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겨울철 당기는 피부도 촉각일까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3. 11. 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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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추위가 갑자기 찾아왔다. 이달 초만 해도 낮 기온이 20도 중반이더니(경남 김해는 30도를 기록한 날도 있다) 아침에 영하로 내려가고 낮에도 5도 내외다. 이처럼 추위가 찾아오면 동시에 공기도 건조해지는 게 우리나라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피부 관리에 소홀하면 문제가 생긴다.

고온다습한 여름을 나는 건 고역이지만 대신 씻고 나서 굳이 로션을 바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요즘은 씻고 나서 그냥 두면 피부가 당기는 불편한 느낌이 든다. 결국 몇 달 만에 다시 로션을 바르는데, 피부가 한결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다들 일상에서 느끼는 경험이겠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놀라운 현상이다. 기껏해야 1그램도 안 되는 양의 로션을 얼굴에 아주 얇게 발랐을 뿐인데 어떻게 피부가 당기는 느낌이 바로 사라질 수 있을까. 최근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넥서스’에 그 답을 알려주는 논문이 실렸다. 

요약하자면 대기 건조나 씻을 때 비누 같은 세정제 사용으로 수분이나 지질이 빠져나간 각질층이 수축하며 생긴 변형력을 감지한 촉각수용체가 신호를 전달해 피부가 당기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때 로션 같은 보습제를 바르면 수분과 지질이 채워진 각질층이 다시 늘어나면서 변형력이 사라져 신호가 꺼지면서 불편한 느낌도 없어진다. 그런데 피부가 당기는 느낌도 촉각일까. 

● 죽은 세포층의 수축 감지

먼저 피부를 잠깐 들여다보자. 피부는 깊이에 따라 세 개 층으로 나뉜다. 표면에서부터 표피, 진피, 피하지방으로 나뉘는데 각각 기원이 달라 서로 섞이지 않는다. 피하지방은 말 그대로 피부 아래층에 얇게 깔린 지방층으로 진피와 근육 사이에 자리한다. 

 
피부 중간층인 진피는 두께가 1~2㎜로 기능이 팔방미인이다. 먼저 다양한 센서(수용체)가 있어 가려움, 통증, 열기와 냉기를 감지해 뇌로 정보를 보낸다. 땀샘과 피지샘도 있어 땀과 피지를 만들어 피부 밖으로 분비한다. 진피는 콜라겐과 엘라스틴 단백질을 적절히 배치해 부피와 탄력을 유지한다. 

 
피부 맨 바깥층인 표피는 두께가 0.1~0.2㎜에 불과하지만, 외부의 각종 위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표피와 진피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지표는 모세혈관 존재 여부로 표피에는 모세혈관이 없다. 

 
표피는 다시 네 개 층으로 나뉘는데 진피와 접한 아래에서부터 기저층, 유극층, 과립층, 각질층으로 불린다. 네 층을 이루는 세포는 생김새가 다르지만 사실 각질형성세포(keratinocyte)의 각각 다른 시기다. 

피부 맨 바깥에 있는 죽은 각질세포(corneocyte)로 이뤄진 각질층(stratum corneum)을 도식화한 그림이다. 신시내티대 제공

기저층은 꾸준히 각질형성세포를 만들고 이전 세포들은 밀려 올라가며 변형된다. 점차 납작해지고 케라틴 단백질 함량이 늘어나고 수분 함량이 줄어들다 결국 세포핵이 파괴돼 죽는다. 이렇게 죽은 각질형성세포가 각질세포(corneocyte)로 표피의 맨 바깥인 각질층을 이룬다. 

세포의 생존 여부로 피부를 나누면 죽은 세포로 된 각질층과 살아있는 세포로 이뤄진 나머지(표피 세 층과 진피)로 나뉜다. 산 자들이 죽은 자에게 우리 몸의 최전선에서 인체를 보호하는 임무를 떠넘긴 셈이다. 

각질층은 세포 15~20개가 쌓인 두께 0.015~0.03㎜에 불과한 매우 얇은 층으로 세포 사이사이를 지질구조가 채우고 있다. 각질세포가 납작한 벽돌이라면 지질구조는 모르타르인 셈이다. 물분자가 통과하기 어려운 지질구조는 각질세포의 수분 손실을 막는 역할을 한다.

 
각질층의 수분량은 10~20%에 불과하고 피부 표면은 지질과 피지로 이뤄진 두께가 0.005㎜도 안 되는 아주 얇은 기름막으로 덮여 있다. 그럼에도 공기와 접한 면에서 증발이 일어나 수분이 손실된다. 다만 잃어버린 만큼 아래 표피에서 수분이 공급되므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런데 대기의 습도가 낮아지거나 씻을 때 세정제를 써 각질층의 지질구조가 부실해지면(세정제 성분인 계면활성제가 피부 표면에 묻어있는 때나 피지뿐 아니라 각질층의 지질도 빼간다) 각질층의 수분 증발량이 많아져 아래의 공급량이 따라가지 못한다. 결국 수분이나 지질을 잃은 각질세포의 부피가 줄며 수축할 때 피부 당김이 느껴진다.

● 메르켈세포 관여

미국 스탠퍼드대와 프랑스 화장품기업 로레알의 공동연구자들은 죽은 세포로 이뤄진 각질층의 물리적 변화가 그 아래 살아있는 세포들 가운데 존재하는 촉각수용체에 영향을 미쳐 피부 당김이라는 생생한 느낌으로 지각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그리고 세정제와 보습제를 쓸 때 각질층 변형력과 및 피부 당김의 느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비교했다.

사람 배 피부에서 분리한 각질층(옅은 주황색)을 얇은 유리판(하늘색)에 부착한 반인공 피부를 상대습도 5%에 두면 각질층이 건조해지면서 수축해 유리판이 각질층 쪽으로 휘어진다. 이때 이동한 거리로 변형력(stress)을 측정한다. 미국립과학원회보 넥서스 제공

연구자들은 반인공 피부를 만들어 각질층의 수축으로 인한 변형력을 측정했다. 죽은 사람의 배 피부에 여러 처리를 통해 표피 세 층과 진피를 없애고 각질층을 얻었다. 이 각질층을 나머지 피부 역할을 할 얇은 유리판에 부착했다. 

상대습도 100%인 조건을 상대습도 5%로 낮추면 각질층의 수분이 휘발돼 건조해지며 수축한다. 그 결과 얇은 유리가 각질층 방향으로 살짝 휘는데 그 정도로 변형력을 측정한다. 연구자들은 반인공 피부에 세정제 6개 제품과 보습제 9개 제품을 각각 처리한 뒤 건조 실험을 진행해 변형력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했다.

피부는 세포 생존 여부에 따라 맨 바깥 죽은 세포로 이뤄진 각질층(SC)과 그 아래 살아있는 세포인 표피(epidermis. 각질층 제외)와 진피(dermis)로 나뉜다. 각질층이 건조해지면 수축하며 각질층의 곡률에 따라 아래 표피와 진피는 불균일한 변형력을 받는다(untreated skin). 이때 보습제(moisturizer)나 세정제(cleanser)를 쓰면 변형력이 완화되거나 심해진다.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갈수록 변형력이 크다는 뜻이다. 미국립과학원회보 넥서스 제공

그 결과 세정제를 처리하면 변형력이 커졌다. 습도가 낮은 조건에서 지질을 잃은 각질층이 더 빨리 건조해졌다는 뜻이다. 다만 제품에 따라 차이가 있어 가장 심한 제품은 60%나 더 커졌다.

반면 반인공 피부 표면에 보습제를 바르면 변형력이 작아졌다. 역시 제품에 따라 정도가 달랐고 가장 효과적인 제품은 감소 폭이 40%에 이르렀다.

어찌 보면 결과가 뻔한 실험을 굳이 여러 제품으로 반복한 이유는 반인공 피부의 변형력(객관적 측정)이 실제 소비자가 이 제품들을 사용했을 때 느끼는 피부의 당김 정도(주관적 평가)를 반영하는가를 보기 위해서다. 

제품별로 수백 명이 사용하고 평가한 설문 데이터를 수치화해 비교하자 상관관계가 꽤 높게 나왔다. 즉 반인공 피부의 변형력이 작을수록 피부 당김 지각 점수가 높게 나왔다(점수가 높을수록 피부 당김을 경험하지 않은 사용자의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이는 실제 우리 피부에서도 각질층의 수축이 피부가 당기는 느낌을 유발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보습제 9개 제품의 성분을 분석해 피부 당김을 완화하는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봤다. 그 결과 물분자를 머금어 수분 증발을 막는 폴리올 같은 습윤제보다 발랐을 때 각질세포 사이 공간을 채워 수분이 빠져나가는 걸 막는 지질이 더 중요한 성분인 것으로 밝혀졌다. 즉 피부 당김 완화 능력이 뛰어난 3개 제품의 지질 함량(13~18%)이 9개 제품 가운데 가장 높았다.

화장품 광고를 보면 제품의 유효성분이 각질층이라는 ‘장벽’을 뚫고 들어가 그 아래 살아 있는 세포로 이뤄진 표피나 심지어 진피까지 모종의 생화학 메커니즘을 통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약간 넌센스다. 우리가 화장품을 쓸 때 ‘피부로 느끼는 효과’는 결국 죽은 세포인 각질층에 물리 메커니즘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이기 때문이다.

● 피부 당김도 촉각?

한 세대 전 생물 시간에는 휘태커의 5계 분류체계를 배웠다. 모네라(원핵생물), 원생생물, 식물, 균류, 동물이다. 그런데 분류학에 생체분자 서열 비교 데이터를 적용하자 원생생물이 단세포 진핵세포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한 범주로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성이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흔히 오감이라고 부르는 감각도 비슷한 상황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에 해당하지 않는 나머지 감각을 쓸어모아 촉각에 넣었기 때문이다. 일상적 의미의 촉각, 즉 뭔가 피부에 닿았을 때 느껴지는 감각뿐 아니라 온도(냉열감), 통증, 심지어 내 몸의 위치 감각이라는 다소 애매한 영역까지도 포함한다. 그래서인지 신경과학 교과서에서는 촉각 대신 체감각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쓴다.

표피(epidermis)와 진피(dermis) 사이에 박혀있는 메르켈세포는 미세한 변형(local strain)에 반응하는 기계수용세포(mechanoreceptor)로 세포막에 이온통로단백질(ion channel)인 촉각수용체 Piezo2가 박혀있다. 변형으로 통로가 열려 발생한 신호는 구심성 뉴런(afferent neuron)을 통해 뇌의 체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로 전달돼 촉각을 느끼게 된다. 각질층이 건조해지며 수축할 때도 이 경로를 통해 우리는 ‘피부가 당긴다’고 느낀다. 미국립과학원회보 넥서스 제공

피부의 체감각(기계)수용세포 네 가지 가운데 일상적 의미의 촉각을 담당하는 게 메르켈세포(원반)이고 여기에 존재하는 촉각수용체 분자가 바로 Piezo2다. 피부에 뭔가가 닿아 살짝 눌리면 표피와 진피 경계면에 존재하는 메르켈세포의 막 곡률이 바뀌면서 막에 박혀있는 단백질인 Piezo2의 분자구조가 바뀌어 신호가 발생한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는 2010년 Piezo2를 발견한 공로로 202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 따르면 피부에 아무것도 닿지 않고 단지 각질층이 건조해지는 것만으로도 메르켈세포의 막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한 변형력이 발생한다. 얼굴 피부 전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때 뇌는 ‘피부가 당긴다’라고 지각한다. 그렇다면 이 느낌도 촉각이라고 불러야 할까.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10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가 있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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