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높은 곳 오르기 위한 근력·유연성·두뇌플레이 [ESC]

한겨레 2023. 11. 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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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커버스토리]커버스토리 실내·외 클라이밍
‘인공 시설물’ 스포츠 클라이밍 대중화…MZ세대, SNS서 서핑·테니스보다 인기
다양한 난이도 코스 푸는 볼더링 “힘보다 머리 잘 써야 하는 자신과의 대결”
자연 암벽등반 “무섭지만 매력적, 건강에 최고”…체력 소모 커 2~3일은 쉬어야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클라이밍 뚝섬점’에서 열린 ‘스포츠 클라이밍 1일 체험 수업’에 참여한 유해강씨가 인공암벽을 오르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각질 제거용 화산석처럼 까끌까끌한 초록색 홀드를 초크 범벅이 된 양손으로 힘껏 부여잡았다. 홀드는 암벽등반에서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딜 수 있는 요철이고, 초크는 마찰력과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손에 바르는 탄산마그네슘 가루다. 바닥 가까운 벽에서도 초록색 홀드를 찾아 발을 올렸다. 꽉 조이는 암벽화 속에서 짓눌린 엄지발톱이 욱신거렸다. 떨어지지 않으려 긴장한 탓에 어깨가 굽고 뒷목이 뻣뻣하게 땅겨왔다.

“발끝으로 홀드를 정확하게 찍고, 무릎을 벌린 채로 주저앉아 무게중심을 낮추세요. 그래야 팔 힘을 아낄 수 있어요.” 대학 동아리에서 암벽등반을 즐기다 클라이밍 강사로 활동 중인 김승환(29)씨가 뒤에서 말했다. 팔을 펴고 하체를 내리자 어깨의 긴장이 풀렸다. 숨을 한번 고른 뒤 점프하듯 일어나 초록색 홀드들을 차례로 잡고 오르자 주황색 띠가 붙은 톱 홀드가 코앞이었다. 맨 마지막 홀드인 톱 홀드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셋을 셌다. “주황색 문제도 푸셨네요!” 밑에서 김씨가 외쳤다. 지난 3일 서울 성동구의 ‘서울숲클라이밍 뚝섬점’에서는 ‘스포츠 클라이밍 1일 체험 수업’이 열렸다. 내가 상대적으로 쉬운 분홍·빨강·주황 문제를 겨우 푸는 동안, 센터를 찾은 20~30대 회원들은 갈색·검은색 띠가 붙은 고난도 문제에도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서로 응원하는 동호회 문화

산악 등지에서 즐기는 자연 암벽등반이 ‘매운맛’이라면, 인공 시설물을 등반하는 스포츠 클라이밍은 이를 안전하고 쉽게 만든 ‘순한맛’ 운동이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성큼 대중화됐다. 지난 7월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2023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리드 부문에서 우승하면서 출산 이후에도 금메달을 목에 건 ‘암벽 위의 발레리나’ 김자인(35) 선수의 20년 활약도 클라이밍 관심도를 높였다. 94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엑시트’(2019)에서는 주인공들이 스포츠 클라이밍 마니아로 설정되기도 했다. 지난 5일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클라이밍’을 검색하면 146만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엠제트(MZ) 세대를 필두로 유행 중인 서핑(140만)과 테니스(115만)를 웃도는 인기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크게 세 종목으로 나뉜다. 정해진 루트를 최대한 빨리 올라가는 ‘스피드’.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높이 올라가는 ‘리드’. 4~5m가량 낮은 인공 암벽에서 특정 홀드만 타고 올라 톱 홀드를 잡아야 하는 ‘볼더링’. 안전을 위해 스피드·리드 부문은 몸에 줄을 매달지만, 볼더링은 바닥에 20㎝ 두께의 충격 흡수용 ‘크러시 패드’를 안전장치로 설치한다. 층고가 높지 않아도 홀드의 형태와 배치를 통해 다양한 난이도의 문제를 만들고 주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 무경험자부터 고수까지 폭넓게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다수 실내 암장(클라이밍 센터)은 볼더링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클라이머들은 흔히 볼더링을 ‘문제 풀이’에 빗대곤 한다. 김승환씨를 비롯한 경험자들은 모두 “힘보다 머리를 잘 써야 하는 운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완등 루트를 찾는 전략이 우선이고 오를 때는 기술과 근력의 적절한 분배가 중요하다. 김승환씨는 하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팔 근육에 비해 허벅지 근육이 몇 배나 크다. 팔로만 오르려고 하면 힘도 많이 들뿐더러 부상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신발은 양말을 벗은 상태에서 발가락이 살짝 굽을 정도로 딱 맞는 것을 신어야 홀드를 디딜 때 안에서 밀리지 않는다. 내려올 때도 가급적 홀드를 이용하는 게 안전하다. 뛰어내릴 때는 아래를 확인한 다음 무릎을 굽힌 채 착지하고 엉덩이, 등 순으로 굴러 충격을 분산시켜야 한다.

‘스포츠 클라이밍 1일 체험 수업’에 참여한 유해강씨가 볼더링 4단계 ‘문제 풀이’에 도전하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실내 클라이밍의 매력은 무엇일까. 특유의 크루(동호회) 문화와 자신과의 대결, 날씨와 무관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점 등이 꼽힌다.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권순찬(27)씨는 소속 연구실 동료들과 지난 5월 클라이밍 크루 ‘루트의 정석’을 꾸렸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주요 암장과 운동 영상 등을 공유했다. 4명으로 시작한 크루 인원은 15명으로 늘었다. “클라이밍은 크루 문화가 무척 활발해서, 내성적인 사람도 자연히 크루에 들게 돼요. 누가 문제를 풀고 있으면 서로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분위기죠.” 일식 요리사인 김윤경(47)씨는 북한산 인수봉을 오르기 위해 훈련차 실내 암장에 다니다 특유의 크루 문화에 푹 빠졌다. “멤버 중 한명이 문제를 풀면 다 같이 ‘나이스’라고 외쳐주기도 하고, 단체 카톡방에서는 클라이밍 이모티콘을 주고받으며 대화해요. 단순히 운동이 아니라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여럿이 함께 하면서도 경쟁하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다. 권순찬씨는 고등학교 시절 플래그풋볼(몸싸움이 최소화된 형태로 미식축구에서 파생된 스포츠)을 즐겼다. 권씨는 “사람과 대결하는 운동을 하면 때로는 좌절감을 느끼기도, 감정이 상하기도 하는데 클라이밍은 오로지 문제와 나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또 권씨와 김씨는 “클라이밍이 날씨와 무관하게, 늘 새로운 기분으로 즐길 수 있는 고강도 전신 운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내 클라이밍은 ‘장애 아동 치료’에도 활용되고 있다. 18년차 수중재활운동사인 신철(45) 경기 용인시 기흥장애인복지관 대리는 지난해 3월 설치한 국내 유일의 ‘아쿠아 클라이밍’을 통해 발달·지체장애, 뇌병변 등의 장애가 있는 유아·청소년을 치료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경기 용인 기흥장애인복지관에서 초등학생들이 ‘아쿠아 클라이밍’을 하는 모습. 신철 제공

“재활 운동에 집중 못 하던 아이들도 클라이밍은 놀이로 인식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지칠 때까지 즐깁니다.” 물로는 떨어져도 다칠 위험이 거의 없지만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끈을 맬 수 있는 벨트를 착용시킨다. 신 대리는 아쿠아 클라이밍을 통해 “장애 아동의 스트레스 감소, 기초대사량 증가, 유연성 향상, 자세 교정, 근력균형·집중력 향상 등 효과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장애인들의 자발적인 재활 치료를 위해 다양한 연구와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과 장비 사용 등을 위해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연 암벽등반 ‘안전장비 숙지’ 필수

실내 클라이밍은 자연 암벽등반을 하던 이들이 암벽등반이 어려운 겨울철에 실내에서 연습하기 위한 목적으로 암장을 만들어 훈련하던 것에서 유래됐다. 자연에서 암벽등반 하는 이들의 ‘등반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지난달 29일 화창한 하늘 아래 울긋불긋 단풍이 피어오른 서울 도봉산 선인봉의 깎아지른 암벽 앞. “저는 소설을 쓰려고 암벽을 탑니다.” 암벽을 오를 준비를 막 끝낸 이동찬(56)씨가 웃으며 말했다. 이씨는 젊은 시절 고 이문구 작가로부터 문학을 배웠고, 50여편의 소설을 썼다. 지금은 금융 기업의 역사를 정리하는 사사를 쓰고 있다. 이씨는 13년 전 친구 손에 이끌려 시작했다가 “무섭고 힘들어” 그만뒀던 암벽등반을 올해 다시 시작했다. “암벽을 타니 소설이 써져서”다. “암벽등반은 인생 같아요. 발 디딜 데가 없는데 어떻게든 디뎌지고, 올라가집니다. 무서우면서 매력적이에요.”

지난달 29일 도봉산 선인봉에서 ‘정승권등산학교’ 수강생 서인선씨가 경송 에이(A) 루트를 오르고 있는 모습. 유해강 제공

이씨를 포함한 ‘정승권등산학교’의 암벽연수반 학생 3명은 이날 정승권 교장과 함께 선인봉의 ‘경송 에이(A)’ 루트를 올랐다. 90도 이하 기울기의 경송 에이 루트에는 손가락 끝을 겨우 걸칠 정도로 얇은 홀드들이 잘게 분포돼 있었다. 움켜쥐는 기술보다는 하체의 유연성과 섬세한 발 디딤이 요구된다. ‘선등자’로 가장 먼저 경송 에이를 오른 정승권 교장은 선인봉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높고 가팔라야지만 좋은 암벽인 건 아녜요. 선인봉의 경우 크랙(암벽의 갈라진 틈)의 모양이 단조롭지 않고, 잡기 좋게 뻗어 있습니다. 과한 힘을 줄 필요가 없죠. 또 바위 질감이 손에 착 감기고,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튀어나온 홀드가 많아 오르는 재미가 있습니다.”

자연 암벽에서 안전한 완등을 위해서는 올바른 장비 사용법을 숙지해야 한다. 등반 전에는 ‘헬멧’과 하반신을 감싸는 ‘하네스’를 착용하고, 여기에 ‘자일’(밧줄)을 고정시킨다. 루트에 고정 확보물인 ‘볼트’가 설치된 경우 자일을 연결해 추락 거리를 줄일 수 있고, 고정 확보물이 없는 곳에는 준비해 간 ‘너트’와 ‘캠’ 등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너트와 캠은 크랙에 끼워 넣어 지지력을 확보하도록 하는 장비다. 암벽에서 내려올 때는 자일에 마찰을 일으켜 제동하는 ‘확보기’ 또는 ‘하강기’를 쓴다. 정 교장은 “대다수 추락 사고가 확보물을 잘못 설치해서 일어난다”며, 인공 암벽에서 등반 기술을 연습하는 것과 함께 유동 확보물 설치법을 정확히 익히라고 강조했다. 또 팀원들이 돌아가며 등반자의 움직임에 따라 자일을 조이거나 풀며 안전을 살펴주는 ‘빌레이어’(로프 조작 기술로 등반자의 등반을 지원하고, 등반자의 추락을 방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등반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해 2월 피켈을 이용해 설악산 소토왕폭포를 오르고 있는 ‘정승권등산학교’의 강사 최민성씨. 정승권 제공

등반 장소도 다채롭다. 도봉산 선인봉과 북한산 인수봉, 그리고 설악산 적벽과 미륵장군봉은 자연 암벽 등반가들의 ‘핫 플레이스’다. 바다를 뒤로한 채 등반하는 경북 영덕 블루로드 해벽과 같은 장소도 있다. 겨울철에는 ‘피켈’(곡괭이 모양의 빙설 등반 도구)과 ‘아이젠’(미끄러지지 않도록 신발에 채우는 쇠갈고리)으로 얼음을 찍고 올라가는 빙벽 등반을 빼놓을 수 없다. 설악산 소승폭포·토왕성폭포·소토왕폭포, 춘천 구곡폭포 등이 성지다. “히말라야 등 외국의 고산을 오르려면 빙벽 등반은 필수입니다.” 정 교장은 “얼음이 깨지지 않고 스텝이 무너지지 않게 수평으로 킥을 차는 것이 중요하다”고 요령을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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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근개 손상 조심해야

암벽등반은 건강과 근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이날 경송 에이를 완등한 서인선(59)씨와 김영은(31)씨는 암벽을 타면서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에 사는 서씨는 3년 전 딸의 추천으로 암벽등반을 시작한 뒤 “감기 등 잔병치레가 없어졌고 폐경기 심리 변화도 줄었으며, 군살도 빠지고 근육량은 늘었다”고 했다. 서씨는 현재 산악전문지도사 자격증에 도전 중이다. “단순히 바위를 오르는 것을 넘어, 등반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알고 즐기고 싶어서”다. 경기 안양에 사는 김씨는 “올해 암벽등반을 시작했는데, 약했던 무릎이 많이 좋아졌다”며 “무사히 내려오면 ‘오늘도 살았다’는 느낌에 계속한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 먼저지만 결국 타인과의 믿음, 유대가 필수인 것 같다”고 했다.

북한산과 도봉산을 오가며 10년째 자연 암벽등반을 즐기는 서울 관악구 하버드재활의학과의원 이상룡(51) 원장은 암벽등반이 근력 향상에 탁월하다고 말한다. “경력이 5년 미만이면 손가락·전완근이 발달하고 5년 이상 되면 코어·다리 근육이 발달합니다.”

근육을 많이 쓰는 운동인 만큼 부상도 조심해야 한다. 가장 흔한 부상은 회전근개(어깨 관절 주위를 덮고 있는 근육) 손상이다. 이 원장은 “커다란 등 근육을 써야 하는데, 팔만 쓰거나 과욕을 부리는 경우 어깨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가락 관절염, 추락으로 인한 발목 골절, 어깨 탈구도 흔히 입게 되는 부상이다. 부상 방지를 위해서는 평상시 스트레칭과 냉·온찜질을 꾸준히 해줘야 하고, 무엇보다 욕심을 부리며 무리하게 움직이는 건 금물이다. 이 원장은 “실외 암벽등반은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한번 하면 2~3일은 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클라이밍의 이론과 실제를 한눈에 파악하고 싶다면 유튜브 채널 ‘클라임투어티비’를 추천한다. 클라이밍 관련 인물, 경기, 훈련, 암장별 특징이 종합적으로 정리돼 있다. 본격적인 자연 암벽에 뛰어들고 싶다면 ‘한국등산학교’, ‘서울등산학교’, ‘코오롱등산학교’ 등 체계를 갖춘 곳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안전하고, 동료를 사귀기에도 좋다. 실내 클라이밍 센터의 경우 볼더링과 지구력 훈련 중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선택한 뒤 해당 문제 풀이를 많이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유해강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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