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주의보! 아폴론도 당했다[살며 생각하며]

2023. 11. 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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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 시네라처문화콘텐츠연구소장, 영화평론가, 前 숙명여대 교수
사기는 과욕이 부른 성격장애
자기만족 위해 도덕 내팽개쳐
영화 ‘리플리’ 사기꾼 보노라면
그때와 지금 조금도 다르지 않아
헤르메스가 아폴론 농락하듯
좋은 것에 눈멀면 알고도 당해

다른 나라에서는 범죄 중 절도가 1위를 차지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기가 1위라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사기 범죄율이 가장 높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치안은 안전하다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처럼 사기 범죄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이유로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경우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과욕이나 지나친 추구가 도덕심을 내던져 버리게 만든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기’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1960)와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2000)다. 두 영화 모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스토리 전개 과정이 다르다. 이 소설은 1955년 초판이 나올 때도 히트를 했고, 영화화된 두 편의 영화가 모두 세계적으로도 흥행에 성공했다. 이는 리플리라는 캐릭터가 그만큼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결과다.

‘태양은 가득히’는 원작과 달리 주인공 톰의 사기극이 결말에서 발각되는 인과응보로 결론지어지지만, ‘리플리’는 원작에 더 가깝다. 영화 ‘리플리’의 오프닝은 톰 리플리가 손목을 다쳐 피아노를 칠 수 없는 피아니스트 대신 그의 프린스턴 졸업생 재킷을 입고, 부자들의 화려한 파티에서 성악가의 반주를 하는 장면이다. 낮에는 호텔 보이, 밤에는 피아노 조율사로 살아가며 호텔에서의 클래식 연주자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던 톰이 밤에 남몰래 호텔의 피아노 앞에서 연습한 실력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다. 이후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지울 수 있다면, 나 자신부터 지우고 싶다. 재킷을 빌린 것부터”라는 톰의 내레이션으로 그가 내면적으로 갈등하는 입체적 캐릭터임을 보여준다.

그는 이 연주로 선박 부호 허버트 그린리프의 눈에 띄게 된다. 그린리프 내외는 졸업 기수가 적힌 프린스턴 재킷을 보고 그를 아들 디키 그린리프(주드 로 분)의 친구로 생각하게 된다.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얼결에 거짓말을 하게 된 톰은 그린리프의 조선소에 초대되면서 거짓말을 본격화한다. 이탈리아에서 여자친구 마지(기네스 팰트로 분)와 돈만 쓰고 노는 망나니 아들 디키를 집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면 천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그린리프에게 받은 톰은 디키와 친해지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재즈를 연구하며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기까지 가사를 외운다.

톰은 그린리프가 보내준 유럽행 고급 크루즈 티켓의 R석에 타게 되는데, 출입국 수속을 밟으면서 섬유 재벌가의 딸인 메러디스 랜들(케이트 블란쳇 분)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선박 가문 그린리프의 아들 디키라고 말한다. 디키의 많은 것을 연구한 터라 디키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가 프린스턴에 같이 다녔다며 접근한다. 톰은 점차 디키와 마지 사이에 치밀하게 끼어들어 언변으로 신뢰를 얻게 된다. 디키가 뭘 잘 하느냐고 묻자 톰은 “서명 위조, 거짓말, 다른 사람 흉내 내기”라고 답해 디키가 당황하지만, 아버지 말투를 그럴듯하게 흉내 내는 톰의 재주에 디키는 웃어넘기게 된다. 게다가 재즈클럽에서 재즈곡을 멋지게 불러 톰은 디키의 마음에 쏙 들게 된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디키는 톰에게 스키도 못 타고, 옷도 못 입는 가난뱅이라 놀리기 일쑤고, 둘이서만 요트를 탔을 때, 심지어 ‘거머리’라고 무시하며 지겹다고 화를 낸다. 흥분하여 다투던 톰은 디키를 홧김에 죽이게 된다. 이후 그는 디키가 되어 그의 서명으로 그의 여권을 위조하여 살아간다. 그를 의심하는 디키의 친구 프레디까지 살해한 톰은 프레디의 죽음을 조사하는 로마 경찰에게는 자신이 디키라며 거짓말을 하고, 베니스로 도망쳐서 베니스 경찰에게는 자신이 톰 리플리라고 경찰의 취조에 응한다. 그를 향한 모든 의심은 톰이 위조한 디키의 유서로 운 좋게 마무리되고, 톰은 자신을 디키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가 하면, 톰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살해하며 결말로 치닫는다.

톰 리플리는 우발적이든 의도적이든 사람을 살해한다. 위기를 모면하고자 비밀을 눈치챈 사람들까지 죽이고, 재벌 2세로 행세하며 살아가는 반인격장애 캐릭터다. ‘리플리증후군’(Ripley syndrome)의 어원이 되었던 소설 ‘리플리-재능 있는 리플리’는 사기가 여전히 사회에 팽배하다는 주제의 영화와 인과응보로 주제가 변형된 두 영화 사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기란,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타깃을 다양하게 분석하여 타깃의 욕망을 알고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마음이 약한 사람일수록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그리스 신화 속 예언의 신 아폴론은 음악의 신이기도 하다. 도둑질하는 능력이 출중한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아폴론의 소들을 훔치면서 풀잎 신발을 신겨 훔친 소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속인다. 예언의 신 아폴론은 헤르메스가 범인인 줄 알았지만, 헤르메스가 리라(lyra·고대그리스의 작은 현악기)를 연주하고 있을 때, 그 리라를 갖고 싶어졌다. 헤르메스는 훔친 소들을 다 내게 주면 리라를 주겠다고 했다.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폴론은 리라를 받고 소들을 전부 주게 된다. 어느 날은 헤르메스가 피리를 만들어 불고 있었다. 아폴론이 피리를 갖고 싶어 하자, 헤르메스는 황금지팡이를 주면 피리를 주겠다고 한다. 아폴론은 귀중한 황금지팡이를 주고 피리를 선택한다. 좋아하는 것 때문에 당하는 것이다.

신들도 그러니 인간이야 오죽할까. 좋아하는 것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황영미 시네라처문화콘텐츠연구소장, 영화평론가, 前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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