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1933, 한국 가곡 ‘별의 순간’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3. 11.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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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속 모던 경성]홍난파 ‘사랑’ 김동진 ‘가고파’ 현제명 ‘그집앞’ 등 불후의 명곡 탄생
한국가곡집 '고향의 봄'을 낸 베이스 연광철. 홍난파의 '사랑' '옛동산에 올라', 현제명의 '그집앞', 채동선의 '그리워' 등 1933년 발표된 불후의 명곡 4곡이 포함돼 있다. 음반에는 일제부터 1970년대까지 나온 대표가곡 16편과 작곡가 김택수가 만든 신작 2편이 담겼다. /이신영 영상미디어기자

베이스 연광철이 낸 한국 가곡 음반 ‘고향의 봄’을 매일같이 듣고 있다. 매년 여름 바그너 마니아들이 몰려드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단골 출연자이자 현지 청중들이 정확한 독일어 발음을 칭찬할 만큼 신뢰받는 성악가가 연광철이다.묵직한 목소리에 담긴 홍난파의 ‘옛동산에 올라’, 장일남 ‘비목’, 김동진 ‘산유화’는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할 만큼, 품격과 정감을 갖췄다. 우리 말 가사의 맛을 이렇게 아름답게 살릴 수 있구나 감탄한다. 집안에서, 또 출퇴근하면서, 주말 자전거 코스에서 듣고 또 듣게 된다.

연광철 음반엔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한국인의 사랑을 받은 가곡 16편과 신예 김택수의 신곡 2편 등 18곡을 실었다. 해설지를 들여다보니, 홍난파의 ‘옛동산에 올라’, ‘사랑’(연광철이 부르는 ‘사랑’을 들으시려면 클릭하세요), 현제명 ‘그 집앞’, 채동선 ‘그리워’ 등 1933년 발표된 곡이 4편이나 된다. 불후의 명곡이 탄생한 기념비적 순간이다. 노산 이은상이 쓰고 평양 숭실전문학교생 김동진이 작곡한 ‘가고파’도 1933년 태어났다. 한국인의 애창곡이 같은 해에 출현한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동시대에 활약하면서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것처럼, 막 씨앗이 뿌려진 근대 음악분야에서 불후의 명곡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시대였다.

홍난파는 1933년10월10일 저녁 7시30분 이화여전 강당에서 현제명과 함께 작곡발표회를 가졌다. 노산 이은상시조 15편에 곡을 붙인 '조선가요작곡집'(1933)에 수록된 '사랑' '옛동산에 올라' 봄처녀' '장안사' '금강에 살으리랏다' 등 한국가곡사에 길이 남을 명곡을 이날 선보였다. /ⓒ세광음악출판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33년 10월10일 이화여전 음악회, 가곡의 기념비

1933년 10월10일은 한국 가곡사에서 가장 빛났던 밤으로 기억할 만하다. 이날 오후 7시30분 이화여전 강당에서 홍난파(1898~1941), 현제명(1902~1960) 작곡발표회가 열렸다. (’현제명홍난파 양씨 작품발표회’, 조선일보 1933년10월10일)

테너 이유선, 소프라노 채선엽, 홍난파 조카인 바이올리니스트 홍성유와 그 아내인 피아니스트 김원복, 그리고 테너 현제명과 홍난파가 재직한 경성보육학교 합창단이 무대에 섰다. 홍난파의 ‘사랑’ ‘봄처녀’는 채선엽이 불렀고, 현제명의 ‘그 집앞’은 이유선이 불렀다. 현제명은 홍난파의 ‘옛동산에 올라’ ‘관덕정’ ‘입다문 꽃봉오리’와 자작곡 ‘새가 되어 배가 되어’ ‘소경되여지이다’ ‘진달래’를 불렀다.

홍난파와 현제명은 1933년 각각 ‘조선가요작곡집’(한성도서)과 ‘현제명작곡집’ 제2집을 발표했다. ‘조선가요작곡집’은 노산 이은상 시조 15편에 곡을 붙인 작품집이었다. ‘옛동산에 올라’, ‘사랑’은 물론 ‘봄처녀’ ‘성불사의 밤’ ‘장안사’ ‘금강에 살으리랏다’ 등 주옥 같은 명곡이 실렸다. 현제명 작곡집엔 그의 대표작인 ‘희망의 나라로’ ‘그집앞’ 등 독창, 합창곡 12편이 실렸다. 노산 시조를 가사로 쓴 게 9편이다.

이화여전 음악회는 홍난파, 현제명 작곡집에 실린 작품을 거의 모두 소개했다. 두 작곡집에 실린 작품들은 우리 가곡사의 전설이 됐다.

현제명은 1933년 '현제명작곡집'2집을 발표했다. '그집앞' '희망의 나라로'같은 대표작이 실렸다. 현제명은 1933년 10월10일 이화여전 강당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자작곡을 발표하고, 직접 노래를 불렀다.

◇가곡 붐의 모태 ‘노산시조집’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살린 일등 공신은 노산 이은상(1903~1982)이었다. 노산은 난파보다 연배가 앞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난파보다 다섯 살 아래였다. 문학청년이었던 난파는 노산이 쓴 시조만으로 작품집을 냈다. 노산이 쓴 시조는 홍난파뿐 아니라 대부분 작곡가들의 텍스트가 됐다. 현제명의 ‘그집앞’, 김동진의 ‘가고파’, 채동선의 ‘그리워’같은 명곡들이 모두 노산 시조를 바탕으로 했다. 스무살 때 숭실전문학생 김동진은 연희전문 교수 현제명이 작곡한 ‘가고파’를 누르고 불후의 명곡 ‘가고파’ 작곡가가 됐다. 채동선의 ‘그리워’는 원래 정지용 시 ‘고향’을 가사로 썼다가 노산 시조로 가사를 바꿔붙였다.

홍난파와 현제명 작곡집은 대부분 1932년 간행된 ‘노산시조집’을 텍스트로 삼았다. 노산이 스물 아홉살에 낸 첫 시조집이었다. 문학과 음악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별의 순간’을 합작했다.

노산 이은상은 1930년대 한국 가곡의 수원지 역할을 했다. 홍난파, 현제명, 김동진 등이 노산 시조에 붙인 '사랑' '그집앞' '가고파'는 불후의 명곡으로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1933년10월10일 이화여전 강당에서 열린 현제명 홍난파 작품 발표회를 소개한 조선일보 1933년 10월10일자 기사. '향수' '옛동산에 올라' '그집앞' '희망의 나라로' 등 오늘날까지 불리는 불후의 가곡이 탄생한 기념비적 공연이었다.

◇홍난파 저격한 신예 이승학, ‘선율이 부자연스럽고, 싫증난다’

1933년 10월10일 홍난파·현제명 작곡발표회는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이날 음악회를 둘러싸고 음악가끼리 지상(紙上)논전을 펼친 것이다. 1933년 동양음악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바리톤 이승학이 선배격 홍난파에 대해 비판적 리뷰를 하자 홍난파가 이에 맞서 반박했다. 이승학(1908~2003)은 훗날 서라벌예대학장, 중앙대예술대학원장을 지냈다.

‘시(詩)에 대하여 리듬과 악센트를 조금도 무시치 않고 잘 진행되었으나 선율이 좀 부자연하게 들리는 곳이 있으며 종지에 가서 ‘섭도미난테’의 화음이 소음임을 유감으로 생각한다.’(‘옛 강물 찾아와’) ‘반주로서는 호감을 주었으나 선율에 음의 중복이 많아 싫증을 주게 함은 퍽 유감이었다.’(‘장안사’) ‘씨(氏)의 작품을 총괄하여 보면 전조(轉調)가 드물어 곡에 변화가 없고 민요풍으로 된 선율에 대하야 반주는 배치되는 감(感)이 난다. 씨(氏)는 가요곡보다는 기악곡이 퍽 우월하였고 기악곡에 대하야 동계를 얻는 것과 발전 수법이 퍽 좋음을 느꼈다.’(‘玄洪양씨의 신작을 듣고’, 조선일보 1933년10월19일)

◇난파의 반격 ‘내 음악이 소음이라고?’

스물다섯 이승학은 패기가 넘쳤다. ‘선율이 부자연스럽다’ ‘소음’ ‘선율에 중복이 많아 싫증난다’며 10년 연상의 음악계 대선배를 직설로 저격했다. 난파는 상당히 격분했던 모양이다. 두차례에 걸쳐 반박글을 실었다. ‘작곡법 첫 페이지를 읽은 지식으로 남의 작품을 함부로 평하는 등의 경거는 조심해야 할 것’ ‘’선율의 중복’ 운운은 무엇을 의미한 것인지 알고 싶다. 이러한 애매한 말로써 어물어물할 바에야 구태여 남의 작품을 조상(俎上,도마)에 올려놓을 의사가 왜 생겼는지…'(‘작품발표연주에 대한 이승학씨의 평을 읽고’ 上, 조선일보 1933년11월3일)

홍난파는 두번째 반박문에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자기의 무지에 가까운 오견(誤見)으로 큰 결점이나 찾아낸 듯이 호언한 것에 대하야 군(君)의 태도를 좀 더 자중하라고 권하고 싶고….’(‘작품발표연주에 대한 이승학씨의 평을 읽고’下, 조선일보 1933년11월5일)

당사자끼리 맞부딪친 실명비판이이었다. 논쟁의 시대였다.

◇연광철 가곡집의 난파와 노산

1933년은 세계 대공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채, 일제가 만주사변으로 침략정책을 노골화하던 때다. 어려운 시기였다. 만해 한용운은 1929년1월1일자 조선일보에 ‘조선청년에게’란 글을 썼다. ‘현금(現今)의 조선 청년은 시대적 행운아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현대는 조선청년에게 행운을 주는 득의(得意)의 시대다. 조선청년의 주위는 역경인 까닭이다. 역경을 깨치고 아름다운 낙원을 자기의 손으로 건설할만한 기운에 제회(際會)하였다는 말이다.’

역경의 시대에 우리 가곡의 꽃을 활짝 피워 문화적,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유산을 물려준 1세대 음악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연광철 음반 ‘고향의 봄’을 들으면서 든 생각이다.

◇참고자료

이유선, 한국양악백년사, 음악춘추사, 1985

이강숙, 김춘미, 민경찬, 우리 양악 100년, 현암사, 2001

‘고향의 봄’, 연광철이 부르는 한국가곡, 풍월당,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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