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eople] 이해인 수녀 "평상심이 道…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세요"

정주원 2023. 11. 8. 12: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8년 만에 새 시집 '햇빛 일기'…위로 필요한 아픈 이들에 헌정

(서울=연합뉴스) 정주원 기자 = "순간순간 새롭고 기쁘게 고맙게, 이승의 삶이 그리 길지 않게 남아있는 순례자로서 마무리를 선하고 아름답게 하고 싶어요."

수도자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78) 수녀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8년 만에 신작을 담은 시집 '이해인의 햇빛 일기'(이하 햇빛 일기)가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달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출간 기념 사인회도 열었다.

얼마 전 시인이 생활하고 있는 부산 광안리 수녀원 앞에서 우연히 자신의 시를 읽고 있던 독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서울 사인회에도 왔더라며 즐거워한다. 7일 이메일로 만난 시인은 가을로 접어들면서 글을 보내 달라는 요청이 잦아져 '항상 숙제가 많은 학생' 같다면서도 답장에는 여유와 편안함이 깃들어있었다.

지난달 22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열린 출간 기념 사인회에 참석한 이해인 수녀 [출판사 열림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시작으로 그가 쓴 시와 산문들은 '치유 시인', '위로 시인'이라는 별명을 안겨줬다. 자신 역시 15년 넘게 암과 싸우고 있는 동병상련이었을까. '햇빛 일기'에도 '작은 위로가 필요한 아픈 이들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들을 글로라도 달래주고 싶은 마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를 지었다. 같은 수도공동체 안에도 몸과 마음이 고달픈 이들이 많아, 그들에게 가장 먼저 읽히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달과 달빛을 좋아해 달에 대한 시들도 많이 썼지만, 환자가 되고 나선 해와 햇빛에 대한 묵상을 주로 하게 됐다"고 회고한다. 수녀원 내 작업실에 유난히 해가 잘 드는 것도 한몫했다. 유난히 추웠던 날 햇빛 한줄기의 따스함을 느끼고 생명을 떠올리며 적은 메모들은 한 편의 시가 되곤 했다.

긴 투병 생활 중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죽음의 순간'(시 '아픈 근황'에서)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시인은 '식혜 한잔과 세계지도 한 장, 짝이 맞는 병과 병뚜껑'(시 '행복한 근황'에서)에도 고마움을 노래한다.

수술과 항암 치료 때문에 입원했을 당시, 병상에서 지켜본 주변인들의 단상도 '환자의 기도','간병인의 기도','의사의 기도'로 재탄생했다. 병원에서 강의할 때 이들에게 낭송을 부탁하면 진지한 모습으로 때론 눈물까지 보이며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한다. 단편적으로나마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다는 게 시인의 설명이다.

노년의 신체 변화 또한 시인 특유의 '뒤집어보기'를 거치니 '새롭고 재미있게' 여겨졌다. 이번 시집에서 그가 '최애'로 꼽는 시 '내 몸의 사계절'은 '마음에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몸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발상이 스스로도 놀라워 자랑삼아 지인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단다.

'엄마'를 주제로 한 시집을 따로 낼 정도로 시를 통해 어머니를 자주 언급했던 시인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멈출 수 없다"고 털어놨다. '모습을 달리한 성모님','또 한 분의 하느님 또는 구원자', '늘 동행하며 도와주는 수호천사' 같은 느낌도 받는다고 한다. 돌아가신 후에도 꿈속에서 과거 함께 살았던 집 등 추억의 장소에 자주 나타난다니, 그 그리움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신간 '이해인의 햇빛 일기'를 출간한 이해인 수녀 [출판사 열림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렇게 구절구절 고운 시를 쓰는 시인도 자주는 아니지만 더러 노여움이 찾아올 때가 있다고 한다. 자신이 쓰지도 않은 글 수십 개가 '이해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가고, 수정은커녕 점점 그 분량이 불어나는 상황을 발견할 때가 대표적이다. 터무니없는 악플과 오해를 받거나 동료들과 의견 차이로 인해 성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는다고 한다. "화를 내면 삶의 리듬이 깨지고 평화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정신적 지주'로 살아간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일 터, 시인은 '평상심이 바로 도'라는 뜻의 불교 경구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소개하며 답을 대신했다. 삶이 힘들어도 '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의미에서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한결같았다. 오늘 이 시간이 내 남은 날들의 첫날임을 인식하고 선물로 받아안으라는 것, 최선을 다해 일상의 도를 닦는 여행자가 되라는 것이다. 틈틈이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찾아 읽으며, 햇빛 한줄기 같은 위로를 누군가에게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시인의 소망이다.

내달 16일 교보문고 부산점에서는 올해 마지막 '햇빛 일기' 저자 사인회가 진행된다.

jwc@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