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의 감성, 골프美학] 인연(因緣), 골프로 맺어진 만남과 그 값어치

김인오 기자 2023. 11.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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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이라는 참 좋은 단어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말한다. 우린 수많은 인연을 통해 살아가고 있고 또 살아갈 것이다. 특히 필자에게 있어 골프로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 아니 골연(골프 인연)은 참 특별하다. 골프를 시작하고 나서 면면히 이어지는 관계, 그 인연은 적어도 십 년, 많으면 30년 그 이상이다. 

얼마 전 30년간 인연을 이어온 지인이 불쑥 전화했다. 그는 30년간 필자가 해온 '쌀 한 포대의 기적'에 매년 5만 원씩을 보내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필자와의 인연을 1년, 1만원씩으로 계산해 30만원을 보내오겠다고 한다. "30년 만남의 소중한 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되돌아보니 가슴이 먹먹해 온다. 시간, 그 소중한 세월을 참 값어치 있게 만들어 준 사람이다. 그러면서 그는 필자랑 지금까지 62회 라운드를 했는데 100번째 라운드가 이뤄지는 날은 100만원을 기부하겠다며 행복해했다. 이렇게 인연을 값어치 있게 쓰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만드는 사람이다.

스쳐가면서 눈 인사 한 번 하는 시간을 우린 순간(瞬間)이라고 말한다. 눈 깜박임 정도의 시간이다. 이를 '찰나'라고도 한다. 1찰나는 75분의 1초의 시간이다. 골프장에서 만나 함께 샤워하고 밥을 먹으면 5시간에서 8시간의 인연을 맺는다. 이를 환산한다면 수천만 억겁의 시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숫자의 끝은 보통 경이다. 그렇지만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의 순서로 숫자가 커지고 이어진다는 것을 우린 잘 모른다. 극 다음의 숫자는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 무량대수, 겁으로 숫자로 이어진다. 항하사 숫자는 인도 갠지스강에 있는 모든 모래를 합한 숫자이다. 단위의 마지막 겁은 사방 40리의 성(城)에 겨자씨를 가득 채운 뒤 100년에 한 알씩 꺼내어 그 겨자씨가 다 없어지는 시간을 말한다. 그러니 우리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그런데 요즘 인연을 가장한 순수하지 못한 만남이 성행한다. 혈연, 학연, 지연을 내세워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접근하고 또 교감하는 척한다. 목적이 달성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외면하는 많은 만남을 보아왔다. 물론 골연을 가장한 유사한 일들도 많다. 

골프장에서 잘 나가는 직급에 있을 때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 피드백도 잘 안주도 정작 만나도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그러다 골프장을 그만두면 연락이 온다. 어디 좋은 자리 있으면 소개 좀 부탁한다면서 소중한 인연을 꺼내 든다. 헛웃음이 나온다. 헬렌 켈러의 명언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향수는 본질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좋은 향기를 주고자 하는 것이다. 인연인 것이 나를 위한 관계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변함없는 마음과 사랑이다.

우린 누구나 중심이 되려고 한다. 오히려 가장자리에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의 눈물과 아픔 그리고 행복이 보인다. 높은 자리보다 낮은 자리에 있어야 힘들어하는 사람의 표정을 읽고 손 내밀 수 있다. 중심에 서면 오로지 나만 보일 뿐이다.

꽃에도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품격이 있다. 그러나, 신선하지 못한 향기가 있듯 사람도 마음이 밝지 못하면 자신의 품격을 지키기 어렵다. 썩은 백합꽃은 잡초보다 그 냄새가 고약한 법이라고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기왕에 만난 인연, 더 소중하고 의미 있으면 100년도 못사는 짧은 삶에 얼마나 기쁨이겠는가.

사람은 또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다시는 안 만날 것 같지만 영화처럼 만나게 되고 또 아무리 만나고 싶어 해도 못 만나는 게 인연이다.

유여천리래상회(有緣千里來相會) 인연이 있으면 천리 밖에 떨어져 있어도 만나게 되고 무연대면불상봉(無緣對面不相逢) 인연이 없다면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인연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그 만남과 시간을 의미 있게 부여하고 사용한다면 이보다도 더 강력한 것은 없다. 지금 당장 생각해 보자. 나의 인연은, 나의 골연은 얼마나 강렬했는지. 그 사람의 이름은 누구인지.

글, 이종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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