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에 박세리, 야구에 박찬호라면…‘3분 미학’ 나폴리 피자는 이 사람? [푸디人]

안병준 기자(anbuju@mk.co.kr) 2023. 11. 1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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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人-1] 나폴리피자 장인 ‘스파카 나폴리 이영우 피자이올로
이영우 피자이올로가 2015년 ‘14회 나폴리 피자세계챔피언십’ 클라시코 부문에서 심판 전원 만점으로 우승한 뒤 상패로 받은 화덕피자 삽을 들고 있다. [안병준 기자]
정해진 레시피대로 오븐에 뚝딱 구워내는 미국식 프랜차이즈 피자가 넘쳐나는 지금. 오로지 손의 감각과 숙성의 미학으로 반죽(도우)를 만들어 피자를 창조하는 장인이 있다. 도우 위에 가득한 토핑으로 피자를 평가받길 거부하고 신선한 재료가 내는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이 사람. 바로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2011년부터 ‘스파카 나폴리’를 운영하는 나폴리 피자 장인 이영우(45) 피자이올로(pizzaiuolo)이다.

이올로는 이탈리아 말로 ‘장인’이라는 의미로 피자이올로는 말 그대로 ‘피자 장인’을 뜻한다. 그는 2017년 6월 나폴리 피자장인협회(APN)로부터 한국지부를 승인받아 초대 회장에 올랐고 지금껏 맡아오고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이탈리아에서 권위 있는 와인과 음식 전문 미디어 ‘감베로 로쏘’가 최근 개최한 한 행사에서였다. 감베로 로쏘는 매년 전 세계의 우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선정해 ‘TOP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발표하는데, 일종의 이탈리아판 ‘미슐랭’이다.

이영우 피자이올로가 운영하는 ‘스파카 나폴리’는 피자전문점 부문에서 2019년부터 ‘피자조각’ 2개를 받아왔다. 만점은 피자조각 3개인데 국내에서 피자조각 2개를 받은 피자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50 Top Pizza’가 2022년 신설한 ‘50 Top Pizza-Asia·Pacific(아시아·태평양)’ 부문에서 11위에 올랐고 2023년에는 18위를 차지했다.

이영우 피자이올로는 “국내에서 50위 안에 들어 운이 좋았고 영광”이라며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고 외국인들이 이를 보고 찾아온다”고 귀띔했다.

한국을 알린 나폴리 피자계의 ‘박세리’·‘박찬호’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트로페오 카푸토 시상식’에서 이영우 나폴리피자장인협회 한국지부 협회장(왼쪽 셋째)이 유준환 대표 사진을 들고 시상대에 올라가 대리 수상했다. [사진 제공 = 쉐프스푸드]
올해 6월 이탈리아 나폴리에는 축구선수 김민재가 아닌 한국인의 이름이 널리 울려 퍼졌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서 매년 열리는 ‘나폴리 피자 세계챔피언십(CAMPIONATO MONDIALE DEL PIZZIUOLO)’에서 ‘STG(Specialita Traditionale Garantita)’ 부문 1위를 유준환 피자이올로가 차지했기 때문이다. 유준환 피자이올로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포폴로 피자’를 운영중이다.

안티모카푸토 밀가루(Antimo Caputo Flour) 회사가 후원해 일명 ‘트로페오 카푸토(Trofeo Caputo)’로도 불리는 이 대회에서는 나폴리 토박이들을 포함해 전 세계 최고의 나폴리 피자이올로를 뽑는다. 여기서 유 피자이올로가 당당히 1등을 차지한 것이다. 마치 파란 눈의 외국인이 한국에서 가장 권위 높은 김치대회에서 한국인들을 제친 셈이다.

그런데 정작 시상식 단상에는 유 피자이올로가 아닌 이영우 나폴리피자장인협회 한국지부 회장이 올랐다. 수상을 크게 기대하지 않은 유 피자이올로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을 시상식 직전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한국의 위상을 높인 이 순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대회 주최 측에 사정해 유 대표의 사진을 들고 시상식 단상에 올라섰다.

이 회장 또한 8년 전인 2015년 바로 그 자리에 서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적이 있던터라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그는 ‘14회 나폴리 피자세계챔피언십’ 클라시코(Classico) 부문에서 참가자 500여명 중 유일하게 만점을 받고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바 있다.

STG 부문은 전통적인 방법에 맞게 마르게리타와 마리나라를 만드는 반면, 클라시코 부문은 기본은 지키되 토핑에서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토핑을 얹고 반으로 접어 튀긴 ‘프리토’, 길이 1m 가량으로 길쭉하게 굽는 ‘메트로·팔라’, 퍼포먼스 위주의 ‘아크로바틱’ 등 10여개 분야에서 최고를 뽑는다. 그러나 단연코 STG와 클라시코에 가장 참가자가 많으며 우승자에 대한 대우도 다른 부문과는 차원이 다르다.

“올해는 한국에서 약 30명 정도 출전했는데 수상은 한 명 밖에 하지 못했어요. 참가자에 대한 평가 점수와 등수가 전부 공개되기 때문에 평가가 냉정합니다.”

나폴리피자 ‘너는 내운명’
운명은 조용히 그 그림자를 드리운다. 돌이켜보면 이영우 피자이올로와 나폴리 피자도 보이지 않는 운명의 끈이 서로를 당기고 있었다.

그는 2000년 7월 군을 제대하고 어학연수 차 캐나다로 향했다. 그리고 같은 반에서 영어를 함께 공부하던 학생 중 한 명인 이탈리아 여학생의 소개로 배낭여행을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의 이탈리아행 비행기는 2001년 9월 11일 오전. 전 세계가 ‘9·11’ 테러로 공포를 겪기 직전 그는 나폴리 피자와의 인연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남부지방 중 하나인 칼라브리아주 코센차 지역을 여행하다가 나폴리에 도착한 그는 처음 화덕 피자와 만났다. 그러나 그 때는 그저 한 끼의 식사일 뿐이었다.

“그 때는 사실 피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나폴리 피자가 다시 그의 머릿속에 들어온 건 얼마 되지 않은 후였다.

“국내에 들어와 회사를 다니다가 사무직은 성격에 안 맞아 아직 국내에 흔하지 않은 것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화덕피자가 다시 눈에 띄었고 국내에 있는 한 화덕피자 집에서 일하면서 무작정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유학 경비를 모아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 인근 지역에서 피자 교육과정을 다녔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수준 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다가 다시 나폴리로 향했다. 나폴리피자협회에서 하는 피자 학교였다. 그러나 교육은 아주 기초적인 것만 진행됐다. 가게에서 도제식으로 기술을 전수받고 오랜 시간을 통해 경험을 쌓아야 하는 나폴리 피자의 특성상 교육과정은 그의 배움에 대한 열망을 다 채워주지 못했다.

귀국 후 2011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가게를 연 그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식으로 수많은 피자를 구워냈다.

나폴리 피자의 핵심인 도우를 만들기 위해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도우를 만들고 숙성에 매달렸다. 그러다 병을 얻기도 해 고생을 심하게 했다. 지금도 주말에는 하루 150여개, 주중에는 80~100여개의 도우를 만드느라 생수병을 돌리는 것도 어려울 만큼 손목이 아프다.

나폴리 피자의 생명은 ‘도우’
로마식 피자(위)와 시칠리아식 피자(아래) <사진=네이버블로그>
이탈리아 내에서도 지역별로 도우의 특징은 각양각색인데 로마식 피자는 얇은 크러스트로 크래커처럼 바삭하고, 시칠리아식 피자는 식빵처럼 두툼하고 사각형의 모양인 경우가 많다.

반면, 나폴리 피자는 둥근 형태이면서도 반죽 고유의 담백함과 근원적인 맛을 끌어내기 위해 물, 소금, 생이스트만을 사용하는 게 기본이다.

도우의 밀가루도 특별하다. 이탈리아 카푸토 업체의 밀가루만 써야 한다. 요즘에는 다양한 종류의 카푸토 밀가루가 수입되어 이영우 피자이올로는 4가지 밀가루를 섞어서 사용한다. 마치 몰트 위스키를 섞어 만드는 블렌딩 위스키 제작 과정과 흡사하다.

그는 매일 아침 7시쯤 사전 발효한 반죽으로 도우를 만들고 숙성을 시킨다. 그리고 저녁에 다시 한번 밀가루를 더해 도우를 완성하는데, 대개 작업을 마무리하면 밤 11시 쯤이다. 이렇게 완성된 도우는 거의 하루 정도 더 숙성시켜 피자를 만든다.

“도우의 시간에 내 시간을 맞춰야지, 내 시간에 도우를 맞춰서는 좋은 도우가 나올 수 없습니다. 단지 수초 사이에도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에 항상 지켜봐야 합니다.”

이렇게 기나긴 과정을 거쳐 도우가 완성되지만 나폴리 피자가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3분’이면 끝난다.

도우를 손으로 둥근 형태로 펴고 그 위에 토마토 소스와 치즈, 바질을 얹으면 마리게리타 피자가 맨언굴을 드러낸다. 그리고 불에 들어가서 1분30초면 맛깔스러운 피자의 영롱한 모습이 나타난다.

장작의 상태, 불의 온도 등에 따라 굽는 시간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데, 이는 뽀르나이노(화덕에 불을 넣어 피자 굽는 장인)의 축적된 감에 달려있다. 나폴리 피자는 도우와 피자를 만드는 피자이올로와 피자를 굽는 뽀르나이노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우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화덕에 들어갔을 때 타지 않고 천천히 부풀어 오르며 도우 바깥 부분에 짙은 오렌지 빛이 나타난다.

“불이 좀 약해서 더 구우면 수분이 날아가 도우가 빳빳해집니다. 치즈도 어느 정도 녹는 타이밍이 있는데 너무 녹으면 부글부글 끓어요. 피자를 꺼내는 시간은 뽀르나이노의 실력에 달려있습니다”

이영우 피자이올로가 만든 나폴리 피자의 대표 격인 마르게리타 피자. [안병준 기자]
이탈리아 여왕의 이름을 딴 마르게리타 피자
이탈리아의 2대 국왕 움베르토 1세의 아내 마르게리타 왕비
나폴리 피자 중 그 유래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마르게리타 피자이다.

1889년 여름 나폴리를 방문한 이탈리아 사부아의 움베르토 1세와 마르게리타 왕비는 당시 나폴리에서 피자를 제일 잘 만든다는 명성을 갖고 있던 돈 라파엘레 에스포지토(Raffaelo Esposito)의 피자를 먹게 된다. 이 때 바질과 물소 젖으로 만든 모차렐라 치즈, 토마토로 이탈리아 국기(초록, 흰색, 빨강)를 상징하는 피자를 만들었는데 이를 왕비가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그렇게 왕비의 이름을 따서 피자의 이름을 ‘마르게리타 피자’로 지었다.

실제 라파엘레 에스포지토가 운영한 ‘피체리아 브란디(Pizzeria Brandi)’라는 피자집에는 1989년 ‘마르게리타 피자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그마한 대리석판이 여전히 손님들을 맞이한다. 피체리아 브란디는 1780년에 문을 열었다.

‘피체리아 브란디(Pizzeria Brandi)’ 피자집이 1989년 ‘마르게리타 피자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대리석판
나폴리 피자는 ‘규제 덩어리’
나폴리 피자 8가지 조건
피자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자 ‘상업적인 피자’가 득세하는 현실을 우려해 1984년 ‘정통나폴리피자협회(Associazione Verace Pizza Napoletana)’가 나폴리에서 결성됐다.

이후 나폴리 피자로 인정받기 위한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상세히 규정해놨다. 협회가 정한 규정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를 모두 충족하면 ‘베라 피자(Vera Pizza)’ 글씨와 함께 가면을 쓴 광대가 피자를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로고를 준다.

나폴리 피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전기화덕이 아닌 반드시 장작화덕을 사용해야 하고 굽는 온도는 485도 안팎이다. 나폴리 피자에 맞는 화덕의 구조는 외벽이 두껍고 입구가 작아서 내부의 열이 외부로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화덕은 나폴리가 소재한 캄파니아 지역에 있는 베수비오 화산의 돌로 만드는 것을 최고로 친다.

장작은 기본적으로 참나무만을 사용해야 하며 그중에서도 껍질이 두꺼운 물참나무보다는 껍질이 얇고 안이 단단한 강참나무를 사용한다. 나무껍질은 갑작스럽게 불을 크게 올라오게해 도우가 타버릴 가능성이 높다.

도우 형태는 둥글고 밀대와 같은 도구는 쓸 수 없으며 반드시 손으로 반죽 해야한다. 도우 두께는 2㎝ 이하, 피자 가운데 두께는 0.3㎝ 이하이다. 촉감은 쫄깃한 동시에 부드러우며 쉽게 접을 수 있어야 한다.

피자에 올라가는 재료로는 나폴리가 속해있는 캄파니아 지역에서 물소로 만든 부팔라 모차렐라 치즈를 사용한다. 치즈를 찢을 때도 칼이 아닌 손으로 잘라야 한다. 나폴리에서 오래된 피자 전문점들은 베수비오 산의 경사면에서 자라는 산 마르자노(San Marzano) 토마토만 사용한다.

깐깐하지만 이런 나폴리 피자 장인의 기술과 정신을 지켜나간 결과, 2017년 ‘나폴리 피자이올로의 기술’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푸디人] ‘미식가(美食家)’와 같은 타고난 오감은 없습니다. 음식에 대한 개똥 철학도, 독자의 입에 침 고이게 할 탁월한 표현력도 없습니다. 그저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오늘을 살아갈 뿐입니다. 음식을 사랑하는 ‘푸디人’들과 맛있게 먹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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