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데이트하던 곳인데"…상봉터미널 역사 속으로[현장]

박광온 기자 2023. 11. 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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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 중랑구 상봉터미널 폐쇄
1985년 개장 후 이용객 계속 감소
"하루 이용객 20명 미만…운영 불가"
시민들 "역사 한 페이지 넘어가는 듯"
새 주상복합 건물 기대된다는 입장도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오는 30일 운영 종료 예정인 서울시 중랑구 상봉터미널에 운영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사진은 지난 6일 상봉터미널에 붙어 있는 안내문. 2023.11.06. kmn@newsis.com


[서울=뉴시스]박광온 기자 = 서울 상봉터미널이 오는 30일을 끝으로 운영을 종료한다. 계속된 이용객 감소로 운영 적자가 커진 탓이다.

시민들은 38년의 역사를 가진 터미널 폐쇄에 아쉬움을 보이거나, 새로 들어설 상업·문화 시설에 기대감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7일 오전 11시 서울 중랑구 상봉2동에 있는 상봉터미널 1층엔 대부분 불이 꺼진 채 같은 층의 자동차운전면허 연습장을 찾은 이들의 발걸음만 이어지고 있었다.

터미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용 고객은 보이지 않았고, 입구엔 '상봉터미널 폐업 및 임시정류장 안내'라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안내문엔 "최근 하루 이용객이 20명 미만까지 감소해 더 이상 터미널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며 "이에 따라 2023년 11월30일 상봉터미널의 운영을 종료하게 됐다"고 적혀 있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터미널 매표소 입구로 내려가자 불은 꺼진 채 적막함만이 가득했다. 매표소는 문이 닫혀 있었고, 그 옆에 있는 자동 발권기엔 원주행 버스표만 판매되고 있었다. 다른 한쪽으로는 셔터가 내려진 채 닫혀 있는 매점과 텅 빈 대합실만 덩그러니 자리했다.

상봉터미널 폐쇄 안내문을 한참 쳐다보던 이모(68)씨는 "90년대 초반에 남편과 데이트할 때 자주 이용했던 곳"이라며 "소중한 기억이 서려 있는 곳인데 그런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다는 게 참 슬프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광온 기자 = 7일 오전 11시 서울 중랑구 상봉터미널엔 텅 빈 대합실과 문을 닫은 매점만 남아있었다. 2023.11.07. lighton@newsis.com


상봉터미널 운영사인 신아주 측에 따르면, 지난 1985년 9월2일 개장한 상봉터미널은 80년대 후반만 해도 하루 최대 2만여명의 이용객이 오갔다. 그러다 1990년 동서울터미널 개장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신아주 관계자는 "상봉터미널과 노선이 거의 비슷하면서도 대중교통 이용도 더 용이한 동서울터미널이 생긴 후 상봉터미널 이용객은 급감했다"며 "지금은 하루 이용객이 20명도 안된다"고 전했다.

이용객이 계속 줄어들자 신아주 측은 1층에 있던 터미널 매표소를 지하 1층으로 옮겼고, 기존 1층은 중고차 매장과 자동차운전면허 연습장 등에 임대를 내주기도 했다.

신아주 관계자는 "터미널은 개별 사업자 운영 체제라 적자가 나도 국가에서 지원받지 못한다"라며 "지하철의 경우 적자가 나면 세금으로 메꾸지만, 우리처럼 터미널을 운영하는 개별 사업 법인들은 100억이 적자 나도 사업자가 그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경영난에 시달리던 신아주는 지난 2004년 서울시에 사업 면허 폐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소송을 진행했고, 이후 1심과 2심을 거쳐 지난 2007년 12월 대법원은 "서울시가 상봉터미널의 사업 면허 폐지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신아주 관계자는 "그러나 대법원 판결이 난 이후에도 서울시와 부지 용도 변경 문제 등으로 개발 계획이 여러 차례 틀어져 지금까지 적자를 안고 운영을 해왔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광온 기자 = 7일 오전 11시 서울 중랑구 상봉터미널 매표소 앞엔 사람의 발걸음이 끊겨 적막함만 가득했다. 2023.11.07. lighton@newsis.com


이후 상봉터미널 시외버스는 지난 2018년 5월부터 원주행을 제외한 모든 노선이 폐지됐고, 고속버스는 올해 3월31일 대전 노선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폐지됐다.

상봉터미널 폐쇄 이후 해당 부지엔 아파트 999세대, 오피스텔 308세대, 상업·문화 시설 등으로 이뤄진 지하 8층~지상 49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준공 완료 시점은 오는 2029년이다.

시민들은 4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상봉터미널 폐쇄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랑구에서 30년을 살았다는 70대 김모씨는 "상봉터미널도 중랑구도 낙후된 상태에서 점점 발전해 갔고, 그런 역사를 보면서 나도 나이가 들었다"라며 "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듯 해서 아쉬움이 크다"고 전했다.

새로 들어올 주상복합 건물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20대 대학생 최모씨는 "오래 역사를 간직한 곳이 사라진다는 게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는 새로 재개발돼서 여기 상인분들에게도 지역 거주민들에게도 모두 다 좋은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봉터미널 인근에 사는 40대 주모씨도 "이용객도 적고 하다보니 새로 들어올 문화 시설 등을 이용하게 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light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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