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김광석·넥스트를 틀고…부수고 짓고 씨름한 여름 한철 [ESC]

한겨레 2023. 11. 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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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송호균의 목업일기]송호균의 목업일기 공방 인테리어
갈아낸 바닥에 에폭시 하도제를 바르는 모습. 하도제가 마른 뒤 상도를 적용하면 견고하고 평탄한 바닥이 완성된다.

단순 반복노동의 도를 아는가? 결국은 그냥 하는 거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크게 틀어놓고,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퀸과 오아시스, 메탈리카, 에이시디시(AC/DC), 산타나, 김광석과 넥스트. 음악 어플에 저장한 ‘작업 플레이리스트’의 목록이 대충 이렇다. 아, 옛날 사람이여.

그래도 그 시간 동안 꾸준히 고민하던 게 있었으니, 바로 공방의 상호를 짓는 일이었다. 사업자도 곧 내야 하는데. 이름을 무엇으로 해야 할까. 9살 큰아들 민후에게 물었다. “아빠와 민후의 꿈의 공방 어때요?” 아이고 기특해라. 응, 다음 후보작을 말해다오. 고심 끝에 심플하게 지명을 갖다 쓰기로 했다. 공방이 위치한 서귀포시 ‘효돈’의 제주식 옛 지명이 ‘쉐돈’이다. 아주 단순하게, 쉐돈이라는 지명의 발음이 마음에 들었다. 그냥 목공방보다는 ‘나무공방 쉐돈’.

냇가에 뛰어들어 더위 식히고

어쨌든 아직 갈 길은 멀었다. 내부 철거와 벽지 제거 등 공방 인테리어를 위한 준비작업이 모두 끝나자 본격적으로 공간을 만들어가야 할 과제가 남았다. 제주에서 구옥을 상업공간으로 이용할 경우에는 천정의 구조물을 그대로 두고, 단열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까래와 보 등을 그대로 노출해 층고를 높인 채 그냥 사용하는 거다.

나도 그대로 둘까. 뭐만 하려면 모두 비용인데. 그러자면 한여름 서귀포의 작렬하는 태양을 어찌할 것인가. 단열이 없다는 건 결국 태양 아래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울 것 같았다. 결국 전문업체에 의뢰해 단열폼 시공을 하기로 했다. 천정의 단열폼, 울퉁불퉁한 바닥의 시멘트 미장은 전문업체에 의뢰할 수밖에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수성연질 단열폼이라는 게 정말 신기한 물건이다. 거대한 탱크에 연결된 호스로 액체 상태의 단열폼을 벽이나 천정에 분사하면 몇초 안에 부풀어올라 고체가 되고, 단열 효과와 기밀성도 매우 우수하다. 따로 말리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에, 석고보드 등의 마감작업도 바로 이어서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경화되면 유해물질이 배출되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화재에도 강하다. 작은 공간이기는 했지만 폼 시공과, 검은색 에어리스 페인트(호스로 뿌리는 방식의 페인트 시공법)를 이어서 진행하는 데 불과 3~4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페인트가 마른 뒤 서까래와 보는 직접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스테인 칠을 해줬다. 벽에는 아이보리색 페인트를 칠했다. 스테인도, 페인트도 붓과 롤러로 두번씩 칠해야 한다. 문장으로 써 놓으니 간단해 보이지만, 며칠 걸린 작업이었다. 장마철이었다. 습하고 더웠다. 폭염에 도저히 참지 못할 지경이 되면 인근 냇가에 옷을 입은 채로 그대로 뛰어들기도 했다. 그래도 폐허나 다름없던 공간이 점차 작업장 같은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올랐다. 벌써 천장과 벽이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바닥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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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균 대표가 누름미장이 끝난 상태의 바닥을 갈아내고 있는 모습.

시멘트 구하기 힘든 제주도

수평이 제대로 맞지 않아 울퉁불퉁한 바닥은 그대로 두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내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냥 미장을 합시다!” 고맙습니다, 여보. 역시 시원시원하십니다. 물론 난관은 있었다. 우선 미장 업체를 부른 날 비가 적지 않게 내렸다. 시멘트 모르타르의 단위는 ‘루베’다. 1루베는 1㎥이고, 레미콘 한차에 보통 6루베가 들어간다고 한다. 바닥 면적을 듣고 업체 쪽은 “3루베면 되겠네요”라고 했는데, 결국 나중에 자재가 부족해 1루베를 추가로 주문했다.

시멘트 구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제주도가 더 심하다. 시멘트 공급업체에 문의하면 일단 “물량이 없으니 기다리라”는 답이 되돌아온다. 이곳처럼 소규모 현장은 더하다. 시멘트와 레미콘 가격은 매년 오르기만 한다. 우여곡절 끝에 1루베를 더 섭외해 시공을 마무리했다. ‘누름 미장’이라고 해서 부어 넣은 모르타르를 작업자가 직접 누르고 펴 발라야 한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평탄하고 맨질맨질한 바닥을 보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만 같았다.

바닥 에폭시 시공은 직접 했다. 이번에도 목공 스승의 공방 ‘레진우드’ 팀의 도움이 매우 컸다. 줄탁동시라 했던가. 알의 껍질을 밖에서 쪼아주는 어미새처럼, 스승의 조력이 없었다면 창업과 독립은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장을 한 상태에서 바닥 표면을 갈아내지 않고 에폭시 시공을 하면 강도가 약해 결국 다 깨져나간다고 한다. 방진 마스크를 써도, 콧구멍 안에서 돌가루가 나왔다. 에폭시 시공을 마치고 기나긴 인테리어 공정을 모두 마무리 지었다.

결국 건축이든, 인테리어든 공간을 만드는 행위는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재료가, 원하는 강도로 잘 붙어있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 목조주택에 기둥을 세우거나, 콘크리트 구조물에 가벽을 치거나, 페인트 작업을 하거나, 하다못해 벽지를 바르는 일도 모두 마찬가지다. 2022년 5월에 계약하고 철거를 시작했으니, 인테리어 작업에 3개월 정도가 걸렸다. 대단한 공사는 아니었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혼자 해내려고 노력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각종 잡동사니로 넘쳐나던 서귀포 효돈의 구옥이 그렇게 하나의 공방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미리 찜해두었던 장비를 들여놓고, 필요한 집기를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일이 남았다. 지금까지가 ‘공사’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바야흐로 ‘공방’의 시간이다. 아들의 말처럼 꿈이 현실이 된 마법 같은 해 2022년. 앞으로는 보목포구와 쇠소깍, 뒤로는 월라봉과 한라산이 넉넉하게 품어주는 그곳. 서귀포시 효돈동에 자리 잡은 ‘나무공방 쉐돈’의 가을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글·사진 송호균 나무공방 쉐돈 대표

한겨레 기자로 일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2016년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했다. 본업은 육아와 가사였는데, 취미로 시작한 목공에 빠져 서귀포에서 목공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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