 약 6㎞ 떨어진 곳에 자리한 바쿠 최대 규모의 버스터미널은 타이틀과 어울리지 않게 간이터미널에 가까운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았다.
“아제르바이잔의 최대 도시 바쿠의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자 소도시로 떠나는 발걸음에 기대와 더불어 염려가 따라붙었다. 경험상 편리한 여행은 재미를 반감시키고 불편한 여행은 재미를 배가시킨다. 그렇기에 염려와 더불어 재미도 따라붙을 것이었다.”
쿠바행 시외버스(좌), 아제르바이잔의 고요한 소도시 쿠바 도심 전경(우)
첫 번째 소도시 여행의 목적지는 쿠바(Quba). 사실 최종목적지는 산골마을 키날리크(Khinaliq)다. 바쿠에서 키날리크까지 직행버스가 없어 우선 쿠바에 간 다음 다시 키날리크 이동 계획을 세웠다. 쿠바까지는 바쿠에서 약 160㎞,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쿠바 남서쪽에 자리한 키날리크까지는 쿠바에서 약 52㎞, 셰어택시로 대략 1시간30분 거리다. 두 번의 이동을 한날에 모두 해치울 생각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고 여행 아니겠는가. 출발시간을 한참 넘기고 나서야 만석을 재차 확인한 버스기사가 마침내 엔진에 시동을 켜고 핸들을 잡았다. 불편한 여행은 그렇게 시작을 알렸다.
아제르바이잔의 고요한 소도시, 쿠바 도심 전경
예상치 못한 일은 계속됐다. 쿠바에 도착한 뒤 현지인들로부터 이날 키날리크까지 가는 셰어택시가 운행을 멈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 궂은 날씨로 인해 이동이 금지된 상황으로, 키날리크는 산길을 달려야 하는 도로사정상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했다. 구름이 잔뜩 낀 쿠바의 하늘과 달리 키날리크엔 계속해서 장대비가 퍼붓고 있었다.
쿠바에서의 하룻밤이 여정에 불쑥 끼어들었다. 인적도 차량도 드문 고요한 소도시의 풍경, 구름이 한층 짙어져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날씨는 파전과 막걸리가 생각나는 저녁이건만 쿠바의 하늘 아래 이곳에서 택할 수 있는 옵션은 오직 하나. 숯불에 구운 꼬치구이와 생맥주로 허기진 몸과 마음을 달랬다.
숯불에 구운 고기와 맥주로 여정의 피로를 달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키날리크로
불편한 여행의 핵심은 교통편의 여부에 달려 있다. 특히 1인 여행자에게 이동에 따른 버스나 기차 등의 교통시설이 갖춰져 있느냐 없느냐는 여행의 질을 판가름하는 최우선 기준이 된다. 하지만 구불구불한 산길 이동은 그것 자체로 여행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쿠바에서 키날리크까지 1인 여행자에게 주어진 단 하나뿐인 옵션은 프라이빗 택시를 타는 것. 이른 아침부터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셰어택시를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했고, 결국 프라이빗 택시 대신 히치하이킹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앞서 키날리크를 다녀온 바쿠에서 만났던 한 여행자의 후기를 용기 삼아 도심과 떨어진 한적한 도로 위에서 엄지를 들었다. 일단 고요한 소도시에 나타나 엄지를 들고 있는 여행자의 차림새는 행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거리를 활보하던 행인들은 가던 길을 멈춰 서고 여행자에게 다가와 무슨 영문인지 묻기를 여러 번,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진심은 통한다.
히치하이킹으로 봉고차 운전자와 약 27km를 이동했다(위 2장). 두 번째 히치하이킹에선 키날리크 주민을 만났다(아래 2장).
“엄지를 든 여행자에게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이는 행인들의 눈빛에 호기심이 잔뜩 차오른다. 누군가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건 여러 번 경험해도 매번 새롭다. 상대의 눈빛이 매번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고됐지만 한방은 통했다. 처음 멈춰선 차량이 다행히도 키날리크와 방향이 같았다. 이 봉고차 운전자와 함께 약 27㎞를 이동했다. 절반 이상의 이동이었다. 히치하이킹의 이동은 언제나 그렇듯 쓰디쓴 인내와 달디단 열매가 항상 같이 따라 붙는다. 삶의 모든 순간에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긍정과 부정이 함께하듯이.
에덴동산과도 같은 아름다운 키날리크로 향하는 길
두 번째 차량이 나타나기까지 기다림은 또다시 고됐지만 또 한번의 한방이 여행자를 미소 짓게 했다. 키날리크에 산다는 운전자의 차량에는 조수석에 한 명, 뒷좌석에 두 명, 총 세 명의 건장한 남성이 타고 있었고, 트렁크에는 빵과 채소, 과일, 고기 등의 음식재료가 숨쉴 틈 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이들은 같은 마을에 사는 주민들로 쿠바에서 한 달치 식량을 장본 뒤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 같았다.
먹을 것이 귀한 산골마을의 삶이 불편한 여행이 일으키는 잡음을 단숨에 잠재웠다. 힘겹게 뒷좌석에 엉덩이를 집어넣곤 쥐 죽은 듯 창 밖만 응시했다. 산골마을에 점차 가까워질수록 슬픔은 없는 기쁨의 동산, 창 밖이 온통 ‘에덴동산’처럼 보였다.
키날리크로 가는 길
고립된 산악마을의 두 얼굴
“키날리크는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유명한 산악 마을 중 하나다. 러시아 북부 코카서스와 남부 코카서스를 나누는 대 코카서스 산맥 한가운데 위치하며, 코카서스에서 가장 높은 마을에 속한다.”
해발 2,500m 산악지대에 조성된,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높고 외진 고립된 마을이다 보니 마을 전체가 하나의 관광상품으로써 존재한다. 마을에 특별히 관광상품이라 할만한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진 마을이라는 환경 자체만으로 방문의 이유와 목적이 성립되는 곳이다. ‘산 속의 섬’이라 불릴 만큼 원뿔 모양 산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지형과 기후는 오랜 세월 이 마을만의 독특한 역사적, 민족적 가치를 키웠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높은 키날리크 마을(해발 2,500m)
특히 이곳에 거주하는 약 2,000명의 마을 주민은 오늘날까지도 ‘케츠(Ketsh)’라 일컬어지는 키날루크 고유언어를 구사하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산악지대 마을 특유의 고립된 언어, 고립된 생활환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돼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에선 9월이면 이미 겨울이 시작되는 데다 한겨울의 기온이 영하 30~40도에 달할 정도로 매우 춥고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길이 막혀 차량의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마을을 여행할 수 있는 시기는 7월과 8월 여름에 한정된다. 여름이라고 해 봤자 이곳의 최고기온은 영상 15~18도에 불과하다.
대 코카서스 산맥의 유려한 풍경
고립된 마을에는 관광시설은 둘째치고 상수도나 쓰레기처리장 등 일반적인 생활시설이라곤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산 속의 섬은 인터넷에서 보던 것처럼 유려한 자연경관이 황홀함을 선사해 몇 번이고 눈을 비비게 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을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상황은 나빠졌다. 개와 고양이의 똥인지, 쓰레기인지 모를 오물로 가득 찬 길은 진흙탕 천지고 여기서 진동하는 불쾌한 냄새는 곧장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이곳의 첫인상은 멋모르는 여행자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했을까? 아무리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산악마을이라고는 해도, 또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도 갖춰져 있지 않다 해도 그 정도 더러운 환경이 이해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랫동안 정돈되지 않은 지저분한 집과 그 주변 골목길은 마치 자연이 파괴된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정돈되지 않은 키날리크의 집과 골목길(좌로부터 1, 2번째 사진), 산악마을에서 동물의 배설물은 주요한 땔감이 된다(우측 사진).
자연과 사람 그리고 홈스테이
키날루크에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이 없다. 이 마을의 유일한 숙박시설은 현지인이 거주하는 집에서 먹고 자는 홈스테이(Home stay)가 전부다.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가정도 손에 꼽힐 정도로 그 수가 적은 편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비슷한 형태의 집이 얼키설키 모여 있어 지도를 이용해 홈스테이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나치는 마을 주민한테 ‘홈스테이’라고 물은 뒤 안내를 받는 것이 이곳에선 지도보다 빠르고 현명한 방법이다. 이 마을의 터줏대감이라 불리는 에코마마 인 키날루크 게스트하우스(Ecomama in Khinalig guest house)는 그 방법을 이용해 쉽고 빠르게 찾았다.
키날루크의 대표 숙박시설인 홈스테이
이 집의 주인장 라흐마(Rahma) 씨가 전 세계에서 찾은 관광객을 맞이한 건 10여 년 전의 일이다. 키날루크에 생태관광시대를 열겠다는 그의 당찬 포부가 홈스테이의 시작이었다. 그의 아내와 아들, 딸이 함께 사는 전통가옥은 그의 부모님이 평생을 거주했던, 그의 50년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으로 겉보기엔 낡고 오래됐지만 기나긴 세월만큼 특별함이 곳곳에 자리한다. 그 특별함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세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시간여행의 재미를 안긴다.
과거로의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재래식 화장실과 얼음장 같이 차디찬 수돗물, 불편한 잠자리 등이 ‘재미’로 다가온 건 고작 하룻밤의 숙박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홈스테이 내부 거실 및 주방, 침실
사는 것과 머무르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런 점에서 ‘재미’가 홈스테이를 표현하는 알맞은 단어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곳에 머무르는 혹은 머물렀던 이들뿐이지 않을까.
키날루크에서 즐길 거리는 사실 홈스테이가 8할을 차지한다. 현지인 가족을 환대를 받으며 이들과 연대를 쌓고 이들의 일상을 곁에서 보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 홈스테이 안주인이 요리하는 전통요리를 맛보는 일,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창문 너머의 자연 경관을 감상하는 일 등이 8할을 채운다. 나머지 2할은 마을을 산책하는 것이다.
마을 산책 도중 만난 마을 아이들
산책 도중 마을에 있는 하나뿐인 시장과 찻집에 들르는 일은 필수사항이다. 여기에 뛰어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움직임을 관찰하거나 닭장을 탈출한 닭의 자유로운 발걸음을 쫓거나 하는 것도 산책의 즐거움 중 하나다. 자연과 사람이 전부인 마을, 그것이면 즐길 거리는 이미 충분하다.
키날루크의 하나뿐인 마켓(좌)과 하나뿐인 찻집(우)
가장 오래된 실크 도시, 셰키
아제르바이잔의 산은 국토 면적의 약 60%를 차지한다. 이는 대 코카서스, 소 코카서스, 탈리쉬 산맥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 아제르바이잔 북서부 지역에는 대 코카서스 산맥을 구성하는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해발 4,466m에 위치한 바자르두주(Bazarduzu) 산이 있다. 이러한 지형적 조건으로 인해 북서부 지역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도로가 제대로 닦여 있지 않은 것이 그 이유.
지도상 키날루크에서 셰키(Sheki)까지는 불과 약 100여㎞ 거리지만 이 둘 중간에 자리한 바자르두주 산이 이동의 편의를 보장하지 않는다. 방법은 하나, 100㎞ 대신 560㎞를 삥 돌아서 이동하는 것. 두 번째 북서부 소도시 여행의 목적지인 셰키를 가기 위해 약 210㎞를 달려 바쿠에 다시 돌아와야 했고, 거기서 셰키행 버스를 타고 다시 북서부 방향으로 약 350㎞를 이동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셰키. 실크 무역의 선도적인 국제중심지로 성장한 도시가 바로 셰키다.
셰키는 대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 경사면 눈 덮인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는 지역으로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은 기원전 8세기에 건설된 도시로 추정되는데, 성과 궁전, 교회, 전망대, 백인 알바니아 사원 등 초기 중세 건축기념물과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점이 관광객의 발길을 끄는 배경이다.
셰키 중심부와 셰키 칸 궁전(Palace of Sheki Khans)은 과거 실크로드를 따라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아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18세기와 19세기 셰키에서 생산된 실크는 세계에서 품질이 가장 좋기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전해진다.
셰키 도심 어디에나 공예품이 자리한다
“흔히 실크로드라고 하면 주로 사마르칸트나 부하라, 히바 등의 우즈베키스탄 도시를 떠올리는데, 셰키(sheki)는 이들 도시와 더불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로의 중추적인 허브로 각광받았다. 실크 무역의 선도적인 국제중심지로 성장한 도시가 바로 셰키다.”
고대 백인 알바니아 교회의 본거지이기도 한 셰키는 역사적으로 종교적 다양성을 대표하는 도시로 군림했다. 기독교는 이미 1세기에 이곳에 소개되었고, 이슬람교는 7세기에 전파됐다. 현재 셰키에 남아 있는 여러 교회와 모스크는 과거 백인 알바니아인의 흔적과 오늘날 이슬람국가로서의 아제르바이잔의 특색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흥미로운 관광요소다.
셰키 모스크(1번째 사진), 약 1,500년 된 키시 교회가 셰키 성 내부에 자리하고 있다(2, 3번째 사진).
특히 셰키 주변에 자리한 키시 교회(Church of Kish)는 약 1,5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 교회는 독립 국가 영연방 영토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건물로 간주된다. 현재 교회는 복원되어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문화와 예술을 아우르는 역사지구
무역의 중심지답게 셰키는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다. 이러한 문화적 요소는 건축물에 특징을 부여해 셰키 역사지구에 특별한 유산을 남겼다. 높은 박공 지붕을 갖춘 전통 가옥들, 붉은 벽돌과 붉은 조약돌, 여기에 ‘샤바카(Shabaka)’라 불리는 모자이크 격자 프레임이 결합되어 지어진 칸 궁전, 러시아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온 교회와 주택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름 궁전’이라 불리는 칸 궁전(좌)과 칸 궁전 서쪽에 자리한 샤바카(격자 프레임) 워크숍
‘여름 궁전’이라고도 불리는 칸 궁전은 1743년부터 1819년까지 코카서스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로 군림했던 셰키 카나트(Sheki Khanat)의 여름 거주지로 쓰였다. 역사적으로 실크로드를 통해 거래되었던 이란의 거울 세공, 러시아 목재, 오스만 도자기, 프랑스 스테인드글라스가 이곳 궁전 내외부에 고스란히 장식되어 있어 화려했던 실크로드 시대상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특히 창문에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자연과 결합되어 다양한 컬러의 빛과 광선을 내뿜기 때문에 다채로운 궁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셰키의 민속공예이기도 한 샤바카는 접착제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 수백, 수천 개의 작은 유리 조각을 조립하듯 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샤바카의 기하학적 패턴은 태양, 생명 에너지, 시간의 영원한 흐름, 우주의 무한함을 상징한다.
셰키의 민속공예인 ‘샤바카(Shabaka)’ 장인 라수로브 토피그 씨
칸 궁전 서쪽에 샤바카 워크숍이 자리하는데, 이곳의 주인장 샤바카 장인 라수로브 토피그(Rasulov Tofig) 씨는 “아버지에서 자신으로, 아들로 3대째 샤바카 공예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리 조각은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해 조립을 하기 때문에 공정과정은 그야말로 과학적인 측면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의 아버지 라수로브 아슈라프(Rasulov Ashraf, 1928~1997) 씨는 20세기 샤바카 예술의 부활을 이끈 장본인으로 샤바카 전통이 순수하고 고전적인 형태로 계승 및 발전될 수 있도록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샤바카 공예는 100% 수공업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창문 하나를 제작하는데 크기에 따라 3~6개월가량 소요된다고 한다.
요새화된 구조물 형태로 지어진 하부 캐러밴세라이(Caravanserai: 여행자숙소)
셰키의 역사지구에서 건축물을 논할 때는 캐러밴세라이(Caravanserai: 여행자숙소)를 빼놓을 수 없다. 실크로드 무역이 한창이던 당시 셰키에는 상인들의 여관으로 사용된 5개의 캐러밴세라이가 자리했다. 이 중 현재까지 남아 영업 중인 ‘하부(Lower) 캐러밴세라이’ 한 곳이 호텔이자 관광명소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요새화된 구조물 형태로 지어진 역사적인 숙박시설은 위험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설계가 중심을 이룬다.
4개의 입구는 건물의 네 모퉁이에서 각각 마당으로 연결되며, 1층의 넓은 내부 안뜰과 창고는 실크로드 당시 마차와 상인들의 짐을 보관하던 공간이자 물물교환과 협상이 이뤄지는 시장으로 활용되었다. 셰키 역사지구를 방문한다면 실크로드 상인이 된 것처럼 유서 깊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청해보는 건 어떨까? 여전히 살아 숨쉬는 셰키의 역사지구, 오늘날의 실크로드는 여행을, 그리고 여행자를 그렇게 오늘도 이어본다.
[글과 사진 추효정(c5718447@naver.com) 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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