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배 꼬인 마음도 사르르… 꽈배기, 안 먹곤 못 배기지[이우석의 푸드로지]

2023. 11.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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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꽈배기
기원전 3세기 中 ‘마화’가 기원
지금도 동북지방선 일상식 수준
韓은 광해군 잔치때 즐겼단 기록
갓 튀긴 빵에 설탕·계피 등 뿌려
서민 대표 간식으로 아직도 인기
스페인 추로스·필리핀 샤코이 등
세계 곳곳 비슷한 먹거리 많아
美·日 등에선 ‘K-꽈배기’유명
꽈배기 카페를 표방하는 서울 연남동 ‘꽈페’의 꽈배기들. 알록달록 화려하게 모양을 낸 꽈배기가 해외 유명 브랜드 도넛에 못지않다.

해가 많이 짧아졌는데도 거리를 밝히는 노점이 예전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듯하다. 기억해보면 노점은 겨울에 더 많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군고구마, 군밤, 떡볶이, 오뎅, 붕어빵, 풀빵 등을 파는 노점이 동네마다 있었다. 출출할 때 값싸게 허기를 때울 수 있는 덕에 수많은 ‘노점 메뉴’가 생겨났고 또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는 노점 메뉴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꽈배기다. 그것도 보통 인기가 아니다.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밀가루를 튀겨 설탕을 묻힌 꽈배기는 아예 길거리를 떠나 어엿한 점포 안으로 들어가며 한국인의 대표 간식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

제빵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 중 하나가 바로 꽈배기다. 꽈배기는 빵 이름이면서 일상용어이기도 하다. 표현을 비꼬아 말하는 것, 또는 그런 이들을 부르는 말이다. 배배 꼬인 형상을 이를 때 ‘꽈배기’를 가져다 붙이기도 한다. 이처럼 일상어가 음식 이름으로 쓰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웃기는 짬뽕’이나 ‘이것저것 짬뽕’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이는 고유한 음식 이름이 나중에 비속어 표현으로 바뀐 경우다. 살펴보니 꽈배기는 비속어도 아니다. ‘꽈배기로 일침을 놓았다’는 식으로 썼다. 과거 신문 기사에도 종종 등장할 정도로 일상어로 통했다.

‘시장 꽈배기’의 표준인 영천시장 꽈배기.

유튜브를 찾아보면 외국인들은 한국의 꽈배기(kkwabaegi)로 그대로 읽기도 하고, 설명으론 ‘코리안 트위스티드 도넛(Korean Twisted Donut)’이라 한다. 맞다. 그들의 설명처럼 꽈배기는 도넛의 조리 과정과 흡사하다. 튀긴 다음 설탕을 묻혀 내는 것도 네덜란드계 미국 이민자의 원조 도넛 제조 방식과 똑같다. 빵가루를 입히고 안에 소를 넣는다는 점만 다를 뿐, 고로케(コロッケ)와도 비슷하다. 그래서 꽈배기 전문점에선 도넛과 고로케를 같이 파는 경우가 많다. 같은 기름 솥에서 튀겨낼 수 있으니 함께 취급한다.

도넛은 밀가루 반죽(dough)을 견과(nuts)처럼, 혹은 견과를 넣고 만들어 먹는대서 붙은 이름. 실제 원조 도넛은 고리 모양이 아니라 둥그런 구(球)나 넓적한 원통 모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프랑스 크로켓(croquette)을 얼추 흉내 낸 일본의 고로케가 한국에 와서 꽈배기와 만났다. 아무튼 모양새는 꽈배기가 가장 개성 있고 박력 있다. 연리목처럼 두 가닥이 서로 배배 꼬이며 이어진다. 덕분에 설탕도 잘 품고 있으며 먹기에도 좋다. 튀겨냈지만 빵 자체는 부드럽다. 바삭한 식감보다 존득한 맛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딱이다.

사실 꽈배기는 그 역사가 오래된 음식이다. 멀리 가자면 기원전 3세기 중국에서 비슷한 것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기름에 튀겨낸 밀가루 떡(餠)이 문헌에 전해진다. 보수적으로 생각하자면 중국 회족이 밥처럼 먹는 마화(麻花)가 기원이다. 조선 말에 산둥(山東) 화교들이 대거 입국하며 전해졌다고 하는데, 사실 그 이전에 문화가 이미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광해군 때의 기록도 있다. 조선조의 역사를 기록한 조야집요(朝野輯要)에 광해군이 인조반정 당일에 잔치를 벌이며 마화병(麻花餠)을 먹었다는 기록이다. 광해군이 무엇을 좋아했는지는 관심 없지만 당장 마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밀가루를 꼰 다음 튀겨 만든 마화병’. 우리가 알고 있는 꽈배기와 똑같다.

꽈배기와 비슷한 스페인의 추로스. 튀겨낸 뒤에 설탕을 뿌리는 것까지 닮았다.

지금 중국에서 마화는 노점 간식 정도로 팔리는 대신 비슷한 맛의 유탸오(油條)는 아침 식사로 즐기는 경우가 많다. 유탸오는 송대의 간신인 진회를 증오할 요량으로 백성들이 밀가루를 반죽해 그 몸통을 비틀어 이를 펄펄 끓는 기름 솥에 튀겼다는 기원설이 남아 있다. 한식(寒食)의 기원인 춘추시대 진의 개국공신 개자추(介子推)에 대한 기원설 또한 전해진다. 왕이 개자추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가 숨어든 산에 불을 질렀지만, 결국 개자추는 모친을 끌어안고 죽은 채 발견됐다. 이 모습을 본떠 꽈배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비록 구전이지만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퍽 찜찜한 유래다.)

유탸오는 비틀어 꼰 모양새는 아니지만 원리는 비슷하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동북 지방에선 일상식 수준이다. 중국에선 아침에 콩국인 더우장(豆醬)에 곁들여 먹는 주식이다. 광둥(廣東) 지역에선 죽에다 넣어 먹는다.

꽈배기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만 그 기술에 숙달하자면 어렵다. 비틀며 꼬는 과정이 여간 노련하지 않으면 모양을 잡기도 어렵고 골고루 튀겨지지도 않는다. 굵기가 불규칙하면 익는 온도도 다르고 씹는 식감도 나빠지는 탓이다.

튀긴 꽈배기 위에 설탕과 계피를 뿌리면 완성된다. 이렇게 보면 스페인의 추로스(churros)와 거의 비슷하다. 갓 튀겨낸 추로스에 시나몬 슈거를 잔뜩 뿌리고 아침 식사로 먹는 것도 같다. 그래서 일부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스페인에 전파된 것이라고 주장한다(설마 추로스 공정?).

‘꽈배기의 도넛화’를 지향하는 ‘봉땅’의 꽈배기.

비슷하긴 하다. 차이점을 찾는다면 추로스는 반죽 과정에 우유나 버터를 넣는다는 점과 핫초코를 곁들이거나 초콜릿 시럽을 뿌려 달게 먹는다는 것이다. 생긴 것은 반죽을 길게 늘여 이리저리 빙빙 돌려 만드는 방식이 꽈배기와 비슷한 독일 브레첼(Brezel). 이것은 사실 굽는(bake) 방식이라 앞서 언급한 꽈배기, 유탸오, 추로스 등과는 조리법으로 봐선 완전히 다른 계열의 빵이다.

기름에 튀기는 빵이야 오븐을 갖추지 않아도 되니 쉽게 만들 수 있어 세계 곳곳에 흔하다. 동남아시아 노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필리핀에는 샤코이(syakoy), 비초비초(bicho vicho)라 부르는 정말 꽈배기와 똑같은 음식이 있으며, 베트남에는 심지어 이름마저도 비슷한 바인꽈이(banh quay)라는 폭신폭신한 꽈배기가 있다. 연유에 찍어 먹는 태국 파통고 역시 모양은 H자로 조금 다르지만 꽈배기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

일본에도 찾아보면 비슷한 튀긴 빵이 있지만, 요즘 도쿄(東京) 내 한류 근원지인 신오쿠보(新大久保) 등지에서는 한국식 꽈배기가 인기다. 가격도 최고 100엔(약 900원)부터 과일 등을 토핑해 디저트류로 만든 것은 하나에 400∼500엔 정도로 비싸게 팔린다. 처음엔 ‘한국식 도나쓰’, 또는 트위스트 도나쓰라 부르던 것을 요즘은 ‘콰베기’라 정확한 원이름을 붙인다. 모두가 인정한 ‘K-꽈배기의 탄생’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방망이 모양 한국식 핫도그와 함께 꽈배기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뉴욕과 샌디에이고 등지에 설탕 꽈배기 매장이 속속 들어서고 유럽에서도 한국식 토스트의 인기에 힘입어 푸드트럭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소식이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음식, 그래도 우리 꽈배기가 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니 기분 좋은 일이다.

단맛은 늘 부족하고 설탕이 귀하디귀한 시절, 호주머니 가벼워도 신속히 열량을 보충할 수 있는 꽈배기는 단숨에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노점상을 통해 꽈배기가 널리 퍼지게 된 이유다. 특히 요즘처럼 싸늘한 바람이 드나들 무렵이면 갓 튀긴 따스한 꽈배기 한 개에 한기를 쫓고 허기를 채울 수 있어 든든한 주전부리감으로서 딱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어디서 맛볼까

◇꽈페 = 꽈배기 전문 카페. 만화영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 앙증맞은 꽈배기가 가득한 곳. 알록달록한 무지개 유니콘 모양 등 보석 색깔 토핑에다 티라미수, 솔티드 등 맛도 다양하다. 해외 유명 도넛 가게보다 더 많은 가짓수의 꽈배기를 만날 수 있는 가게다. 커피 맛도 좋아 수많은 가게들이 명멸하는 연남동에서 마니아층을 끌어모은 곳. 서울 수도권과 대구, 광주, 강릉 등 전국 곳곳에 있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46길 20. 2500원부터.

◇자미당 = 식어도 존득한 맛이 살아 있는 본격 찹쌀꽈배기의 정통 레시피를 지켜오는 집이 서울 상암동 인근에 문을 열었다. 특유의 반죽 숙성 비법으로 식감 좋고 고소한 꽈배기를 그때그때 튀겨내서 간식 타임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닭집을 오래 했던 사장이 운영하는 정통 한국식 꽈배기 가게답게 찹쌀 도넛과 핫도그 등 같은 계열의 튀김 메뉴도 함께 판다. 서울 서대문구 수색로138 자미당 가재울점. 꽈배기, 찹쌀도너츠 3개 2500원. 핫도그 1500원.

◇영천시장꽈배기 = 저렴하고 든든한 먹거리 ‘시장 꽈배기’ 집의 전형으로 가장 지명도가 높은 곳. 광장시장과는 달리 주변에 회사나 은행 등이 많아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 영천시장이 뜨면서 다수 미디어에 소개되며 영천시장의 콘텐츠를 채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직접 반죽한 꽈배기를 튀겨 바로 달달한 설탕을 묻혀 낸다. 맛도 가격도 믿어지지 않는다.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 268-5. 3개 1000원.

◇봉땅 = 최근 디저트계의 트렌드인 ‘꽈배기의 도넛화’로 인기를 모으는 집. 토핑과 글레이즈 코팅을 보자면 결코 외국산 도넛에 뒤지지 않는다. 다양한 토핑으로 화려한 색감과 각기 다른 맛을 선보이며 디저트 카페로서 자리매김했다.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41길 42-8. 3000원부터.

◇여누카페 = 제주 조천읍 사려니숲길 인근에서 유명한 수제 꽈배기를 파는 디저트 카페. 꽈배기가 메인은 아니지만 꽈배기 맛집으로 기억하는 충성고객이 많다. 설탕 자체를 얼씬거리지 못하게 한 ‘아주 건강한 꽈배기’를 판다. 찹쌀꽈배기로 존득한 맛이 일품이다. 청귤에이드도 맛있다.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1842.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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