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민의 문화 이면] 관엽식물의 겨울나기

2023. 11. 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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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게 적정 온습도 필수적
너무 대접했다간 허약체질 돼
몸도 항상성·적응력 균형 필요
바뀐 환경서 건강히 적응하려면
삶의 작은 고난 귀중히 여겨야

열대식물과 관엽식물 마니아가 되면서 사무실 화분이 어느덧 150여 개가 되었다. 작은 내 방은 초록으로 가득해졌고 하루 1~2시간은 식물을 돌보는 데 사용한다. 처음엔 무심하던 젊은 직원들도 처음 보는 식물이 많아지자 이제 방에 한 번씩 구경을 와 화원에 온 것 같다며 법석들이다. 아무려나, 은퇴하면 화원을 하는 게 꿈이 되었을 정도로 식물을 돌보고 늘리기가 적성에 맞는다. 그런데 날이 점점 추워지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닥쳐올 겨울을 넘어가는 문제가 나에겐 관건이 되었다.

겨울철 사무실 평균 기온은 낮엔 20도 이상을 유지하겠지만, 밤엔 5~10도 안팎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열대식물들에겐 치명적이다. 다행히 1년 전 바닥 난방이 되는 사무실로 이사를 와서 해결이 가능하다. 문제는 난방비가 많이 나오는 것인데, 밤새 보일러를 돌아가지 않게 하고도 실내 온도를 15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건조한 계절이니 수분도 많이 필요하다. 얼마 전 농장에서 쓰는 대형 가습기를 주문했다. 4개의 방향으로 엄청난 수증기를 뿜어내는 괴물이라는 광고 문구에 기대감을 안고 주문했다. 아이들을 바싹바싹 마르게 할 수는 없다. 식물에겐 또 환기가 중요하다. 창도 잠깐씩 열어야겠지만 선풍기를 틀어 실내 공기를 순환시켜야 한다. 이것은 호흡의 문제다.

대체로 관엽식물의 적정 생장 온도는 15~30도 정도다. 그 이하에서는 성장을 멈추거나 겨울잠을 자게 된다. 영상 5도는 생존선이다. 이 이하로 떨어지면 저세상의 강을 건너게 된다. 그러니 낮에 볕이 좋다고 잠깐 창밖에 화분을 내놓는 일은 되도록 삼가야 한다. 깜빡하고 퇴근이라도 하는 날엔 애지중지하던 화분 하나를 떠나보내야 한다. 보름 전쯤인가 갑자기 기온이 심하게 떨어진 날 바깥에 내놓은 화분 2개 중 1개가 빈사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죽진 않아서 응급조치 후 따뜻한 곳에서 요양시키는 중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느끼는 것은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건조해지니 눈이 마르고 가려워 잘못 비볐다가 시뻘겋게 충혈이 된다든지, 발뒤꿈치가 터서 갈라지고 온몸이 가렵다든지, 혈압이 갑자기 상승한다든지 등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증상들이 나타난다. 이럴 때 우리는 두 가지 방법을 번갈아 사용해가면서 대응해야 한다. 첫째는 다양한 조치들이다. 가습기를 틀거나 로션을 바르거나 모자를 써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둘째는 몸의 적응력을 키우는 일이다. 내복을 너무 빨리 입지 않고, 운동을 통해 몸의 열기를 유지하는 식으로 환경의 변화에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 둘의 조화가 필요하다.

내 지인 중에는 소리에 아주 민감한 이가 있다. 그는 약간의 소리에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소리에 초민감한 체질이다. 그래서 멀쩡한 방을 두고 빛과 소리가 새어 들어오지 않는 지하 방에서야 편안한 잠을 잔다. 철저하게 환경을 몸에 맞추는 방식이다. 그러니 몸은 약간의 부담도 점점 견디지 못하게 된다.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잠자리 문제로 고통을 겪게 된다.

식물들도 마찬가지다. 환경이 좋으면 잘 자라고 아름다운 잎들을 틔워내겠지만, 너무 '깔맞춤'으로 대접하면 점점 허약체질이 된다. 어느 정도 목이 마르게 두어야 물을 달게 흡수하고, 뿌리가 굵어져 잦은 충격에도 쉽게 상하지 않는다. 난과 수국 같은 경우 겨울의 모진 추위를 견뎌내야 비로소 봄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춥지 않은 채로 겨울을 난 난과 수국은 꽃을 피우지 못한다. 살아가는 데 어느 정도의 고난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축구 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환희에 차서 골 세리머니를 하는데 이때 몸에서는 다량의 도파민이 분출된다. 일종의 마약 성분이라 도파민이 자주 분출되는 삶을 살다가 은퇴하게 되면 금단 현상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이는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연예인이나 일의 성취도가 높은 사회 유명인사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화무십일홍이라는 데 있다. 환경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우리는 바뀐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평소의 작은 고난들이 귀중한 힘을 비축해줄 수 있다. 화분 흙이 마를세라 물을 듬뿍 주는 나 같은 이들에겐 더욱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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