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발목잡힌 정비사업… "공사비 못올리면 중단"

정영희 기자 2023. 11. 6.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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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따고 보자'… 두 얼굴의 시공사(2)] 끊임없는 마찰에 사업도 포기

[편집자주]정비사업(재재발·재건축) 공사비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적게는 20~30%에서 많게는 100% 공사비를 올리는 시공사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조합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이후 철근·콘크리트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해외 근로자 유출로 공사비가 가파르게 뛰고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시공사들의 주장이다. 금리 상승에 따른 따른 조달비용 증가도 공사비 인상 요인의 하나다. 조합도 이 같은 현실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시공사가 요구하는 공사비 인상분이 적정하냐에 대해선 대체로 의구심을 갖는다. 공사비가 오른 만큼 조합원들의 부담도 커지기 때문에 섣불리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수십 차례의 협상에도 결국 시공사의 손을 놓는 사업장도 있다. 정부는 공사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중재에 나섰지만 민간에 대한 공공의 개입에는 한계가 있다. "일단 공사만 따고 보자"는 시공사들의 행태로 갈등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성북구 장위6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지 내 건설자재와 근로자가 보인다./사진=정영희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입찰 금액' 못 믿어… 시공사들 "정식 계약 아니다"
(2) [르포] 발목잡힌 정비사업… "공사비 못올리면 중단"
(3) 서희건설, 입주 6개월 앞두고 "260억원 더 내놔"
전국 정비사업장 곳곳에서 공사비 인상을 둔 마찰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 고금리 등과 함께 근로자 부족으로 인해 시공사들의 부담이 커진 탓이다. 조합 입장에선 시공사가 꺼내 든 공사비 인상 카드를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상분 규모가 납득하기 어려운 데다 오른 공사비는 고스란히 조합원 분담금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시공사 선정 당시 '추후 물가 변동분을 반영하지 않겠다'는 특약이 있었던 사업장들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정부는 분쟁 해결을 위해 별도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정작 현장에선 실효성이 없다는 반응이다.


6개월째 공사비 협의에 속타는 조합원


서울 성북구 장위동 25-55번지 일대에 위치한 장위6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도 공사비 진통을 겪고 있는 사업장 중 한 곳이다. 지난 10월31일 찾은 이 현장은 이주와 철거가 거의 완료돼 허허벌판이었다. 땅 고르기 작업을 위한 레미콘 한 대와 근로자 몇 명만 눈에 띄었다. '근로자 휴게공간'이라고 적힌 작은 규모의 컨테이너 박스 앞에 폐건물이 된 낡은 상가 한 개 동만 남아 철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일부 구역엔 펜스가 설치돼 있지 않아 집이 사라지고 드러난 넓은 땅이 보였다. 인근 주민들은 "공사는 시작도 안하고 땅만 몇 달째 덩그러니 있으니 미관상 좋지 않다", "이주는 빨리 시켜놓고 왜 분양은 감감 무소식이냐" 등의 불만을 표했다.

장위6구역은 공사비 진통을 두 번이나 겪었다. 2007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2010년 시공사로 삼성물산과 포스코건설(현 포스코이앤씨)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장위뉴타운 15개 사업구역 중 지하철 16호선 석계역과 매우 가깝고 학교와의 접근성도 높아 정주 여건이 뛰어난 곳으로 평가받으며 조합원들의 기대를 높였다. 시공사는 2016년 당초 가계약서보다 137만5000원 오른 3.3㎡당 490만원의 공사비를 조합에 제안했다.

조합과 컨소시엄은 50여차례에 걸친 공사비 협상에 나섰지만 좀처럼 합의안이 도출되지 못했다. 결국 2년에 걸친 갈등 봉합에 실패하고 시공계약이 해지됐다. 이듬해 총회에서 재선정된 건설업체는 대우건설. 당시 3.3㎡당 공사비 426만6900원의 공사비로 지하 3층~지상 33층, 총 15개동 1637가구의 아파트와 부대 복리시설 등을 짓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성북구 장위6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지는 현재 이주와 철거를 모두 마쳤다./사진=정영희 기자
그 사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터지며 주요 건설 자재인 레미콘과 철근 가격이 급등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강원중도개발공사가 회생 신청을 하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 냉기류가 흘렀다. 국내 정비사업 현장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증액을 두고 첨예한 대립을 펼친 것도 이때부터다. 장위6구역도 그 행렬에 끼어들었다.

대우건설은 지난 4월 자재와 인건비 인상분을 반영, 3.3㎡당 600만원 이상으로 공사비를 조정해야 한다고 조합에 알렸다. 조합은 일방적인 공사비 인상은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수 차례 협상을 진행했으나 의견 합치가 수월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의뢰했다. 11월 현재까지 정확한 액수의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통상 시공사 선정 시점보다 착공 시점에 공사비가 오르는 경우 건설업체는 조합에 도급 계약 변경을 요청한다. 협의가 늦어지면 착공과 분양은 계속 밀릴 수밖에 없다. 2020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아 장위6구역은 이주와 철거에 나선 지 3년 4개월째다. 공사비 협의 문제로 착공이 지연된 것으로 보인다.

조합은 지난 7월20일 정기총회에서 연내 착공, 내년 봄 일반분양을 약속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조합과 시공사가 각각 요구하는 금액의 중간 선에서 협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도급 증액 이슈가 없었다면 올해 분양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합 측은 공사비 협의가 길어지고 있는 건 맞지만 이 때문에 착공이 밀리진 않았다는 주장이다. 조합 관계자는 "공사비 관련 결정된 사항은 아직 없다"며 "구청 심의가 미뤄진 탓에 착공이 늦어진 것이지 공사비는 원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성북구 장위6구역 주택재개발사업조합 사무실 모습./사진=정영희 기자


'천정부지' 분담금에 정비사업 포기하기도


아예 사업이 엎어진 사례도 있다. 지하철 3호선 대치역에서 2분 거리인 대치선경3차다. 54가구 규모의 나홀로아파트로 1990년 입주해 올해 34년차를 맞았다.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대치동 한복판에 위치한 만큼 학군이 우수하다.

10월30일 찾은 이 단지는 한눈에 봐도 상당히 노후화가 진행됐다. 아파트 문패는 칠이 다 벗겨졌고 외벽엔 실금이 가득했다. 주차공간도 부족해 모두 출근했을 낮 시간이었음에도 빈 자리가 많지 않았다. 길 건너 대치선경1,2차가 재건축을 준비하며 3차도 정비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사업지 면적이 작아 재건축에 소요되는 시간은 짧지만 가구수가 워낙 적어 일반분양분이 거의 없다 보니 사업성이 떨어진단 지적이 이어졌다. 대치선경3차 소유주들이 선택한 건 재건축이 아닌 수직증축 리모델링이었다. 가구수 증가에는 제한이 있지만 분양가상한제에 구애받지 않고 안전진단도 비교적 수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설계변경을 잇따라 요구하며 사업이 지연됐다. 물 흐르듯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던 리모델링이 지지부진해지자 2021년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방향이 전환됐다. 통상 조합이 시행자이나 토지 등 소유자의 80%, 토지면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외부 시행사와 공동시행이 가능하다. 대치선경3차조합은 강남 주요 역세권에 오피스텔이나 상업용 부동산 공급을 추진해온 A사와 함께였다. 당시 A사와 조합은 인근 동해상가와 대치상가를 포함, 3568㎡의 부지를 통합 개발하기로 했다.
강남 대치동 대치선경3차 전경. 이 아파트는 최근 공사비 문제로 가로정비주택사업 진행을 포기했다./사진=정영희 기자
현대건설은 이 현장에 가로주택사업 최초로 프리미엄 주거 브랜드인 '디에이치(THE H)'를 제안했다. 지하 7층~지상 18층, 총 68가구 규모의 고급 주상복합으로 재탄생할 예정이었다. 당시 공사비는 3.3㎡당 845만원으로 2021년 시공사를 선정한 정비사업 대상지 중 가장 고가였다. 재건축·재개발보다 절차가 간소한 가로주택정비사업 특성 상 당초 2025년 입주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공사비에서 발목이 잡혔다. 전용면적 76㎡ 기준 조합원 1인당 분담금이 7억원 이상으로 늘어난 것. 소규모 정비사업이라 단가가 높게 잡혔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직전에 비해 공사비가 20% 이상 오른 셈이다.

고심하던 조합은 지난 6월 다시금 사업을 포기했다. 당시 호가가 20억~21억원 선임을 고려하면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A사 관계자는 "용적률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공사비만 오르니 수지가 맞지 않았다"며 "조합원들에겐 추가 분담금과 해산이란 두 선택지를 줬고 결국 해산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좁은 사업지 면적 탓에 지하층 비중이 높아 공사비가 더 올라갔다"며 "자재보다는 인건비 상승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시공사와의 계약 해지 이후 7월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됐다. 한 달 후 해산신고가 수리됐으며 11월 강남구청이 청산신고까지 수리하면 사업이 완전히 종료된다. 정비사업이 두 번 연달아 무산됐으니 소유주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 선경3차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장은 "이미 사업이 끝나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대치선경3차 가로정비주택사업과 같이 개발을 진행하기로 한 대치상가의 모습. 폐건물 상태다./사진=정영희 기자


공사비 갈등 중재안에도 업계 반응은 '글쎄'


정부가 공사비 증액 갈등에 아예 손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올 6월 공사비 증액과 검증에 대한 내용이 공사 도급 계약서에 명확히 포함하는 내용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을 추진했다. 협의가 안돼 공사를 멈추는 현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8월엔 물가 상승분을 공사비에 반영하도록 하는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를 개정·고시한 바 있다. 9·26 공급대책엔 공사비 인상으로 분쟁을 겪는 현장에 지방자치단체가 전문가를 파견하고 국토부가 관련 비용을 전액 지원한다는 안이 담겼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회의적인 반응이다. 무엇보다 민간공사 자체가 조합과 시공사의 사적 계약으로 진행되는데 공공이 이를 강제·감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운영되던 공사비 검증 제도도 강제성을 갖지 않아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광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적정 공사비 산정은 추진 단계별로 다양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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