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글쓰기는 노동과 비슷…반복과 반복이 있을 뿐"

송광호 2023. 11. 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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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국내 문학 최초로 사우디 진출
두 번째 장편소설은 내년 초쯤 발간될 듯…"이야기에 관한 소설"
소설가 김애란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샤르자=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소설가 김애란은 타고난 글쟁이다. 그의 소설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단어의 배치, 리듬감이 남다르다. 좋은 몸통을 타고난 세기의 테너 카루소나 파바로티처럼, 그의 글에는 타고난 재주의 편린이 묻어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재능의 결과가 아닌 지난한 노동의 과정이라고 김애란은 강조했다.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토후국 샤르자의 한 호텔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다.

"글쓰기는 지난한 노동 과정과 비슷해요. 반복과 반복이 필요합니다. 영감을 받아 아름다움과 특정한 리듬, 유려한 표현이 나올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의 경우 지난한 노동과 반복의 과정에서 그런 것들이 나옵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소설가 김애란 (샤르자=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일(현지시간) 샤르자의 한 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소설가 김애란. 2023.11.1. buff27@yna.co.kr

김애란은 그런 반복의 과정에서 잠시 벗어난 상태다. 그는 이날 개막한 샤르자국제도서전에 참석해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며 현지 독자들과 출판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가 샤르자에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 중동 국가 중에는 15년 전 요르단을 간 적이 있지만, 그때와 상황이 달라서 오기 전에 많이 긴장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출발할 때, 중동 상황에 대해 긴장하고 걱정됐는데, 와서 보니 그 긴장이라는 것도 공부가 부족해서 생긴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무지를 실감했고, 돌아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역시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추상이 아닌 구체,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사건과 사물을 바라봐야 함을 새삼 다시 한번 느꼈다고도 했다. 그는 "모든 세계에 타인에 대한 보통명사화(化)에 반대하는 작업, 그에 대한 저항 또는 지연시키는 작업이 문학, 그리고 도서전의 몫이나 자리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소설가 김애란 (샤르자=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일(현지시간) 샤르자의 한 호텔에서 웃음 짓는 소설가 김애란. 2023.11.1. buff27@yna.co.kr

중동에 관해 공부해야 할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조만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어로 번역돼 출간되기 때문이다. 사우디에서 현지어로 번역돼 출간되는 국내 문학은 '두근두근 내 인생'이 처음이다. 올해 봄에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조금씩 뒤로 밀렸다고 그는 설명했다.

"저도 아랍어판을 소장하고 싶어 기다리고 있어요. 물론 나라마다 출판 환경이나 속도가 다른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샤르자에서 열리는 국제도서전에 초대된 그는 2일 현지 독자들과 만났다. 대부분 청소년이었다. 김애란은 '슬픔 곁을 지키는 슬픔'을 주제로 독자들에게 말을 건넸다. 단편소설 '입동'을 주제로 한 강연이었다. 52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 차에 치여 잃은 젊은 부부가 겪게 되는 이야기다. 그는 "타인에 대한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좋은 상상력의 모습 아닐까 한다"고 했다.

현지 독자들 만난 김애란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는 한국으로 돌아간 후 장편소설 출간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매진할 예정이다. 스토리는 완성된 상태지만, 수정작업이 약간 남았다고 한다. 그래도 "기본 틀은 그대로 갈 것 같다"고 했다.

김애란의 설명에 따르면 새 장편 소설은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다. 몇 명의 인물이 나와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 인물의 행동을 묶는 키워드는 이야기다. 소설은 이르면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 아울러 써둔 단편들도 몇 편 있어 내년 또는 후년에 소설집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애란 작품집 [각 출판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김애란은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등 4편의 소설집과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출간했다. 20여년간 활동한 것에 비춰보면 다작은 아닌 셈이다.

가난하고, 불안한 청춘의 그림자를 그린 그의 소설들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팬덤을 형성했다. 김애란의 소설집은 2000년대 중반, 문학 좀 읽는다고 하는 '문청'들에게 '전공 필수 서적' 같은 책이었다. 당시 그는 소설을 쓰면서 "소설 안에 어떤 정직, 그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문학관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세월의 풍화를 몸으로 받아들이며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시간이 그의 몸을 통과하며 남긴 흔적들 때문이다.

그는 "신인 시절에는 문학에 대해 말할 때, 좀 무거워진 면이 있었다. 그때 말들은 그 마음의 진실함이 있었다"며 "지금은 몸으로 깨친 말들이 조금씩 더 생겼다.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깊어진 마음도 있다"고 했다.

소설가 김애란 [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제 그는 마흔을 훌쩍 넘겼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일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나가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런 '밀물과 썰물'을 경험하며 나이를 먹었다. 그는 이 기간을 "몸이 바뀌는 시기"라고 표현했다. 몸이 바뀌면서 그는 스스로에 대해 알아갔다. 자신이 "운문적 충동에 좀 더 끌리는" 소설가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에 따르면 소설가는 운문적 충동이 강한 사람, 산문적 충동이 강한 사람으로 나뉜다. 이 둘은 "기질과 피가 다른 것 같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운문적 충동을 느낄 때 '조금 더 즐겁구나'라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쓰면서 그는 "미적 충동"에 자주 이끌렸다. 이야기 구조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문장의 아름다움에도 집중했다. "소설이 이야기에만 의존할 거면 굳이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다. '이야기를 드라마나 웹툰이 아니라 왜 소설로 경험해야 하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장을 생각한다"고 김애란은 말했다.

샤르자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소설가 김애란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의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2011)이 나온 지 12년째다. 그동안 장편 여러 편을 쓰다가 그만두길 반복했다고 한다. 글쓰기란 왜 이처럼 어려운 일일까. 심지어 그처럼 재능있는 작가에게조차.

"내가 겪는 어려움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의 무거움보다 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어려움입니다. 작업할 때 엄살 부리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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