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기 | ‘지랄맞은’ 내 혀를 아찔하게 후려친 ‘을지로 인셉션’[내 이름 걸고 추천하는 맛집](13)

2023. 11. 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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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 ‘비어할레’
얇게 썬 족발과 부추의 조합이 일품인 을지로 ‘비어할레’의 훈제족발


어릴 적부터 내 입맛은 관대하지 않았다. 해질녘 노을빛에 허리춤까지 잠긴 부엌에서 엄마가 뚝뚝뚝 오이를 썰면, 비명을 지르며 코를 부여잡고 방으로 숨곤 했다. 수박은 수박바만 먹고, 김밥은 우엉 금지였으며, 복국엔 담긴 미나리부터 건져냈다. 만두에 김치를 곁들어 먹으면서도, 김치만두는 싫었다. 땡감이 곶감 되도록 손도 대지 않아 호랑이가 힘들어했다. 덕분에 내가 거듭 손대는 무언가는 종종 주변의 주목을 받았다. 안정적으로 맛있는 음식이라는 징표였기 때문이다. 이토록 까탈스러운 이 인간이 뭔가를 맛있어한다면. 언젠가 남동생이 그랬다. “형이 맛있다고 할 정도면, 확실히 누구나 좋아할 만한 거니까.” 특별히 혀가 섬세할 리는 없다. 그저 ‘호불호’에 모질고 박할 뿐이다. 취향을 타는 음식일수록 내겐 감점이었다. 지금도 들깨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는다. 민트 초코와 녹차맛 아이스크림은 스푼까지 넉넉히 챙겨 양보한다. 김, 통깨, 깻잎, 고수 따위를 뿌린 음식도 멀리한다. 올리브유나 아보카도유는 새 프라이팬 닦을 때도 안 쓴다. 기준이 불분명하지만 대개 향이 강한 것들이다. 조연이 주연을 압도하는 꼴을 못 본다.

10여 년 전 대학원생 시절, 내 전공은 시각 디자인이었다. 지도 교수님은 다행히 날 무척 예뻐했다. 동기 중 유일한 남학생이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그것보다는 이론적 토대와 이를 활용한 독자적 연구 모델, 실증적·정량적·정성적인 접근에 무척 목말라하며 미술이론을 전공한 제자를 찾던 차, 문득 내가 눈에 띄었다고 본다. 당시 미술 분야의 주먹구구식 논문에 질려 있던 교수님은 뭔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원했다. 물론 나는 그런 연구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그림을 좀 그리며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슬슬 포트폴리오나 쌓으며 말이다.

아무튼 난 연구장학생(R/A)으로 찍혀 교수님과 국가과제 연구를 수행하기에 이른다. 학회에 등재할 소논문 외에도 교재를 포함한 각종 저서를 집필 중이던 교수님에게 나는 그럭저럭 예리한 칼이었다. 무딘 티가 날 때면 가끔 밥이나 술을 사주시며 칼날을 갈아주곤 했다.

감칠맛이 시원한 맥주를 부른다.


그런데 군데군데 ‘지랄맞은’ 내 입맛은, 무슨 메뉴라도 없어서 못 드시는 교수님과는 도통 맞질 않았다. 언젠가 교수님이 지인의 식당을 전세 내고는 동기 중 나와 내 동기 여학생, 딱 둘을 초대했다. 자연산 농어와 제철 전어를 그 자리에서 잡아 연탄불에 직접 구워 주셨다. 친구분인 식당 주인은 내 다리만 한 농어를 옆에서 직접 회를 떴다. 눈이 달렸다면 누구나 빤히 보이는 정성을 차마 거역할 수 없어 세계적인 탐험가 ‘베어 그릴스’와 똑같은 표정으로 전어 한 마리를 가득 베어 물었다. 손바닥 반만 한 게 무슨 뼈가 그리도 많은지. 눈알은 또 왜 그렇게 생겼는지. 고소하다는데 도대체 어디가 고소한 건지. 연탄불 맛을 뚫고 스멀스멀 콧구멍을 찔러대는 비린내는 또 왜 이리 짙은지. 재차 권하는 교수님의 서슬에 몇 마리 우적우적 억지로 삼키는데 문득 눈물이 고였다. 정신이 혼미해 그만 의자를 굴리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지만. 교수님은 얼른 일으켜 세우며 잘 썰어 놓은 ‘두툼~한’ 농어 한 젓가락을 내 입에 밀어 넣으신다. “야, 천천히 먹어. 맛있다고 그렇게 욱여넣다 체해. 많으니까 더 먹어.” 물컹한 식감 너머로 물씬 들이닥치는 비릿한 흙내. 그에 맞서 마늘이 다 파묻히도록 쌈장을 찍어 삼킨다. 그 옆의 오이채까지 차마 손댈 순 없었다. 눈치 없이 활기차게 헤엄치는 수조 속 농어를 손짓하며 교수님이 윙크한다. “체면 차리지 말고 막 먹어. 쟤도 있으니까.”

“을지로 콜?” 힘겨운 식생활에 지칠 무렵 교수님의 연락. 길을 나서며 각오를 다진다. 혀야 힘내자. 굽이굽이 연탄 냄새 후미진 골목 어림에 푸르죽죽한 글씨로 내걸린 컴컴한 간판 ‘Bier Halle’. 맥주만 파리라 다짐하며 들어서자 교수님이 손을 흔든다.

“이걸 먹어야 해. 이거 먹으러 여기 오는 거야.”

디자이너 아니랄까 봐 선명하고 단호하게 두들기는 손끝에 가려진 글씨 ‘훈제 족발’. 수십 년째 원조 배틀 중인 ‘장충동 할매’들 손맛도 두루 본 바, 딱히 끌리지 않았다. 돼지 발이 맛있어봐야 뭐.

양념부추 두어 줄기를 고명 놓듯 족발에 얹어 먹으면 고소함에 뇌리가 아찔해진다. / 김영기 제공


놀랍게도 그날 난 두 접시를 해치웠다. 특이하게도 훈제이면서 냉족발이다. 살짝 차다. 그래서 얇게 썰어 나온다. 박힌 분홍색 살코기를 따라 기름기가 거의 없는 무광의 고기 표면. 족발과 수제 햄에 한 발씩 담긴 중성적인 비주얼이 뇌쇄적이다. 양은 인색한 편.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접시에 깔린 뼈를 대충 뜯으면 몇 점 없다. 별다른 소스나 고명도 없다. 다만 양념부추 한 주먹을 함께 낸다. 이 부추가 또 특별하다. 은은하게 매콤한 가운데 살짝 남은 아삭한 풀기와 부추 풋내가 씹을수록 올라온다. 쪽파를 썰어 넣은 새우젓을 곁들이는데, 붉은 국물에 적신 하얀 잔새우가 모양새도 깔끔하다. 새콤달콤 상쾌하면서 끝이 쓰지 않고, 적당한 간이 기분 좋게 혀끝을 꼬집는다. 우선 얇게 켠 훈제 냉족발 한 점을, 넙데데한 사기 재질의 손바닥만 한 앞접시에 훤히 펼친다. 양념부추 두어 줄기를 고명 놓듯 얹는다. 마무리로 쪽파를 품은 새우젓 한 꼬집을 족두리 씌우듯 올린다. 고기의 한쪽 끄트머리를 집어 다른 쪽과 맞닿게 감싼다. 그대로 말아 올려 주저 없이 통째로 와앙! 5초만 씹으면 갓난아이도 무심코 맥주잔을 거머쥘 만치 농후한 고소함에 뇌리가 아찔해온다. 동서남북 골고루 혀를 후려치는 깊은 감칠맛에 마치 미뢰를 안마하는 기분까지 밀려든다. 이미 시켜 둔 생맥주로 시원하게 한 모금 입가심을 한다.

족발 맛이란 게 사실, 서너 점이면 으레 견적이 나온다. 그냥 먹어 보고, 싸 먹고, 찍어 먹고, 다시 그냥 먹고. 듬직하면서 뻔한 맛이랄까? 반면 이 냉족발은 온화한 훈제 향에 식감이 단단하고 야무지면서 간이 세지 않은 덕인지, 먹어도 먹어도 야금야금 또 들어간다. 도무지 물리지 않는다. 이 혀끝의 기적엔 사실 양념부추의 공이 상당하다. 시험 삼아 한 줄기 집어삼킬 때 입속을 종횡무진 단독 드리블하는 부추의 신선함도 범상치 않지만, 냉족발과 새우젓의 눈부신 티키타카 끝에 터지는 현란한 맛의 골은 가히 스페인 국가대표팀급이다. 사람이든 음식이든 합이 이렇게 중요하다. 맛도 맛인 만큼 이 부추의 몸값이 공짜일 순 없고, 따로 추가해야 한다.

나설 때마다 느끼는 또 한 가지, 별로 시킨 게 없다 싶은데도, 카드가 생각보다 묵직하게 긁힌다. 여기 맥주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도 기본은 한다. 몇몇 외산 생맥주도 있지만 기본 생맥주만으로도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간다. 영수증을 구기며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입맛 며칠 다시다 바보처럼 또 찾는 곳이다. 더 추워지기 전에 한번 들를 참이다. 티키타카 합심해 올해를 꾸린 내 새우젓과 부추 같은 사람들 잡아끌고 말이다. 족발 한 점 휘적이며, 이미 몇 번 언급한 듯하지만 한 번만 더 해야겠다. 교수님과 처음 온 이야기부터.

필자는 현대미술의 일상화, 생활화, 보통화에 뜻을 둔 전시 기획자이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강연도 다니고 전시디자인에도 관심이 많다. 작가들이랑 노는 것도 좋고, 특히 놀아도 공식적으로 일이 되는 건수를 가장 좋아한다. 미술평론 웹진 ACK의 공동 저자이며, OCI미술관 부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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