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높아 매력 없다"…청약통장 가입자 유출 지속
분양시장 분위기도 9월부터 반전…"가격 민감도 높아진 상황"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 스무 살 때부터 10년 넘게 청약통장을 유지해 온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꿈에 그리던 서울 아파트 청약 도전이 요즘 꺼려진다. 김씨는 "취업해 소득이 생긴 뒤론 해마다 괜찮은 단지는 전부 도전했는데 올여름쯤부터는 넣지 않는 곳이 많아졌다"며 "분양가가 너무 높아 감당이 될지 자신도 없고 입주 때는 집값이 오히려 떨어져 낭패를 보진 않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금리·고분양가에 분양시장 경쟁률이 주춤하는 가운데 청약통장 가입자가 줄고 있다. 5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전국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724만8358명으로, 전달 대비 1만8515명 감소했다.
이는 주택청약종합저축·청약저축·청약부금·청약예금 가입자를 합산한 것인데, 2015년 9월 1일부로 시행된 청약통장 일원화에 따라 현재 신규 가입은 주택청약종합저축만 가능하며 나머지 3종은 기존 가입자만 유지 여부를 정할 수 있다.
최근의 청약통장 가입자 감소 추세는 작년 6월부터 15개월째 지속 중이다. 지난해 4월 2857만3172명, 5월 2859만7808명, 6월 2859만9279명까지 늘었던 가입자 수가 7월부터 줄기 시작, 1년 3개월간 총 135만921명이 이탈했다. 새 정부 취임 직후로, 분양가 상한제 폐지 가능성이 점쳐지던 상황이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가 꺾인 시기는 거래량이 급감한 때이기도 하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2022년 6월 1063건에서 한 달 만에 644명으로 반감했다. 작년 7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직전(5월) 1.75%에서 2.25%로 0.5%포인트(p)올렸고, 미국은 6월과 7월 모두 0.75%P 인상을 단행하며 긴축에 속도를 낸 바 있다.
다만 한은 기준금리는 올해 1월부터 3.5%를, 미국은 지난 7월부터 5.5%를 유지하면서 '추가 금리인상은 없다'는 시각이 시장에 팽배하고, 서울 아파트 거래량도 올해 1월부터 네 자릿수를 회복하고 3월부턴 줄곧 3000건대를 유지 중인데, 청약통장 가입자 이탈은 계속되는 것이다. 지난 8월 정부의 주택청약저축 금리를 인상(연 2.1%→2.8%) 발표에도 이탈은 이어졌다.
◇청약저축 금리 올려도 이탈 이어져…분양시장 경쟁률에도 변화
이처럼 청약통장 가입자 유출이 지속되는 이유로 높아진 분양가격이 지목된다. 올해 1·3 대책으로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 4개구를 제외한 전 지역이 분양가상한제 적용 등 규제지역에서 해제되자, 신축 분양가는 끝 모를 듯 올랐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지하철 1호선 외대앞역세권에서 순차 분양한 3개 단지의 시기별 평(3.3 ㎡)당 분양가를 보면, △4월 휘경자이디센시아(1806가구) 2930만원 △8월 래미안라그란데(3069가구) 3300만원 △10월 이문아이파크자이 3500만원 내외로 꾸준히 상승했다. 앞서 분양한 2개 단지는 일반분양 평균 경쟁률이 각 51.7대 1, 79.1대 1로 모두 1순위 마감된 반면, 이문아이파크자이는 17대 1로 크게 줄고 일부 평형은 2순위에서야 마감됐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분양시장에서 '수요자들이 높아진 가격을 받아들인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9월부터 반전됐다. 인근 시세 대비 높은 가격으로 고분양가 논란 속 나란히 분양한 동작구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와 구로구 호반써밋 개봉이 각 14대 1, 25대 1로 당시 비교적 낮은 경쟁률로 1순위 마감한 것이다. 이어 한 달 만에 두 단지는 절반도 되지 않는 계약률로 '줍줍' 물량이 무더기로 시장에 다시 나왔다.
반면, 합리적인 가격에 분양한 단지는 흥행을 이어갔는데,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동탄2신도시 동찬레이크파크 자연앤 이(e)편한세상은 지난달 진행한 일반분양이 평균 240대 1 경쟁률로 1순위 마감했다. 단지는 평당 1400만원, 국민주택 평형인 전용면적 84㎡ 최고 4억8120만원의 근래 보기 힘든 분양가로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인근 시세보다 2억~3억원가량 저렴해 실거주의무 5년 규제에도 투자수요와 실수요가 함께 몰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분양가 외에도 올해 3월부터 시행된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가 실거주 의무 폐지 입법 미비로 사실상 무력화된 점이 청약시장 분위기 변화의 이유로 꼽힌다. 현행 실거주 2년 의무가 유지되면 투기수요는 물론, 서민 아파트 매입의 주된 방식인 '전세 낀 매매'가 불가능해 자금 여력이 부족한 실수요 유입도 차단된다. 대신 계획적으로 청약을 준비하고 자금을 마련해 온 실수요자의 당첨 가능성을 높여 청약제도의 기본 취지를 잘 살리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올 초만 해도 시장에 만연했던 '조만간 금리 인하 기대'가 '고금리 장기화 관측' 우세로 돌아서면서 부동산 시장이 다시 냉각 조짐을 보이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8월 3852건에서 9월 3362건으로 줄었고, 매도물량은 8만452채(11월 3일 아실 기준)로 역대 최대치로 증가세인 걸 감안하면 10월, 적어도 11월부턴 거래량이 반등하긴 어렵다는 게 현재 시장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정부가 정책대출을 축소한 여파도 가볍지 않다. 올해 1월 말 출시돼 9억원 이하 주택에 최장 50년간 최대 5억원을 빌려주던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은 9월 말 판매 중단됐고, 6억원 이하 주택에 적용되는 특례론 일반형도 이달 3일부터 적용 금리가 0.25%P 올랐다.
백새롬 부동산R114 책임연구원은 "분양가 인상 속도가 가팔라지고 금융부담 비용도 늘어나다 보니까 수요층에 있어서 분양가 민감도가 굉장히 높아진 상황"이라며 "앞으로도 단지별로 가격 경쟁력에 따라 청약 흥행 희비가 많이 엇갈리는 양상이 뚜렷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청약통장 해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청약시장 매력도 외에도 "가계사정이 요즘 어려워져 묵혔던 돈을 꺼내 쓰는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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