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내면서 끌어낸 사회 문제, 추리물 쓰는 이유죠"
인권위 경험 녹여낸 '달리는 조사관'
케이블TV 드라마로 제작 큰 반향
범죄 통한 사회 메시지 전달 작품도
'범인 색출' 본격 추리물 써보고파
미스터리 장르 시장 다소 개선됐지만
영상 판권 매달리는 현실 안타까워
송시우 작가는 아직은 빈약하다고 평가받는 국내 장르문학 시장에서 자신의 이름만으로 신작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게 하는 소수의 작가군 중 한 명이다. 2008년 데뷔한 후 ‘라일락 붉게 피던 집(2014)’ ‘달리는 조사관(2015)’ ‘아이의 뼈(2017)’ ‘검은 개가 온다(2018)’ ‘대나무가 우는 섬(2019)’ ‘구하는 조사관(2022)’ 등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단편 ‘아이의 뼈’가 2012년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을 수상하고 대부분 작품이 영상화 판권 계약을 맺는 등 대중과 평단 모두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특히 네 명의 인권조사관들이 직장 내 성희롱, 위법 체포 등 인권 침해 문제의 진실을 파헤치려 고군분투하는 내용의 ‘달리는 조사관’은 2019년 한 케이블 채널이 드라마로 제작해 큰 인기를 누렸다. 원작이 현직 국가인권위원회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작가의 이력이 반영된 작품이라는 사실도 대중의 관심을 끈 요소였다.
지난달 신작 소설집 ‘선녀를 위한 변론’을 펴낸 송 작가는 여전히 인권위에서 근무하고 있다. 평일은 공무원, 주말은 소설가로 산다. “전업 작가로 살기에는 한국의 출판 시장 사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 직장을 계속 다니게 하는 이유 중 하나지만 조직에서 경험하는 일들이 소설에 꽤 도움이 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인권위라는 곳이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판단하는 기관인 만큼 소설에서 활용할 만한 경험을 꽤 얻는다”며 “무엇보다 조직의 쓴 맛을 아는 자와 그걸 모르는 사람의 글에는 분명 다른 경험치가 묻어난다고 믿는다”고 웃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근무 부서 정도다. 사회인권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행정법무를 담당하는 쪽으로 옮겼다. 그래서인지 소설집 속 다섯 편 중 두 편이 동화 속 인물들의 송사를 다루는 법정 미스터리다. ‘인어공주’와 ‘선녀와 나무꾼’ 속 인물인 왕자·나무꾼의 살인 사건에서 시작되는 각각의 이야기는 범인으로 몰린 인어공주와 선녀의 무죄를 증명하는 동시에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흐름을 따라간다. 송 작가는 “일본 미스터리 장르 중 하나인 ‘특수 설정(비현실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정확한 미스터리 규칙을 정해 추리하는 장르)’을 처음 써봤는데 굉장히 즐거웠다”며 “끙끙대며 글 한 편을 겨우 써내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스스로 놀랄 만큼 즐거워 비슷한 걸 한 번 더 시도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편이 새로운 시도였다면 나머지 작품에서는 작가의 기존 스타일이 보인다. 특히 마지막에 실린 중편 ‘알렉산드리아의 겨울’은 범죄를 소재로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의 기수로 주목받았던 송 작가의 역량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2017년 벌어진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이 떠오르는 작품인데 출간하기까지 그도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다른 경로로 한 번 발표된 글인데 실화를 모티브로 하다 보니 불편해하는 독자도 있었고 걱정스럽게 보는 사람도 많았죠. 얘기를 듣다 보니 최근 범죄 예능이 범람하는 현실도 보이더라고요. 누군가 지독하게 고통받은 범죄를 오락의 소재로 풀어내는 게 윤리적으로 괜찮은가 고민에 빠지게 됐고 또 만약 해야 한다면 언제부터,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죠. 물론 정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에 기초하지 않은 이야기는 만들기도 읽기도 힘들다”는 송 작가는 범죄자를 보면 ‘저 사람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 메시지를 풀어내는 일에 마음이 간다고 했다. 또 그와 동시에 복잡한 현실을 보다 보면 “선과 악이 명쾌하게 나뉘고 하나의 정답이 도출되는 세계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에 범인 찾기와 트릭 풀이에 집중하는 ‘본격’ 추리물에도 끌린다고 했다. “다음 작품 계획은 완전 백지”라고 했지만 장르는 아마 사회파나 본격 추리물 둘 중 하나로 풀어낼 것 같다는 게 송 작가의 설명이다.
“인권에 관한 일을 하고 싶었고 미스터리 작가도 되고 싶었다”는 그는 앞으로도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룬 ‘소설 쓰는 직장인’으로 열심히 살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추리소설가가 소설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하는 조심스러운 바람도 전했다.
“2014년 첫 장편을 냈을 때만 해도 미스터리 소설이 1년에 10종 정도 출간될 정도로 시장이 작았지만 지금은 출판사도 많이 생기고 장르문학 출판도 활성화됐어요. 다만 아직도 책을 파는 수익보다 영상화 판권 수익이 더 높은 건 아무래도 씁쓸한 일이죠. 소설이라는 매체를 좋아하고 소설로 승부를 보고 싶은 저로서는 독자들이 책을 좀 더 찾아주기를, 출판 시장이 좀 더 활성화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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