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손지오름] 한라산의 손자뻘 억새가 은하수처럼 빛난다

이승태 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 2023. 11. 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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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찾기 어렵지만 제주 대표하는 명품 억새 오름
억새가 활짝 핀 가을날의 손지오름. 눈부신 억새의 향연이다.

가을 멋쟁이! 바람결에 은빛으로 춤추는 억새의 계절이다. 전국에서 억새로 유명한 곳이야 많지만 제주도만큼 억새가 잘 어울리는 곳을 본 적이 없다. 밭두렁과 길섶, 뱅듸(너른 들판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 숲 가장자리 등 딱히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라는 억새는 제주도의 가을을 대표할 만큼 눈부시며 인상적인 풍광을 펼쳐놓는다. 특히 부드러운 능선이 많은 제주의 오름은 억새와 찰떡궁합이다.

한라산을 닮은 한라산의 손자

여름이 물러가면 제주는 억새와 단풍이 눈부신 짧은 가을로 접어든다. 한라산이 만산홍엽으로 몸살을 앓는 사이, 들녘과 오름은 억새의 은빛에 물들어 가는 것이다.

1,000m대 봉우리 일곱 개를 품은 고산평원 영남알프스와 경남 창녕의 화왕산, 전남 장흥의 천관산, 경기도 포천의 명성산과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등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억새 명소가 수두룩하지만, 제주도야말로 가을이면 섬 전체가 억새로 뒤덮인다. 검붉은 화산토에 뿌리를 내린 제주 억새에 바람이 불어 억새꽃이 피면 비로소 제주의 가을이 시작된다. 억새꽃은 뱅듸로, 오름으로 번져가며 가을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능선을 따라 은하수가 흐르는 듯, 억새가 만발했다.

제주 서쪽의 새별오름과 노꼬메오름, 동쪽의 따라비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은 손꼽히는 억새 명소다. 사실 가을에는 제주 어디서라도 억새가 장관이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길가에 핀 억새 때문에 차를 세우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10월부터 오름 전체가 억새꽃으로 뒤덮이는 손지오름은 제주 억새의 본거지쯤 되는 곳이다. 그래서 다른 계절엔 찾는 이가 없어서 수풀만 무성하다가도 가을엔 그 사이로 길이 생긴다.

손지오름은 외형이 한라산을 닮아 한라산의 손자(제주 방언 '손지')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아무리 봐도 한라산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자로는 孫子峰손자봉, 孫岳손악, 孫枝岳손지악 등으로 적는다.

손지오름은 동쪽 능선과 북쪽 사면에 걸쳐 삼나무가 한 줄로 늘어서 있어서 눈길을 끈다. 이 모습은 북쪽의 다랑쉬오름 능선에서 잘 보이는데, 그 형태가 X자형 펜던트나 구소련 국기의 낫과 망치 문양을 떠올리게 한다. 삼나무 아래론 녹슨 철조망도 쳐 있어서 한때 이곳이 방목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이 삼나무는 울타리로 심었을 터다.

서쪽 능선에서 본 높은오름(왼쪽)과 동검은이오름. 그 사이로 한라산이 실루엣을 드러냈다.

들머리 찾기에 주의해야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 억새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 손지오름이다. 이 삼나무 울타리 외에 오름은 온통 억새 천지. 그러나 능선을 따라 난 길이 희미하고, 억새 사이로 가시덤불이 섞여 자라는 등 탐방 환경이 쾌적하지 못해 찾는 이는 드물다.

손지오름은 오름 표석이 탐방로 입구가 아닌 엉뚱한 곳에 서 있다. 그래서 손지오름이 초행인 경우, 들머리 찾기에 애를 먹는 이가 적지 않다. 제주 현무암으로 만든 거대한 오름 표석은 오름의 북쪽을 지나는 중산간동로 변에 서 있다.

그러나 이 일대에선 오름으로 접근할 수 없다. 오름 들머리는 여기서 중산간동로를 따라 수산리 쪽으로 600m쯤 더 간 오름의 동쪽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오름 입구임을 알려주는, 이렇다 할 표식이 없으니 눈으로 확인하고 지형을 살펴 올라야 한다. 211번과 212번 버스 정류장이 입구 가까이에 있다.

동검은이오름 쪽에서 본 손지오름(맨앞)과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오른쪽 멀리 지미봉과 두산봉, 우도도 보인다.

길은 무척 단순하다. 들머리에서 완만한 사면을 따라 능선까지 오른 후 굼부리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그후 올랐던 길을 따라 내려서면 된다. 그런데, 탐방로가 마련된 오름이 아니어서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찾는 이가 많은 가을엔 비교적 또렷한 길이 생기지만, 봄부터 여름이 다 지날 때까지는 풀숲이 우거져 탐방이 쉽지 않다. 또 억새 사이사이 찔레 덤불이 많아서 여름이라도 긴 바지와 긴 소매 복장을 갖추는 게 좋다.

들머리에서 능선을 향해 오르다가 뒤돌아서서 조망하는 풍광이 압권이다. 용눈이와 다랑쉬, 아끈다랑쉬오름이 그야말로 멋지게 펼쳐진다. 그 사이로 종달리의 지미봉과, 우도, 성산일출봉, 두산봉도 가늠된다.

손지오름을 찾아 제주 가을의 호사를 누리는 탐방객들.

은하수가 내려앉은 듯한 가을 오름

화구벽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은 완만하게 이어지는 3개의 봉우리를 지난다. 봉우리마다 더없이 좋은 전망대여서 송당리의 여러 오름을 멋지게 감상할 수 있다. 굼부리 안, 높이가 조금씩 다른 세 개의 구덩이는 그대로 억새의 바다다. 바람이라도 불면 이곳은 파도치듯 일렁이는 은빛 억새로 눈부신 마법의 공간이 된다. 그럴 때면 은하수를 건너는 사공이 된 듯한 느낌도 든다.

오름의 서쪽 능선에서는 동검은이오름과 높은오름이 잘 보인다. 그 사이로 모습을 보여 주는 한라산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검은이오름은 수많은 알오름을 거느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큰 무덤 같은 동글동글한 알오름을 오르내리며 목장의 소 떼가 풀을 뜯는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제주와 참 잘 어울린다.

은하수가 내려앉은 듯한 가을날의 손지오름. 이곳은 그야말로 억새의 바다다.

교통

내비게이션에 '손지오름' 입력. 제주버스터미널에서 성산항을 오가는 211번, 212번 버스가 손지오름 입구에 선다. 오름의 북쪽, 중산간동로 변에 커다란 오름 표석이 있지만, 들머리는 여기서 수산리 쪽으로 600m쯤 내려서야 한다.

주변 볼거리

비자림

2,800그루쯤의 비자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 비자림이 가깝다. 잎 모양이 '非비'자를 닮아 붙은 이름으로, 해충을 쫓는 효과가 있어서 비자림엔 모기가 없다. 숲을 걷노라면 은은한 향이 좋고 몸의 피로가 빨리 회복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유모차와 휠체어도 탐방이 가능할 만큼 길이 순하다.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넉넉잡고 1시간쯤 걸린다. 문의 064-710-7912.

비자림의 새천년비자나무.

송당나무

구좌읍 송당리의 외진 곳에 있는 '송당나무(010-9364-2819)'는 카페이며 꽃집이다. 꽃집에서 차를 판다.

커피가 향기롭고 차와 케이크가 맛있다. '포트 티라미슈'를 추천한다. 티라미슈가 담겨 나오는 바깥 그릇이 독일산 토분이다. 여기에 여름엔 선인장을, 겨울엔 튤립 구근을 심어 선물로 준다. 돌아가서도 이곳을 잊지 말아 달라는 주인장의 마음이다. 겨울이라면 직접 담근 각종 청으로 만든 과일차도 좋다.

송당나무

맛집

가까운 송당리의 로타리식당(0507-1321-2788)이 먹을 만하다. 허름한 외관이지만 주변에서 일하는 인부들 대부분이 이용하는 곳일 만큼 딱 집밥 식단이다. 점심때면 자리 잡기가 힘들 정도. 정식 9,000원, 라면과 짜파게티 4,000원. 예약은 불가.

로타리식당 정식 상차림.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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