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남도록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올앳부동산]
※투기와 투자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집값이 오르긴 오른 걸까. 우리가 살게될 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통계로 점철된 부동산 기사의 행간을 읽어내고 판단을 내리려면 나만의 질문과 관점이 필요합니다. 경향신문만의 질문과 관점으로 부동산의 모든 것을 짚어드리는 ‘올앳부동산’은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면 로그인 해주세요!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최지수씨(32)를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선순위 근저당이 있는 천안의 한 다가구 주택에 보증금 5800만원 전세로 들어갔다. 근저당 설정 당시 최우선변제금 기준보다 800만원이 많았다. 세입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한 전세사기특별법이 제정됐지만, 두달 전 집이 경매에서 낙찰되어버린 탓에 ‘안타깝게도’ 보증금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그 집에서 쫓겨났다. ‘다행히’ 전세피해확인서를 발급받아 3개월간 긴급생계지원금을 수령했다.”
최씨는 자신이 쓴 책 <전세지옥>을 통해 자신의 서사를 바로잡는다.
“바퀴벌레 소굴인 회사 기숙사를 탈출해 ‘사람답게 살고 싶어’ 그 집에 들어갔다. 오래 준비한 해외취업 면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그날, 현관 앞에 붙은 경매통지서를 보고 ‘전세지옥’이 시작됐음을 알았다. 어렵게 얻은 헝가리 일자리를 1년 만에 정리하고, 서울에서 주6일 하루 12시간씩 알바를 했다. 매달 대출금만 300만원씩 갚았다. 신라면 하나 사먹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누군가는 최씨 사례를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라고, 안타깝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32세 청년이었던 최씨에게 전세사기는 꿈과 미래를, 인생의 계획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전세지옥>은 전세사기를 당한 후 최씨가 경험한 820일을 엮은 책이다. 집이 경매에 넘어갔음을 알게된 그날부터 시청, 법원, 경찰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주거복지재단을 쉴새없이 오갔지만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지원은 없었다. 절망과 좌절이 깊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삶에 대한 기대를,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다음달에는 파일럿 훈련비를 벌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원양상선에 오를 예정이다. “내 삶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끝나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는 최씨를 지난 8일 만났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 그 집에 들어갔다
전세사기를 다룬 책이지만, 책의 전반부는 야근과 인격모독·과로로 얼룩졌던 회사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서술하는데 한참을 할애한다. “제 전세금이 그냥 5800만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에게 사기 친 집주인이나 중개인에겐 껌값일지 몰라도, 저에겐 정말 힘들게 번 돈이었거든요.”
서울에 살았던 최씨가 천안공단에 있는 일본계 회사에 취직한건 파일럿 훈련비용 1억을 벌기 위해서였다. 회사 기숙사가 제공되니 주거비를 아낄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간 기숙사는 ‘지옥’이었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비릿한 녹물, 퇴근하고도 계속 마주치는 회사 사람들, 매시간 매분 마주치는 바퀴벌레…. “집은 편히 쉴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당시엔 그곳에 있는게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답게 살고 싶었고, 이 곳에서 나가야겠다 마음먹었죠.”
30만원의 월세가 부담됐던 최씨는 많은 청년들이 그러하듯이 전세로 눈을 돌렸다. 퇴근 후 저녁마다 한달 동안 20곳이 넘는 집을 봤다. 그중 5곳 정도가 마음에 들었지만 고민의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집은 순식간에 나가버렸다.
“처음 2곳 정도는 공인중개사였던 큰아버지께도 등기부를 보여드렸는데 위험하다고 만류하셨어요. 이것저것 주의할 점을 알려주시면서 ‘요즘 천안에 경매 넘어가는 집들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막상 돌아보니 천안에선 선순위 근저당이 없는 집을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한달 넘게 이어지는 전셋집 투어에 지쳐갈 무렵 ‘리젠트빌라 1004호’가 나타났다. 중개인은 “이곳에 사는 매일이 천국같을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제2금융권에서 받은 근저당 33억이었다. 고민하는 최씨에게 중개사는 ‘천안 바닥에서만 영업한 게 몇년인데 이 집이 경매에 넘어갈 일은 없다’고 장담했다.
“건물 가액이 최소 70억인데 30억 대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만에 하나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있으니 안전하다고 했어요. 모두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때는 기숙사에서 나오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서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생각했던 것 같아요. 후회되고 아쉽죠.”
“타이타닉 생존자에게 크루즈 여행권 주는것”
현관에 붙은 경매통지서를 본지 얼마 되지 않아 오래 준비한 해외취업 프로그램 합격 통보를 받은 최씨는 헝가리로 출국했다. ‘다 해결될 것’이라는 중개사 말이 무색하게 전세대출 만기가 돌아올때까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지난해 7월 금리 10%대 카드론을 받아 대출금을 상환했다.
당시 최씨가 갚아야 하는 이자는 매달 300만원. 200만원이 조금 넘는 헝가리에서의 월급으로는 감당이 어려웠다. 결국 그는 어렵게 얻은 대기업 일자리를 그만두고 1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횟집과 초밥집 두 곳에서 주 6일씩 하루 12시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급 1만2000원을 받는다면 주말·공휴일 없이 일해도 4833시간, 총 1년7개월 일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집주인이 진 빚을 왜 내가 갚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빚을 다 갚고 난 이후의 삶이 그려지지 않는다는게 힘들었어요.” 책에는 평생의 꿈이었던 파일럿과 멀어지는 과정에서 최씨가 느낀 절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기록돼있다. 긴급생계지원금을 신청하러 간 구청에서 신라면 20개를 받아온 날에는 신라면 하나 살 돈이 없어 1+1 행사 라면을 꾸역꾸역 먹었던 며칠 전이 떠올라 헛웃음이 나왔다.
정부도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막상 발표된 지원책에는 ‘다른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이런저런 조건이 붙었다. 최씨는 번번이 그 조건들을 빗겨났다. 수개월 간의 ‘서류지옥’을 거쳐 전세피해확인서를 발급받았지만, 그가 받은 지원은 세 달간 62만원씩 받은 ‘긴급생계지원금’이 유일했다.
“4월 대책을 보고 기대를 완전히 접었어요. 긴급주거는 너무 먼 곳에 있어서 저희 빌라 입주민 중에 단 한사람도 신청하지 못했고, 월세 지원은 3분의 1만 가능해 전혀 메리트가 없었어요. 저는 긴급생계지원금이라도 받아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이후 예산 고갈로 두 달만에 종료됐다고 들었어요.”
전세사기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때 세입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6월 통과됐지만, 이 역시 두달 전 전셋집이 경매에서 낙찰돼버린 최씨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2, 3번째 사망소식이 전해진 직후 정부는 ‘경매 유예 조치’를 발표했지만 이는 사망자가 나온 인천 미추홀구에 한정됐다. 최씨를 포함한 리젠트 빌라 입주민들은 절박한 마음에 금융감독원에 공문을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안타까운 사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권리관계가 이미 확정돼 별다른 도움을 줄 수없다”는 답이었다. 이후 리젠트빌라 전 세대가 경매에서 낙찰됐다. 최씨를 포함한 세입자들 대부분이 보증금을 한푼도 건지지 못한 채 집에서 쫓겨났다.
늘 한두발 늦는 대책에 기대하고 절망하기를 반복하길 몇달. 그중에서도 최씨는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에게 다시 전세를 권하는 대책’을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를 “침몰한 타이타닉호에서 생존한 이들에게 크루즈 여행권을 주는 것”에 비유했다.
“전세라는 선택지를 제외하면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전혀 없어요. 다시 전세를 들어가느니 차라리 집을 사고 싶었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저리대출은 기존 전셋집에서 계속 거주하거나 다른 전셋집을 구하거나 경매에서 해당 주택을 살때만 받을 수 있거든요. 주택구입을 위한 디딤돌 대출은 만30세 이상만 가능하고요. 매매라는 길도 있는데 왜 꼭 전세여야 할까, 그게 가장 이해가 안가요.”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임대차시장사이렌에 따르면 최근 1년간(9월 기준) 천안 동남구 연립·다세대 주택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85.9%다. 업계에서는 전세가율이 80%를 넘는 주택을 깡통주택으로 본다. 리젠트1004호같은 깡통주택이 천안에는 여전히 즐비하다는 뜻이다.
임대차계약 전 세입자가 집주인의 세금체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신설됐지만, 집주인이 몇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고 얼마의 대출을 받았는지까지 알 수는 없다. 최씨가 다시 전세사기를 당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할수 있을까.
그럼에도 희망을 놓치 않았던 이유
최씨는 결국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서야 ‘빚더미’에서 탈출했다. 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된 부모님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아들의 빚을 대신 갚아줬다.
“자식놈이 옥상에 올라갔다는데 세상에 어느 부모가 그걸 가만히 지켜만 보겠어요.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제발 ‘돈좀 받아달라’고 우시는데 달리 할말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그날부터 저녁 아르바이트 중 하나를 그만두고 자취방에서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되짚고 기록하는 작업은 “피와 살로 조각하는 기분”이 들만큼 고통스러웠다. 처음엔 울다가 좌절해서 그냥 누워버리기 일쑤였지만, 나중엔 굳은살이 생겨 울면서 글을 썼다. “더는 자신과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작은 일렁임’이라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중견 기업만 돼도 부서들끼리 손발이 안맞는 경우가 많잖아요. 전세사기 대응에도 어려움이 있는건 당연하다 생각해요. 그래도 피해자 목소리를 반영하며 최대한 보완해갔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그럴 통로가 막혔다고 느껴요. 출간 이후 정부에서도 연락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아직까진 없었어요.”
책의 말미, 최씨는 “내가 전세사기를 완전히 극복하는 날은 돈을 온전히 돌려받는 날이 아니라 파일럿 훈련을 받는 첫날일 것”이라고 말한다. “내 삶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끝나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며 악착같이 살아남겠노라 다짐한다. 희망을 잃지 않는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꿈’을 꼽았다.
“전세사기를 당하고 자살하려고 옥상에 올라갔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죽기 전에 못먹은 빵이 생각나겠냐, 못이룬 꿈이 생각나겠냐’ 싶더라고요. 파일럿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 만 34세에요. 저는 꿈을 위한 돈을 잃은거지 꿈을 잃은건 아니니까, 1% 확률이라도 남아있다면 끝까지 도전하고 싶어요.”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절대 자신을 자책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많은 분들이 정신과 약먹으면서 버티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생각할 때도 있겠지만 잘못한 사람들은 따로 있으니 끝까지 참고 버티셨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봄이 올테니까요.”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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