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없는 리시버 앰프에 컴퓨터 소켓 달고 납땜…불이 켜졌다 [ESC]

신승근 2023. 11. 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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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나의 짠내 수집일지]나의 짠내 수집일지
마란츠 SR4000 전원 선 이으려
소켓 분리·교체, 살 떨리는 도전
중독·감전은 ‘기우’…끝내 성공
전원 케이블을 구할 수 없는 리시버 앰프의 전원 소켓을 부득이하게 컴퓨터용 소켓으로 교체한 뒤 인두로 납땜하고 있다.

짠내 수집을 하다 보면 오디오 장비 욕심이 발동한다. ‘올인원 오디오’가 대세인 시대지만 스피커, 앰프, 튜너, 턴테이블, 카세트 데크, 시디(CD)플레이어 등을 따로 만든 지난 세기 오디오는 아날로그 감성 충만한 아름다운 외관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란츠, 피셔, 매킨토시, 그룬딕, 린 등 이른바 오디오 명가는 음원 재생뿐 아니라 디자인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라디오 신호를 수신하는 튜너와 음원을 증폭하는 앰프 기능을 일체화한 ‘리시버 앰프’는 전원을 켜고 끄는 스위치는 물론 볼륨과 베이스 등 음색을 조절하고, 에이엠(AM), 에프엠(FM), 테이프 1·2, 포노(Phones), 옥스(AUX) 등 음원 소스를 선택하는 노브(다이얼)까지 모든 것에 미학적 아름다움과 기술적 노하우를 집적했다. 주파수를 표시하고 수신 신호 강도를 표시하는 바늘과 패널, 어둠 속에서 은은한 불빛을 내는 램프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크기와 형태는 물론 블루, 옐로, 오렌지 등 색상도 다양해 아날로그 감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이런 빈티지는 수십만원, 때로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가품이다.

난생처음 인두질에 희생된 엄지

나는 동네 제법 큰 재활용센터에서 저렴하게 수집 욕구를 해소한다. 1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지만 운 좋게 물건을 마주치면 놓치지 않고 사들인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던가. 한달 전 주말 산책길에 아내가 재활용센터에서 무엇인가 발견했다. “이거 어때? 마란츠인데, 좋은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리시버 앰프인 ‘마란츠 에스알(SR)4000’이었다. 1979년부터 마지막 아날로그 제품군인 ‘마란츠 제 5세대, 에스알 1000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그 대표 상품이다. 진공관에 가까운 음색을 내는 신형 트랜지스터 에프이티(FET·Field-Effect Transistor)를 적용했고, 원형 노브와 사각 버튼이 혼합된 형태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전환기 제품이다. 문제는 전원 케이블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인장은 “불이 안 들어오면 반품을 받아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1만원 깎아줬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 왔지만, 어떤 전원 케이블도 마란츠 에스알4000 전원 소켓이 들어가지 않았다. 방랑이 시작됐다. 동네 전파사, 전자제품 대리점, 서울 동묘의 중고 전원 케이블 판매점까지 들렀지만 없었다. 동묘 노점에서 크기와 모양이 거의 유사한 케이블 두개를 사 왔지만 소용없었다. 요즘 생산하는 모든 전원 케이블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플러그 간격이 1.3㎝인데, ‘마란츠 에스알 4000’은 1㎝ 간격이다.

결국 오디오 애호가 모임터인 ‘실용오디오’에 문의했다. 많은 이들이 “오리지널리티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면 컴퓨터용 소켓으로 교체해 땜질하라”고 조언했다. 원형을 훼손하고 싶지 않아 세운상가 오디오 전문점까지 다 뒤졌지만 답은 같았다. “그런 건 이제 안 나와요. 왜 요즘 흔한 컴퓨터 소켓을 놔두고 없는 걸 찾아요? 간단해요. 새 소켓으로 교체하고 납땜하세요.” 결국 오디오 부품점에서 요즘 식 컴퓨터용 소켓을 구했다. 인두와 납이 필요했다. 납땜을 돕는 보조제까지, 뭔지 모르지만 챙겨주는 대로 구매했다.

컴퓨터용 소켓이 뒤판 구멍보다 커 사포질로 깎아내고 있다.

할 수 있다는 정신승리 감성으로 위판 덮개를 열고 소켓 분리에 나섰다. 난관이다. 기존 소켓에 납땜 된 전선은 여유가 없었다. 특히 소켓에서 100V(볼트), 220V로 전압을 조절하는 퓨즈로 연결된 전선은 너무 짧았다. 각종 전선이 난마처럼 얽혀있는 본체 가장 깊숙한 오른쪽 밑 구석에 납땜한 기존 소켓을 떼어내는 건 어려운 미션이었다. 자칫 다른 전선이나 소자, 기판을 인두로 지지면 수습 불가능한 대형사고다. 아내를 보조원으로 활용하며 기존 납땜을 녹였다.

그런데 난생처음 인두질은 열 조절부터 쉽지 않다. 애먼 오른손 엄지를 인두로 지지는 ‘고난의 행군’ 끝에 소켓을 겨우 분리했다. 솔직히 분리가 아니다. 열 조절에 실패해 기존 소켓의 플라스틱이 녹아내리며 떨어진 것이다. 새 소켓을 납땜하는 건 더 힘겨웠다. 이미 손을 데는 참사를 경험한 터라 여유가 없는 전선을 기기 안에서 납땜하는 건 위험천만, 미션임파서블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리지널리티, 그런 건 다 필요 없고 전기가 들어오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자조하며 다른 전선을 검정 절연 테이프로 이어붙여 납땜할 전선을 오디오 바깥으로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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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나거나 감전사 하면 어쩌지?”

그런데 이번엔 교체할 새 소켓이 오디오 뒤편 철판의 소켓 설치 구멍보다 가로, 세로 1㎜ 정도 더 커 들어가지 않는다. 황당하고 난감했다. 고심하다 사포로 소켓을 갈아 크기를 맞추기로 했다. 아내 눈치를 살피며 베란다에 신문 깔고 먼지 폴폴 날리며 30여분, 수도하는 마음으로 갈고 닦아 크기를 맞췄다.

소켓 교체 뒤 전원을 켠 리시버 앰프 SR4000. 패널 창에 불빛이 들어왔다.

납땜 시작, 그런데 마음처럼 잘 안 붙는다. 납은 액체가 되어 방울방울 흘러내린다. 인두질 때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러다 납 중독?” 두려움이 스쳤다. 어쩌다 보니 붙긴 붙었다. 인생 첫 납땜질은 볼품없었다. 나중에 오리지널 소켓과 전원 케이블을 구하면 다시 제대로 땜질하겠다고 합리화하며 일단 멈췄다. 나도 내가 한 일을 믿을 수 없었다. “합선으로 불이 나거나 감전사하면 어쩌지?” 아내를 전원 차단기 앞에 대기시켰다.문제가 생기면 차단기를 즉시 내려야 하니까. 전원 케이블을 꽂았다. 주파수 패널에 은은한 불빛이 켜졌다. 라디오 신호 감도를 알리는 바늘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파수를 맞추자 패널 아래 좌우 출력창엔 붉은색 막대 그래프가 선명하게 오르내린다. 성공이다.

휴대폰을 옥스(AUX) 단자에 연결해 유튜브에서 ‘야누스의 목소리, 박성연’을 재생했다. 재즈가 두툼하고 따듯한 음색으로 흘러나온다. 그런데 볼륨 노브를 돌릴 때마다 지직거림이 심각하다. 오랜 짠내 수집 경험에서 터득한 지식으로 해결했다. 노브 내부에 먼지, 기름때 등이 엉겨 붙어 전기신호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게 원인일 가능성이 큰데 이른바 ‘접점 부활제’로 해결할 수 있다. 오죽하면 죽은 기기도 살린다는 부활제겠나? 전자제품의 작은 틈새에 쌓인 오염물을 순간 급속 증발시켜 제거하는 스프레이 제품이다. 지난 일요일 아침 일찍 강변 테크노마트 개장을 기다렸고 1만9천원짜리 접점 부활제를 샀다. 세심하게, 아니 다른 부분에 손상이 올까 봐 소심하게 뿌렸다. 잡음은 개선됐다. 나는 짠내 수집의 또 다른 경지를 개척했다.

글·사진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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