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이용했는데 없어진다니…" 폐업 앞둔 상봉터미널[르포]

최지은 기자, 김온유 기자 2023. 11. 1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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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개장해 38년간 그 자리를 지킨 상봉터미널이 오는 30일을 끝으로 운영을 종료한다. 이용자가 큰 폭으로 줄어들며 더이상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서울 중랑구 상봉터미널 한쪽 벽면에 상봉터미널 폐업과 임시정류장 안내 공지문이 붙어있다./사진=김온유 기자


"가족들이 서울에 있어서 가족 보러 올 땐 항상 상봉터미널로 와요. 30년 이용했는데 없어진다니 참 슬퍼요."

지난 10일 서울 중랑구 상봉터미널에서 강원 원주시 문막읍으로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던 안모씨(56)의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서울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일주일에도 여러 차례 문막읍에서 상봉터미널로 온다는 그는 상봉터미널을 "여러 추억이 깃든 곳"이라고 설명했다.

1985년 개장해 38년간 그 자리를 지킨 상봉터미널이 오는 30일을 끝으로 운영을 종료한다. 이용자가 큰 폭으로 줄어들며 더 이상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하루 최대 2만명이 드나들던 터미널의 하루 이용객 수는 최근 2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상봉터미널 운영사인 신아주는 2004년 일찌감치 서울시에 사업 면허 폐지를 요구했지만 서울시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을 거쳐 2007년 12월 대법원이 "서울시가 상봉터미널의 사업 면허 폐지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후 16년 만에 운영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승차장 앞 데스크에는 하루 6번 운행되는 '원주-문막' 노선 시간표가 수기로 작성돼 붙어있었다. 승차 홈은 여러 개였지만 한 곳을 제외하고는 철제 셔터로 가로막혀 있었다. 노선들이 하나둘 없어지면서 전주, 광주, 대전 등 다른 노선 안내 간판 위에는 노선 명을 가리기 위한 종이가 덧입혀졌다. 승차장에는 오전 10시30분에 원주 문막읍으로 출발하는 버스 한 대만이 대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달 1일부터는 터미널은 사라지고 현재 건물 전면에 마련된 임시 정류장에서 하루 6번 원주-문막 노선을 운영한다.

지난 10일 오전 10시 유동객들로 붐벼야 할 시간이지만 상봉터미널 대합실에 있는 사람들은 5명이 채 안 됐다. 대합실 안 가게들은 모두 셔터를 내린 채 운영을 중단했다./사진=김온유 기자

상봉터미널 건물 입구로 들어가자 텅 빈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전등은 꺼져있었고 철제 휴지통 하나와 소화기, 무인 발매기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TV 소리를 따라가자 대합실이 나왔다. 오전 10시 유동객들로 붐벼야 할 시간이지만 대합실에 있는 사람들은 5명이 채 안 됐다.

대합실 안 가게들도 모두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광명상회'라는 매점 입구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고 한식과 분식을 파는 '털보식당'도 불이 꺼진 채 잠겨있었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 버스 운행 시간을 기다리던 장모씨(78)는 "예전에는 지하에 볼링장도 있었고 식당이랑 매점들도 다 운영했는데 사람들이 사라지니 모두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장씨는 "언니가 서울에 있어서 원주에서 서울에 올 때 수십 년째 상봉터미널을 이용하고 있다"며 "이곳이 없어지면 이제 동서울터미널을 이용해야 하지 않겠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기자가 상봉터미널이 사라져도 임시 정류장에서 원주-문막 노선 버스는 운행한다고 알려주자 장씨는 "어디서 탈 수 있는 거냐"며 화색을 띠더니 임시 정류장 안내문을 휴대폰 사진으로 찍어갔다.

지난 3월1일부터는 매표창구도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표를 살 때 현금을 사용할 수 없다. 유인 매표소 중단 안내문을 읽고 있던 신모씨는 "임시 정류장이 세워지더라도 현금으로 표를 살 수 없다는데 어르신들은 신용카드도 없고 스마트폰 이용도 어려우니 이용이 힘들 것 같다"고 밝혔다.

10일 서울 중랑구 상봉터미널 승차장 앞 데스크에는 하루 6번 운행되는 '원주-문막' 노선 시간표가 수기로 작성돼 붙어있었다. 승차 홈은 여러 개였지만 한 곳을 제외하고는 철제 셔터로 가로막혀 있었다. 노선들이 하나둘 없어지면서 전주, 광주, 대전 등 다른 노선 안내 간판 위에는 노선 명을 가리기 위한 종이가 덧입혀졌다./사진=김온유 기자


시외버스 기사들도 섭섭한 기색을 내비쳤다. 상봉터미널과 지방을 오가며 6년간 시외버스를 운행했다는 50대 김모씨는 "금요일이나 주말에는 원주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있어 손님이 꽤 있지만 평일에는 수입이 거의 없다"며 "그래도 6년 운행하니 이제 눈 감고도 운전할 수 있을 만큼 정이 많이 들었다. 건물이 없어지는 건 아쉽지만 임시 정류장이 생겨 운행은 할 수 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편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원주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원모씨(24)는 "이번 학기는 통학을 해서 일주일에 2번 정도 상봉터미널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며 "임시 정류장이 생긴다고 해도 야외라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울 텐데 걱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터미널 건물에 함께 있는 운전학원과 경륜장은 다음 달 말까지 운영된다. 업체들이 모두 나가면 건물 철거가 진행된다. 상봉터미널이 있던 부지에는 아파트 999세대, 오피스텔 308세대, 상업·문화 시설이 합쳐진 지하 8층~지상 49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준공은 2029년 완료될 계획이다.

10일 서울 중랑구 상봉터미널 승차장 앞 데스크에는 하루 6번 운행되는 '원주-문막' 노선 시간표가 수기로 작성돼 붙어있었다. 승차홈은 여러 개였지만 노선들이 하나 둘 없어지면서 한 곳을 제외하고는 철제 셔터로 가로막혀 있었다. 오전 10시30분에 출발하는 버스 한 대만이 승차장 앞에 대기하고 있을 뿐이었다./사진=김온유 기자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김온유 기자 on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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