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포탄 파편 남아있는데…훈장 못 받은 96세 美노병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3. 11. 1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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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증거 불충분으로 요청 거부
육군 상대로 소송 나서

“1951년 6월 우리 소대가 집중 포격을 받았을 때 다리에 박힌 파편이 아직도 남아 그대로 느껴집니다.”

6.25 참전 용사 얼 마이어(96)씨. /AP 연합뉴스

미국 미네소타주에 사는 6·25 참전용사인 얼 마이어(96)씨는 70여년 전 적의 포화 속에 진격하다 왼쪽 허벅지에 포탄 파편을 맞았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후에 의사들은 파편이 좌골 신경에 너무 가까이 박혀 있어 제거 수술이 위험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나이가 들면서 딸들의 권유로 전투 중 다친 미군에게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퍼플하트’ 훈장을 신청했지만,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탓에 입증 서류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수차례 거절 당했기 때문이라고 AP는 10일(현지 시각) 마이어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훈장 신청 때 제출한 진술서에서 “처음에는 다친 줄도 몰랐다”며 “하지만 박격포탄이 떨어지는 곳에서 부대가 전진하는 과정에서 내 바지가 다리에 들러붙었고, 이를 떼어내려 뻗은 손이 피투성이가 된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부상이 당장 전장에서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함께 복무한 다른 군인들에 비해 크지 않은 부상이라고 생각해 퍼플하트를 신청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세 딸이 아버지가 6·25 때 다친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난 뒤 아버지를 설득했다.

6.25에 참전했던 얼 마이어가 지난 7일(현지시각) 미네소타주 세인트피터에 있는 미군 참전용사 기념관에서 동료 참전용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을 닦고 있다. 올해 96세인 마이어는 전투 중 다친 미군에게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퍼플 하트' 훈장을 받기 위해 육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AP 연합뉴스

마이어는 파편을 맞은 며칠 후 허리를 다쳐 미군 이동외과병원(MASH)으로 이송된 뒤 다시 병원선으로 옮겨졌다. 이때도 구멍이 뚫리고 피 묻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전쟁터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왔다는 것을 기뻐하기만 했지 부상 관련 서류를 챙기지 못했다. 다쳤을 때 다리에 붕대를 감아준 의무병이 당연히 제출했겠거니 여겼지만, 남은 서류는 없었다. 마이어는 의무병도 전사했을 것이라고 진술서에서 밝혔다. 결국 당시 기록 가운데 파편 부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입원할 때 맞은 파상풍 주사 정도였다.

2005년 미니애폴리스의 보훈병원에서 진찰받았을 때 의사들은 마이어의 다리부상이 전투 중에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의사들의 의견까지 첨부해 지난 2020년 퍼플하트 훈장을 신청했지만 육군은 더 많은 입증 서류가 필요하다고 반려했고 지난 4월 최종 거부 결정을 내렸다. 마이어는 결국 지난 9월 국방부와 육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의 변호사는 이전에 마이어와 유사한 경우에 퍼플하트를 수여한 사례가 있으며, 수훈 결정을 의무기록에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AP에 밝혔다.

1952년 명예제대한 마이어는 지상전투 최일선에 참여한 군인에게 주는 전투보병휘장(Combat Infantryman Badge)과 제2차대전 때 상선단 소속에 주어진 의회 명예 황금 훈장(Congressional Gold Medal)을 받은 바 있다. 마이어의 딸 샌디 베이커는 “(퍼플하트를 받는 것이) 아버지에게 마무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가 살고 있는 미네소타주의 에이미 클로부샤 상원의원은 “얼 마이어는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우리는 그의 공헌을 정당하게 기리기 위한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클로부샤 의원은 마이어의 관련 문건을 찾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A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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