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푸틴 사인이 기념품…대선 앞둔 러, 초대형 박람회서 성과 과시

최인영 2023. 11. 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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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네츠크 등 '새 영토' 4곳 별도 부스…합병 정당성 강조
개장 5일 만에 50만명 방문…"다 보려면 최소 6일 걸려"
푸틴 영상 사진 찍는 어린이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베데엔하(VDNkh) 박람회장에서 열린 '러시아 국제 전시 포럼'의 전시장에서 한 어린이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오는 영상을 사진에 담고 있다. 2023.11.8 abbie@yna.co.kr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북부에 있는 베데엔하(VDNkh) 박람회장은 아침부터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초겨울의 날씨에도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부부, 가이드를 따라 이동하는 단체 관람객 등 다양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 무리의 관람객들은 모스크바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왔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이곳에서 개막한 '러시아 국제 전시 포럼'을 구경하기 위해 몰린 사람들이다.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성과'를 한 자리에 모았다는 이 행사는 내년 4월 12일까지 무료로 열릴 예정이다.

이 박람회가 내년 3월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맞춰 열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월 이 박람회를 개최하라는 법령을 발표했을 때, 재선을 위한 발판 다지기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푸틴 대통령은 내년 재선에 성공하면 2030년까지 권력을 연장할 수 있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지난달 푸틴 대통령이 이 행사 개막식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할 수 있다고 보도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대선 출마를 발표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당시 이 신문은 "이곳에서 전시되는 업적은 곧 푸틴의 업적"이라는 평가가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국제 전시 포럼 정문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8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제 전시 포럼'이 진행 중인 러시아 모스크바 베데엔하(VDNkh) 박람회장 정문. 2023.11.8 abbie@yna.co.kr

소련 시절 농업전시회 개최를 위해 지어진 장소인 만큼 농작물을 들어 올린 남녀 황금 동상이 세워진 정문을 지나가자마자 러시아의 발전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러시아의 성과' 전시관이 나왔다.

터널 모양의 이 전시관은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청소년에게 문화 혜택을 제공하는 '푸시킨 카드',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 시설 등 러시아의 각 분야 업적을 영상으로 보여줬다.

터널 끝부분에서는 '새 영토'를 소개하는 영상이 나왔다. 러시아가 지난해 9월 도네츠크·루한스크(러시아어 루간스크)·자포리자·헤르손 등 우크라이나 내 4개 지역을 새 영토로 합병한 것을 성과로 내세운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이들 지역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박람회 관람객들은 푸틴 대통령과 4개 지역 수장이 손을 맞잡고 축하하는 사진이 영상에 뜨자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 갔다.

러시아의 새 영토들은 '러시아의 지역들' 전시에도 참여했다. 캄차카, 칼리닌그라드, 무르만스크 등 러시아 연방에 속한 모든 지역을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하는 이 전시장은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장소 중 하나로 꼽힌다.

러시아 박람회 도네츠크 부스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베데엔하(VDNkh) 박람회장에서 열린 '러시아 국제 전시 포럼'에 마련된 도네츠크 홍보 부스. 도네츠크의 러시아 합병 정당성을 강조하는 문구들이 곳곳에 적혀 있다. 2023.11.8 abbie@yna.co.kr

도네츠크 부스에서는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제목의 영상을 상영하며 러시아의 새 영토 편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돈바스와 러시아는 영원히 함께한다', '러시아로 돌아온 돈바스는 부흥을 시작했다' 등 글귀도 부스 곳곳에 적혀 있었다.

도네츠크 부스 안내원인 안나는 "도네츠크는 석탄과 광업이 유명한 도시"라며 "러시아로 돌아간(합병된) 이후 광산과 공장이 다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네츠크에서 자랐다는 그는 남자친구가 '특별군사작전'에 참전 중이라고 덧붙였다.

루한스크 부스에서는 공업도시를 상징하는 '톱니바퀴' 모형을 배경으로 러시아 합병을 결정하는 주민투표 영상을 틀었다.

자포리자 부스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베데엔하(VDNkh) 박람회장에서 열린 '러시아 국제 전시 포럼'에 마련된 자포리자 홍보 부스. 자포리자 원전 상징물이 걸려 있다. 2023.11.8 abbie@yna.co.kr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교전으로 원전 안전 문제가 제기되는 자포리자 부스에는 원자력 발전소 모형이 설치돼 있었다. 헤르손 부스는 주요 관광지를 증강현실(AR) 기술로 홍보했다. 2014년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 부스도 마련돼 있었다.

'러시아의 지역들' 전시장 2층 프레스 센터에는 박람회의 로고 등이 그려진 모자, 브로치, 연필, 머그잔, 각종 의류 등 기념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눈에 띄는 기념품은 푸틴 대통령의 사인이 담긴 티셔츠와 야구모자다. 파란색 티셔츠에 '러시아의 국경은 어디에서도 끝나지 않는다'라는 푸틴 대통령의 '명언'과 함께 사인이 그려져 있다.

푸틴 사인 티셔츠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베데엔하(VDNkh) 박람회장에서 열린 '러시아 국제 전시 포럼'에 전시된 푸틴 사인 티셔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남긴 말과 사인이 담겨 있다. 2023.11.8 abbie@yna.co.kr

푸틴 대통령 사인 기념품은 이 박람회가 대선에 맞춰 그의 업적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는 듯했다.

러시아 연방 각 지역 외에도 러시아의 역사, 문화, 금융, 우주,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를 주제로 한 전시들이 '축구장 444개' 크기로 알려진 VDNkh 부지를 가득 채웠다.

세르게이 키리옌코 대통령 행정실 제1 부실장은 "전체 전시를 관람하려면 최소 6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문제 등으로 서방과 대립하고 있고 각종 제재로 경제 활동에 제약받고 있지만, 이 박람회장 안에서는 발전과 성장을 거듭한 나라로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발렌티나 마트비엔코 러시아 상원의장은 박람회 포럼에서 "우리나라를 고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개막 5일간 관람객 5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러시아 국민도 박람회 취지에 호응하고 있다.

푸틴 사인 모자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베데엔하(VDNkh) 박람회장에서 열린 '러시아 국제 전시 포럼'에 전시된 푸틴 사인 모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인이 담겨 있다. 2023.11.8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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