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우뚝 선 평화의 붉은 문… 아기자기한 복고 감성 소도시

최흥수 2023. 11. 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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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시마현 이쓰쿠시마 신사와 오노미치
바다 위 모래갯벌에 세워진 히로시마현 이쓰쿠시마 신사 도리이. 이쓰쿠시마 신사는 오래전부터 세토 내해를 항해하는 상인과 어민이 안전과 평화를 기원하던 곳이다.

히로시마,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참화를 겪은 이 도시는 그래서 세계 어느 곳보다 절절하게 ‘평화’를 외친다. 시내 중심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앞 도로는 ‘평화의 길’, 공원 앞 수로를 건너는 다리는 ‘평화대교’다. 공원 내부는 말할 것도 없다. 대표 건물인 평화기념자료관을 시작으로 평화의 샘, 평화의 종, 평화의 관음상, 평화의 시계탑 등 조그마한 시설물까지 온통 ‘평화’의 이름표를 달고 있다.


그럼에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가야 하는 이유

“갑자기 눈이 캄캄해질 정도의 번갯불 같은 섬광이 비쳤다. 퍼뜩 머리를 숙이기도 전에 곧 폭풍이 몰려와 유리가 박살이 나며 튀었고, 그 파편이 이마에 박혔다. 피가 흘러서 눈으로 들어갔다.”(제국사령부 육군부 선박사령부 우다 미치타카)

“거울 파편을 주워 얼굴을 비추어 보았을 때의 경악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거울에 비친 것은 내 얼굴이 아니라 붉게 짓무르고 엉겨 붙은 용암 같은 살덩어리였다. 그 순간, 이 땅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을 만큼 몸이 움츠러들고 말았다.” (히로시마 제1중학교 나카야마 시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희생자 추모 제단 구조물 위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다.
히로시마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 아카이브에 원폭 투하 후 폐허가 된 시내 풍경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국립 히로시마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의 아카이브는 1945년 8월 6일 그날의 참극과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을 모니터를 통해 한국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로 전하고 있다. “난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고백처럼 일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의 비극을 마치 어제 일인 양 생생하게, 그러나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보는 한국인의 속내는 복잡하고 불편하다. 전쟁 피해국 일본의 비극은 넘쳐나지만, 침략국 일본이 이웃 국가와 국민에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한 반성은 찾아보기 힘든 까닭이다. 그래서 평화를 갈구하는 무수한 외침은 가슴 깊은 곳에 닿지 못하고 허공을 맴돈다.

그럼에도 히로시마에 간다면 평화기념공원은 꼭 들러야 한다. 그곳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기 때문이다. 위령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히로시마에는 약 10만 명의 한국인이 군인, 군속, 징용공, 동원 학도, 일반 시민으로서 살고 있었다. 1945년 8월 6일의 원폭 투하로 인해 2만여 명의 한국인이 순식간에 소중한 목숨을 빼앗겼다"고 증언한다. 히로시마시 20만 희생자 수의 10%에 달하는 숫자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세워진 평화의 시계탑. 의도와 달리 언뜻 원자폭탄을 연상시키는 모양이어서 당혹스럽다.

1970년 4월 10일 세운 위령비는 “비참한 죽음을 강요당한 영혼들을 편히 잠들게 하고 원폭의 참사를 두 번 다시 되풀이 않기를 희구하면서 평화의 땅 히로시마의 일각에 이 비를 건립했다”는 취지와 “고향산천을 그리면서 이국 땅에서 폭사한 혼령들을 위로함은 말할 것도 없고 아직까지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인 피해자의 현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하루라도 빨리 양심 있는 지원이 실현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는 희망을 함께 적었다. 비를 세운 지 53년이 흘렀지만, 그 문구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서 동쪽 수로 건너에 이 공원의 상징 ‘히로시마 원폭돔’이 앙상한 지붕을 드러내고 있다. 체코 건축가 얀 레첼의 설계로 1915년 완성한 히로시마현 물산진열관 건물이다. 그날 오전 8시 15분 미군의 B29 폭격기가 투하한 원자폭탄은 이 건물 동남쪽 약 160m 지점 600m 상공에서 폭발했다. 위에서 거의 수직으로 폭풍을 맞았기 때문에 건물 외벽 일부는 파괴를 면했고, 최상부의 철골도 남아 ‘원폭돔’으로 불린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상징물 원폭돔 위로 비둘기가 날고 있다. 1915년 물산진열관으로 세운 건물이다.

철거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1966년 히로시마 시의회는 보존하기로 결정했고, 1996년 12월 원폭돔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된 핵무기의 참화를 전하는 증거로, 또 핵무기 근절과 평화의 소중함을 호소하는 기념비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다. 바로 뒤편 오리즈루타워 건물 루프톱바에 오르면 원폭돔과 평화기념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바다의 평화 기원, 이쓰쿠시마 신사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또 다른 명소를 꼽자면 이쓰쿠시마 신사다. 시내 중심부에서 전철로 약 40분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10여 분이면 닿는 미야지마섬에 있다. 평화기념공원이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장소라면, 이쓰쿠시마 신사는 오래전부터 바다의 평화를 염원하는 곳이었다.

신사에서 160m 떨어진 바다 위에 세워진 도리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관광 명소다. 도리이는 신사로 통하는 문으로 신의 영역과 속세의 경계를 나타낸다. 한국의 사찰로 치면 산문이나 마찬가지다. 도리이는 주로 붉은색을 띤다.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고 악귀를 쫓는 힘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1기를 세우지만 여러 도리이가 줄지어 있는 신사도 드물지 않다.

히로시마현 이쓰쿠시마 신사의 대 도리이. 물이 차면 아랫부분이 잠겨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쓰쿠시마 신사가 있는 미야지마섬까지는 2개 선사가 각 15분 간격으로 유람선을 운항한다.

이쓰쿠시마 신사의 대 도리이는 높이 16m, 무게는 60톤에 달한다. 언뜻 모래갯벌에 박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 무게만으로 버티고 있는 구조라고 한다. 도리이가 세워진 곳은 일본 혼슈와 시코쿠 사이 바다인 세토 내해(瀬戸内海). 조수 간만의 차이가 커 밀물 때면 어른 키를 훌쩍 넘길 만큼 물이 차는데 이때는 구조물 자체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푸른 바다와 주홍색 나무 기둥의 대비가 더욱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썰물 때면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물이 빠져 관광객들이 기둥 바로 아래까지 가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도리이가 세워진 건 약 140년 전이지만, 이츠쿠시마 신사의 역사는 1,400년에 이른다. 593년 처음 세웠고, 1571년 본당을 개조하고 아치형 다리를 재건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도리이와 마찬가지로 신사 건물 역시 물 위에 세워진 구조다. 오래전부터 지도층뿐만 아니라 세토 내해를 오가는 어부와 상인들이 안전을 기원하는 곳이었다.

이쓰쿠시마 신사는 오래전부터 바다를 오가는 어부들이 안전을 기원하는 곳이었다. 입구에 '국보' 현판이 선명하다.
관광객이 이쓰쿠시마 신사에서 도리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미야지마섬에 내리면 사슴이 졸졸 따라붙는다. 먹이를 주지 말라 하지만 이미 관광객의 습성에 익숙해진 듯하다.

이쓰쿠시마 신사로 들어가려면 미야지마 입구 페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한다. ‘JR서일본 미야지마 페리’와 ‘미야지마 마츠 대기선’이 약 15분 간격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거의 기다리는 시간 없이 갈 수 있다. 목적지는 같지만 되도록 ‘JR서일본 미야지마 페리’를 탈 것을 추천한다. 도리이 근처로 선회하기 때문에 좀 더 가까이서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다.

미야지마 선착장에서 신사까지는 약 2km,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귀여운 사슴이 졸졸 따라붙는다. 안내서는 먹이를 주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500마리나 되는 이 섬의 사슴들은 이미 호기심 어린 관광객이 그냥은 지나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 해안도로에서 한 블록 안쪽으로 나란히 상가가 이어진다. 갖가지 지역 먹거리와 간식을 맛볼 수 있고 기념품을 살 수 있다.


소도시 감성 오노미치와 일본특별명승 산단쿄(三段狹)

히로시마에서 기차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오노미치(尾道)시는 일본인 사이에도 이름난 소도시 여행지다. 중세에 개항한 이래 사람과 물자가 모여드는 항구로, 도심 뒤편 낮은 언덕에 오르면 강처럼 흐르는 좁은 바다 물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자리 잡은 건물이 만화처럼 내려다보인다.

언덕을 빙 둘러가며 센코지(千光寺)를 비롯해 사이코쿠지, 죠도오지, 사이고오지, 텐네이지 등 수많은 사찰과 신사가 터를 잡았고, 좁은 골목을 따라 작은 정원과 저택이 고풍스러운 모습을 더한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에는 ‘고양이 통로’라는 별칭이 붙었다. 언덕을 오르는 행위 자체가 역사 탐방이자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다.

오노미치는 일본에서도 인기 있는 소도시 여행지다. 복고풍 케이블카가 센코지공원으로 오르고 있다.
센코지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좁은 수로와 오노미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오노미치 센코지공원 주변에 수많은 사찰과 신사가 터를 잡고 있다. 한 신사 마당에 뿌리 내린 녹나무가 신령스러움을 자아낸다.
오노미치 상가에서 센코지공원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으로 기찻길이 놓여 있다.

대표 사찰의 이름을 딴 센코지정원 정상에는 나선형의 낮은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바로 아래 오노미치 도심이 미니어처처럼 보이고, 섬 사이에 좁은 수로가 길쭉하게 연결된다. 섬에 막혀 호수처럼 잔잔한 한국의 통영이나 목포 내해와 비슷하다. 높이가 얼마 되지 않는데도 언덕 아래에서 케이블카(센코지 로프웨이)가 연결돼 있다. 케이블카로 올랐다가 걸어서 내려오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철길을 중심으로 분리된 오노미치 상가도 고풍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제법 넓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낡은 듯하면도 깔끔한 작은 가게들이 소도시 감성을 자극한다.

히로시마 시내에서 렌터카로 약 1시간가량 걸리는 산단쿄는 지역의 숨겨진 명소다. 이미 100여 년 전 일본특별명승에 지정됐고 일본 100경, 삼림욕 숲 100선, 일본 단풍명소 100선 등에도 이름이 올라있다.

해발 1,200m 안팎의 산줄기에서 흘러내린 계곡과 숲이 어우러진 산단쿄 트레킹 코스는 전체 16km에 이른다. 당일 여행자는 보통 입구에서 약 2.7km 상류 구로부치(黑淵)까지 왕복한다. 약 2시간을 잡는다. 구로부치는 검은 연못이라는 뜻이다. 계곡 양쪽에 100m 높이의 절벽이 솟아 있고, 그 사이에 검푸르게 물이 고여 뱃놀이를 즐길 수 있는 지형이다.

일본특별명승 히로시마 산단쿄(삼단협) 입구 마을 풍경. 삼나무숲으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히로시마의 숨은 명소 산단쿄 탐방로. 오솔길처럼 좁지만 모두 시멘트로 포장돼 있다.
히로시마의 숨은 명소 산단쿄 협곡은 수많은 폭포와 소를 품고 있다.

탐방로는 계단이 거의 없고 오솔길처럼 좁지만 말끔하게 시멘트로 포장돼 있다. 이곳까지 가는 도중에도 아기자기한 폭포와 소(沼)가 수도 없이 많아 청아한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입구의 삼나무숲도 일본에선 흔한 풍광이지만 한국인에게는 이국적이고 신비롭게 보인다.

일본 소도시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항공편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제주항공이 인천공항에서 히로시마를 비롯해 마쓰야마, 시즈오카에 매일, 오이타에 주 3회 단독 운항하고 있다.

일본 히로시마현 주요 관광지. 그래픽=송정근 기자

히로시마=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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