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에 떠난 자동차 세계 여행…"우리를 돌아보는 시간"

송진원 2023. 11. 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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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도 힘들 텐데 시베리아를 건너 유럽까지 어떻게 가려고 그러냐, 과욕을 좀 버리라고들 했죠. 그래도 더 나이 들면 이런 여행을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아 과욕을 부렸어요."

올해로 일흔이 된 홍기씨와 부인 신명희(65)씨가 오랜 계획 끝에 지난 8월 말 자동차 세계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다.

한 달을 러시아에서 보낸 부부는 발트해의 에스토니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유럽 여행에 들어갔다.

생각지 못한 날씨 탓에 여행 경로를 수정하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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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신명희씨 부부, 러시아 거쳐 유럽 본토 도달
"더 나이 들면 못 할 것 같아 과욕 부려…건강히 잘 끝나길"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지난 8월말부터 자동차로 러시아를 거쳐 유럽땅을 여행중인 홍기(70)씨. 4일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san@yna.co.kr 2023.11.04.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젊은이들도 힘들 텐데 시베리아를 건너 유럽까지 어떻게 가려고 그러냐, 과욕을 좀 버리라고들 했죠. 그래도 더 나이 들면 이런 여행을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아 과욕을 부렸어요."

올해로 일흔이 된 홍기씨와 부인 신명희(65)씨가 오랜 계획 끝에 지난 8월 말 자동차 세계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다.

3년 전 은퇴한 홍씨 부부는 8월 23일 동해항에서 페리에 스타렉스 차 한 대를 싣고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세계 여행하기, 오래전부터 두 부부가 계획한 일이었다.

"한국의 은퇴자들이 할 일이 없어요. 갈 곳이 없어요. 힘 있는 기관에 있다가 퇴직한 사람들은 은퇴 후에도 여기저기서 모셔가지만, 대부분의 은퇴자는 공원에 가잖아요. 그렇게 노년을 보내기가 싫었어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럼 세계 여행을 가자고 했죠."(홍씨)

세계 여행을 하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니, 두 부부가 생각해 낸 건 자동차 여행이다. 중고 스타렉스 한 대(까망이)를 사서 내부를 캠핑카로 꾸몄다. 차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도록 간이침대, 개수대, 소형 인덕션, 냉장고, 오수통 등 필수 장비들을 알차게 채워 넣었다. 한국서 드는 월 생활비 200만원가량으로 한 달을 보내는 게 목표였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 건 8월 29일이다. 러시아에서 차량 통관 절차가 꽤 걸렸다.

그때부터 홍씨는 약 1만㎞에 달하는 시베리아를 횡단하기 위해 하루에 짧게는 300㎞, 길게는 500㎞씩 운전을 했다. 고령에 쉽지 않은 장거리 운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시베리아는 동네와 동네 사이가 너무 멀어요. 잠을 자려면 그래도 동네에 들어가는 게 나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500㎞씩 뛰었죠."(홍씨)

지인들이 "러시아 전쟁 통에 어딜 가려고 그러느냐"고 걱정했지만, 막상 모스크바에 들어서니 전쟁 중이라는 걸 느낄 수 없이 너무 평온했다고 한다.

한 달을 러시아에서 보낸 부부는 발트해의 에스토니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유럽 여행에 들어갔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을 돌며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만났다.

우선 어마어마한 기름값이다. 유럽 물가가 이렇게 비싼지 몰랐다고 한다.

홍씨는 "러시아는 경유 1리터에 우리 돈으로 한 800원이어서 가득 넣어도 5만원 정도였는데, 유럽은 1리터가 2유로 가까이 되니 가득 채울 경우 16만, 17만원이 나온다.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라고 놀랐다.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홍기씨 부부가 지난 8월 말부터 타고 다니는 '캠핑카' 까망이. san@yna.co.kr 2023.11.04.

물을 구하는 것도 일이었다.

러시아에서는 마을마다 공용 수도가 있어 물통에 물을 쉽게 채웠는데, 스위스나 프랑스 같은 유럽 내 일부 국가에선 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가장 저렴하게 물건을 파는 마트를 찾아가 생수를 싸게 사서 쟁여놓은 뒤 최대한 물을 아껴 쓰기로 했다.

"지혜가 생기죠. 물을 아주 적게 쓰는 설거지 방법을 터득했어요. 종이 타월로 식기를 한 번 닦은 뒤 물로 가볍게 헹궈서 행주로 닦는 거죠. 세제는 전혀 안 써요.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에요."(신씨)

부부는 나라마다 있는 한인 마트에서 고추장, 된장, 배추 등을 사 직접 차 안에서 김치까지 만든다고 했다.

생각지 못한 날씨 탓에 여행 경로를 수정하는 일도 있었다.

핀란드를 시작으로 스칸디나비아 3국을 차례로 훑고 유럽 본토로 다시 들어오려 했으나, 북극권이 지나는 산타클로스 마을에 갔다가 눈이 너무 많이 오고 길이 얼어붙는 바람에 그대로 핸들을 남쪽으로 틀었다. 스칸디나비아 3국은 날이 따뜻해지는 내년 5월 하순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일정이 틀어지면서 부부는 예정보다 이른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들어왔다.

부부는 유럽 인근 국가들을 여행하다 솅겐 조약에 따른 무비자 체류 기간(90일)의 종료 시점에 맞춰 지중해 건너 아프리카 땅 모로코로 넘어갈 예정이다. 그곳에서 석 달가량 머물며 차량 정비 등을 마친 뒤 다시 유럽 본토로 돌아온다는 계획이다.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홍기씨가 차 안에서 내부 집기를 하나씩 소개해주고 있다. san@yna.co.kr 2023.11.04.

부부가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건 뭘까.

"서로 위로해주는 마음이죠. 그동안은 자녀 키우랴 공부시키랴 우리를 돌아볼 수 없었는데, 이런 여행을 통해 그런 시간을 많이 갖게 됐어요. 남편도 '참 멋있는 사람이구나'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한국에서는 '원수'라고 그랬는데 하하하…"(신씨)

운전대를 책임진 남편 홍씨는 부디 남은 여행 기간 누구든 아프지 않길 바란다.

"60대에서 70대가 되면 건강 상태가 아주 안 좋아져요. 다리 힘도 더 떨어지고 판단력도 흐려지고. 매사에 두려움도 막 생기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나온 여행인데, 가끔 불안함이 생겨요. 내가 운전을 못 하게 되면 어떻게 돌아가나. 부디 건강하게 이 여정이 잘 끝났으면 좋겠어요."(홍씨)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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