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계약직은 차별이 아니라지만[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28)

2023. 11. 9. 07: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노동법은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①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②국적 ③신앙 또는 ④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 대우를 하지 못합니다(근로기준법 제6조 ‘균등한 처우’).

노동자의 성별, 국적, 신앙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한다는 말은 그래도 명확합니다. 특히 고용상 성차별은 남녀고용평등법에서 구체적으로 성별, 혼인, 임신 또는 출산 등의 사유로 채용 또는 불리한 조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관련해 최근 성비 채용차별 사건이 문제 됐습니다. 정규직 신입사원 공개 채용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를 떨어뜨리고 남성 지원자를 합격시키는 등 미리 정해둔 성비에 따라 지원자를 채용한 카드회사와 은행들의 인사담당자들이 각각 유죄 판결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고용상 성차별은 형사처벌까지 하며 금지하고 있는 쟁점입니다.

어느 국내 항공사는 내부규정에서 ‘내국인’ 운항승무원의 경우 수염을 기를 수 없게 했지만, ‘외국인’ 운항승무원은 콧수염만을 허용하도록 규정했습니다. 항공사는 턱수염을 기른 A(운항 기장)에게 턱수염을 기르지 말 것을 지시했습니다. A는 이 규정이 차별적이라고 주장하며 지시를 거부했습니다. 회사는 A의 반응에 따라 그의 비행업무를 일시 정지시켰습니다. 법원은 ‘내부규정은 국적을 기준으로 내국인과 외국인 직원을 차별하며, 헌법 제11조(평등권) 및 근로기준법 제6조의 평등원칙에 위배된다. 내국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며,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판결했습니다(서울고법 2016누50206 판결, 비록 대법원의 판결 이유는 달랐지만, 법원에서 내국인 국적 차별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드문 사례입니다).

신앙에 따른 차별과 관련한 차별 사건은 채용과 관련해 발견됩니다. 인권위원회는 종교의 이념과 무관한 학과 교수 채용 관련 세례기독교인을 요구한 사례에서 고용차별(05진차345)과 종립학교에서 일률적으로 모든 교원의 지원자격을 교회의 세례교인으로 제한하는 행위를 한 사례에서 고용차별(18진정0830800)을 각각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성별, 국적, 신앙 차별 사례들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노동법상 ‘사회적 신분’의 모호함

그런데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금지’가 무엇인지는 생각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사회적 신분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는 헌법에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회적 신분에 의해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제11조 제1항)고 나옵니다. 하지만 노동법학계에서 어떤 지위 내지 자격이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합니다.

노동법상 사회적 신분은 주로 ‘고용형태’,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약직에는 ①2년 이내의 기간제 계약직과 ②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무기계약직)가 있습니다. 이중에 ①기간제 계약직 근로자는 기간제에 규정된 차별시정 구제신청제도(노동위원회)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②무기계약직 근로자는 동종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대우를 받더라도 ‘차별시정신청권’이 없습니다(대법원 2013다1051도 “기간제근로자의 신분이 아니었으므로” 기간제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그러나 차별시정제도의 대상이 아닌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업무를 함께 수행하고 있는 정규직 또는 공무원과 일상적으로 비교하면서 차별로 인한 좌절과 절망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정부 정책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많은 노동자가 민사소송(임금 또는 손해배상청구)을 통해 고용형태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소송들은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느냐’ 여부가 쟁점입니다. 고용형태에 대한 사회적 신분을 부정한 판결로는 ▲일반직업상담원이라는 근로자의 지위(서울고법 2017나2039724) ▲사무직 근로자의 정년과 기술직 근로자(서울행정법원 2010구합2203) ▲서울 지역에 근무하는 근로자와 청주 지역에 근무하는 근로자(청주지법 2014가합1338) 등이 있습니다. 반대로 사회적 신분을 인정한 판결은 ▲정규직과 실제로 동일한 업무를 하는 무기계약직(업무직·연봉직) 전환 근로자(서울남부지법 2014가합3505) ▲기능직 공무원과 동일·동종 업무를 수행하는 무기계약직(서울중앙지법 2017가합507736) ▲정규교원과 기간제교원(서울중앙지법 2019가합579124) 등이 있습니다.

무기계약직은 신분이 아니지만, 맞을 수도

위와 같은 결의 임금 사건인데, 원고인 노동자들은 국토교통부 국도관리원으로서 무기계약직(공무직)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공무원과 공무직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공무원에게는 정근수당, 성과상여금, 가족수당, 직급보조비, 출장여비 등 여러 가지 수당이 지급되는 반면, 무기계약직인 공무직 노동자들은 수당을 받지 못했습니다.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이런 차별이 헌법상 평등원칙과 근로기준법 제6조 위반이라며 각 수당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국가에 청구했습니다.

대법원은 최근 드디어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렸습니다(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6다255941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다수의견(7인)은 개별 근로계약에 따른 무기계약직의 지위는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차별 사유인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봤습니다. 무기계약직과 공무원은 의무와 보수의 성격, 업무 변경 가능성, 근무조건 결정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고, (양자를)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 집단으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국가공무원 제도의 특수성 때문에 양자가 적절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상 지위는 자신의 의사나 능력 발휘에 의해 쉽게 회피할 수 없고 ▲한번 취득하면 장기간 점하게 되는 성격을 지니는 점 ▲공무직 근로자에 대한 열악한 근로조건과 낮은 사회적 평가가 고착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춰보면,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는 반대의견이 있습니다(대법관 5인). 일단 사회적 신분은 인정하고 차별의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자는 별개 의견도 있습니다(대법관 1인). 61쪽의 긴 판결문에는 다른 의견에 대해 노동법적 인식의 빈곤함이 매우 안타깝다는 등 대법관끼리 벌인 격한 토론이 들어 있습니다.

다만 다수의견은 무기계약직의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은 아니고, “공무원과의 관계에서만의 판단”이라는 한발 물러선 의견을 특별히 추가했습니다. 즉 무기계약직은 공무원과의 관계에서는 사회적 신분이 아니지만, 공공기관·사기업에서는 맞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무기계약직 차별이 크게 문제 되고 있는 현 상황에도 불구하고, 무기직에 대한 입법적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법원의 적극적 해석이 요구됩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lawyer_han@naver.com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