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숨겨진 박람회 주연들···'아듀' 2023정원박람회

전남CBS 박사라 기자 2023. 11. 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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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훼 연출부터 동물원, 오천그린광장까지
7개월간 밤낮없이 일한 숨은 공신들 누구
"자원봉사자, 28만 시민도 모두 박람회 주역"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폐막한 10월 31일 찍은 조직위 기념사진. 순천시 제공


7개월의 대장정을 치르면서 생각한 건 오직 한 가지. 바로 관람객이었다. 박람회에 찾아올 관람객을 생각하며 꽃을 연출하고, 메뉴를 선정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아침 7시 출근, 늦은 밤 퇴근은 기본, 주말은 반납했다. 관람객 980만 명을 기록했고, 정원도시 순천을 확실히 알리는 계기가 됐다. '나'보다도 박람회가 먼저였던 이들이 있었기에 214일간의 여정이 무사히 막을 내렸다.

봄에는 장미와 튤립, 여름에는 수국, 가을에는 억 만 송이 국화꽃과 코스모스 등 수백 가지의 꽃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화훼팀 정유애(33) 주무관은 국가정원의 핵심공간인 네덜란드 정원과 나르샤 정원, 드림정원, 식물원 옆 라온정원 등 5개소의 화훼 기획부터 꽃의 품종과 색상 선택, 식재를 맡았다.

조경학을 전공한 4년 차 공무원인 그는 계절마다 장소별로 화훼 연출을 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린 뒤 여기에 맞는 꽃 품종과 색깔을 정했다. 정 주무관은 다채로운 화색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동문 입구를 들어서면 펼쳐지는 라온정원은 하늘에서 내려다 봤을 때 나뭇잎 형상을 띠도록 하면서, 개개소마다 일년초, 다년초 군락 등을 다 다르게 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따로 또 같이'가 콘셉트였다.

정 주무관은 개막 전인 3월 25일 프레오픈을 준비했던 일을 가장 힘들었다. 꽃샘 추위에 서리 피해까지 있어서 당일 심은 꽃이 새벽 기온에 의해서 죽기도 했다. 꽃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품이 아니라 온도, 토양, 습도, 날씨 등이 다 받쳐줘야 하기 때문에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름정원을 준비하면서는 한달 반 가량 새벽 4시 30분에 출근, 헤드렌턴을 착용한 채 엉덩방아를 찧어가며 꽃을 심었다.

화훼 작업 후 팀원들과 함께하고 있는 정유애 주무관(왼쪽 앞). 정유애 제공


박람회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억 만 송이 국화 연출을 위해서는 권민아 주무관과 경기도 과천의 농가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국화를 공수해 오기도 했다.

정 주무관은 "개막일이 점점 다가오는데 더 예쁜 꽃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커 잠못 이루는 밤이었다"며 "''꽃들이 너무 예쁘다', '이 꽃 좀 봐, 여기서 사진 찍어 줄게' 등 관람객들의 대화를 들으면 피로가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박람회장 곳곳에 식사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테리아가 준비돼 있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 아닐까. 국가정원에는 식당 9곳, 카페 8곳, 스낵 판매점 1곳, 푸드바이크 7곳, 편의점 6곳 등 총 31개소의 식음료 시설이 있었다.

운영수익팀 한아람(35) 주무관은 가든밥상, 순천밥상, 장독대 정원 카페, 프랑스 정원 카페 등 공간 기획부터 메뉴 선정 그리고 24명 운영자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일을 했다.

특히 가든밥상과 순천밥상을 정원에 맞는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하는 일을 중점적으로 맡았고, 박람회 기간에는 식음료 시설에서 발생하는 민원을 담당했다.

관람객이 너무 많이 몰린 날에는 화장실, 급수대의 이용이 급증하면서 유속이 낮아져 식당 주방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않는 일도 발생했다. 손님들은 기다리는데 물은 나오지 않아 음식 조리는 늦어지고 난감했다. '가장 발에 땀이 나는 순간이었다'고 말한 한 주무관은 유난히 긴 장마로 매출이 줄어 힘든 운영자들에게 '여름 이벤트' 대안을 제시하며 힘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도 했다.  

이랬던 그가 폐막식 마지막 날, 뒷정리를 하다가 발을 접질러 '반깁스'라는 영광의 상처까지 얻었다.

9년 차 공무원인 한 주무관은 "처음 해보는 업무였지만 '뭐 도와줄 것 없냐'며 도와준 팀원들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했다"며 "앞으로는 더 다양한 업무를 통해서 많이 배우고 싶다. 행정이든 인간관계든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아람 주무관(오른쪽 첫 번째)과 팀원들. 한아람 제공


가족 단위의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곳 중 하나는 서문에 위치한 '동물원'이었다. 평일이면 어린이집 견학으로, 주말에는 가족 관람객들로 동물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박람회를 앞두고 동물원이 리모델링됐고, 귀여운 다람쥐원숭이들을 새식구로 맞이했다.

하루의 일과를 홍학과 알파카, 다람쥐원숭이, 물개 사육장을 둘러보며 시작했다는 운영수익팀 진유미(31) 주무관은 동물원 공간 정비와 프로그램 운영을 맡았다.

이전에는 눈에 잘 띄지 않던 동물원 입구를 홍학떼가 있는 앞으로 변경하자고 제안한 것도 진 주무관의 생각이었다. 앵무새, 알파카 모이주기 프로그램 등을 기획해 박람회 기간 200만 명의 참가자를 모으기도 했고, 특별히 추석 기간에는 복주머니에 담아 모이를 주고. 복주머니는 관람객들에게 선물하는 이벤트도 마련해 호응을 얻었다. 박람회 기간 태어난 다람쥐원숭이 '몽순이'와 함께 사진을 찍고 키링으로 만드는 이벤트도 인기였다.

동물과 관련된 업무는 처음이었다는 진 주무관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원으로 만들까'를 고민했다"며 "그만큼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박람회 기간 주말을 반납한 채 일하는 점은 힘들기도 했지만 다양한 것을 경험했고, 현장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고 웃음 지었다.

동물원 관리를 맡은 진유미 주무관. 진유미 제공


이번 박람회의 성과 중 하나는 큰 사고없이 안전하게 마무리됐다는 점이다.

조직위 관계자와 관람객 모두의 노력이기도 했지만 상황실에서 박람회장을 지켜보면서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준 이명진(56) 팀장의 숨은 노고도 있었다.

30년 차인 이 팀장은 박람회장 종합상황실을 관리했다. 안전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면 즉시 처리하고 사고가 발생할 만한 요소를 찾아 예방했다. 시설 이용 실태를 매일 취합해 박람회 종합상황서를 작성하는 일도 업무 중 하나였다.

이른 아침 개장 전 식음료 시설에 들어오는 차량을 관리하는 게 업무의 시작이었고 위급 환자가 발생할 시 구급차 동선을 확보해서 골든타임을 확보해야 했다.

관람객 실종 사건도 종종 발생했는데 한번은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던 자녀를 잃어버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 팀장은 안전요원들과 국가정원 곳곳을 찾아다녔고, 시크릿가든 인근 사람이 안 다니는 곳에 앉아있던 이 자녀를 찾아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이 팀장은 "늘 '통제'하는 일을 하다보니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었다"며 "관람객들이 많으면 힘들 것 같지만 오히려 한여름 폭염과 장마로 관람객이 줄었을 때 힘이 빠졌고, 많이 찾아주시면 힘이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큰 사건사고 없이 박람회가 끝난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했다.

정원드림호에서 이명진 팀장과 그의 아내. 이명진 제공


10년 전 박람회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박람회장을 국가정원 밖으로 확장한 점이다. 25㎡의 광활한 잔디밭인 오천그린광장도 그 중 하나다. 지금은 시민광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람회 기간 주말마다 열리는 대형 행사들로 잔디가 많이 손상됐을 법한데 그린광장의 잔디는 늘 푸릇푸릇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이 넓은 잔디는 누가 관리하나 궁금한 이유이기도 했다.

'독일의 본 저류지 공원 같이 한번 만들어보자'는 노관규 시장의 구상으로 시작된 오천그린광장은 시설2팀 홍경현(44)팀장의 깐깐한 관리가 한몫했다.

초창기에는 골프장, 축구장 관리법을 참고 했는데 이곳 사정과는 맞지 않았다. 주말마다 콘서트로 최대 5만 명의 관람객이 몰리는 그린광장의 관리법은 달라야 했다. 책도 보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관수, 영양제 주입 시기, 주말 이후 관리 등 그린광장만의 메뉴얼을 만들었다.

시민들이 이용하지 않는 밤 11시~새벽 2시 사이 자동 관수를 하고, 사각지대는 사람이 직접 관수를 했다. 맨발걷기 길도 조성돼 있기 때문에 농약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기로 정했다. 특히 대규모 문화행사로 잔디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행사 하루 전에 잔디 밭 위에 모래를 5mm 깔아 뿌리를 보호하도록 했다. 다음 날은 영양제와 에어레이션을 통해 잔디가 회복하도록 했다.

다른 팀들과 싸우기도 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팀과 잔디를 지켜야 하는 팀 간의 다른 입장 때문이었다. 학교 운동장이나 일반 공연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연 장비를 세팅해야 하고, 특히 장비 차량들의 진입으로 잔디가 손상되면 안되기 때문에 차량 진입 공간과 대수 제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광장에 의자를 설치해야 할 경우는 반드시 보호매트를 깔도록 하고, 방송 장비를 함부로 잔디 위에 올려놓지도 못하게 했다.

오천그린광장 관리를 맡은 홍경현 팀장(앞). 홍경현 제공


홍 팀장은 "시민들께서 알아서 돗자리를 깔고 공놀이를 하고, 반려견을 데리고 와서 즐기는 등 개방된 시민광장으로서 자리를 잘 잡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며 "내가 훼손시키면 타인에게 피해가 간다는 생각으로 오천그린광장에서 질서를 잘 지켜주신다면 오랫동안 좋은 공간으로 보전될 것 같다"고 당부했다. 이어 "박람회를 통해 조성된 오천그린광장은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이 됐다"며 "이런 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번 박람회에 공식적으로 참여한 스태프는 모두 100여명. 이외에도 박람회 성공을 위해 대회 전부터 자발적 서포터즈가 된 순천시민 28만 명은 박람회를 성공으로 이끈, 또 다른 주연으로 기록될 것이다.

10월 31일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폐막식에 참석한 자원봉사자들과 시민들. 순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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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CBS 박사라 기자 sarai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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