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섬산로드] 경이로운 최전방, 시인 기형도의 고향

신준범 2023. 11. 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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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안보교육장~해송정~망향전망대~구리동해수욕장~빠삐용 전망대~선착장 명소 순례
동방파제 칠면초와 억새가 가을 분위기를 더한다. 선착장을 잇는 다리가 길게 이어지고 가을 햇살에 반사된 바다가 경이로운 빛을 낸다.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 시작詩作 메모

요절한 시인의 고향은 찬란했다. 하늘은 순수한 파랑이었고, 바닷물은 맑았다. 왁자지껄 군인들과 주민들, 일하러 온 사람들이 선착장을 오갔다. 사람도 섬도 늙어가는 다른 섬들에 비하면, 생기로 가득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공원 한편에 연평도延坪島를 고향으로 둔 기형도 시인의 안내판이 있다. 시인의 부친은 6·25 때 고향인 황해도를 떠나 이곳으로 건너왔고, 1964년 경기도 광명으로 옮겨갔다.

기형도 시인(1960~1989).

시인이 다섯 살 되던 해에 뭍으로 이사했으니, 고향 섬에 대한 기억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 첫 시집 발간을 앞두고 뇌졸중으로 29세에 숨을 거두었다.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가난했던 시절의 슬픔을 아름다운 언어로 노래했다는 평을 받았다.

훈훈한 외모의 여행 유튜버들이 연평도의 주인공들이다. 김웅진(@웅진고웨이)씨는 국내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일상을 소개하고 있다. 구독자 13여만 명의 인기 유튜버이며, 지난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가이드 없이 홀로 완주했다. 이 과정에서 5,416m 고개를 넘었다. 꽃미남 같은 외모와 달리 육군 ROTC 중위로 전역한 강한 체력과 추진력을 갖춘 여행가다.

임효빈(@바깥양반)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출신으로 연기학원 강사로 6년간 일하다 2021년 국토대장정을 시작으로 여행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는 예의 바르고 활달한 성격의 옆집 총각 같은 정감 가는 사내다.

연평도 바다를 장난스럽게 즐기는 여행 유튜버 김웅진(왼쪽)씨와 임효빈씨.

블랙야크 섬&산100 인증지점이 안보교육장이다. 대부분 인증 장소가 산 정상이나 고개, 관광 명소임을 감안하면, 특별한 인증지다.

2010년 북한의 포탄이 민가를 포격한 현장을 교육 현장으로 보전했다. 천장이 무너지고 불에 타서 검게 폐허가 된 민가를 보자 덜컥 분단국가이자 휴전 중이라는 현실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북한이 160여 발의 포탄을 쏘아 우리 군인 2명과 주민 2명이 목숨을 잃었고, 민관 합쳐 60여 명이 부상당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인천으로 피란해 몇 개월을 머무르다 돌아왔으며 지금도 "어디서 큰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비명을 지른다"고 하는 주민들도 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포격전 트라우마는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골목에서 만난 주름 깊은 노인은 "사진 다 찍었으면 육지로 돌아가라"고 했으나, 아주머니가 와서 "포탄이 떨어졌던 기억 때문에 외지인이 다칠까봐 그러는 것"이라 일러주었다.

망향전망대에서 본 북한 황해도 일대. 북한 땅과 10여 km 거리다.

조기잡이 알려준 임경업 장군

숙소에 짐을 풀고 민박집 차량을 얻어 타고 길을 나섰다. 다시 선착장으로 갔다. 반포대교마냥 물에 잠기는 1층 길과 상시 차량이 오가는 2층의 길이 있었다. 중간쯤에서 바다로 길이 나 있었다. 송아지마냥 순둥한 곡선의 무인도가 있었다. 갈 수만 있다면 조각품 같은 초원섬인 구지도求地島에서 하룻밤 야영하고 싶었으나,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저어새의 터전이며 특정도서 233호로 지정된 섬이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멘트 길은 빠르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투명한 바닷물과 반짝이는 파도, 실루엣으로 흘러가는 연평도 능선. 여행을 즐길 줄 아는 두 청년이 신발을 벗고 텀벙텀벙 걸었다. 웃음이 묻어나는 파도 놀이, 시간이 평소보다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관광객은 우리뿐이었다. 멋진 해변도, 예술 작품 같은 바위도, 탁 트인 전망대에도 민간인은 우리뿐이었다. 출입이 허용된 곳이지만 연휴가 끝난 섬은 적막이 짙게 깔려 있었다.

물빛이 유난히 투명한 선착장 부근의 시멘트 길. 썰물 때면 갯바위인 용뒤까지 땅이 이어진다. 두 사람 사이로 구지도가 보인다.

낮은 산등성이에 팔각정이 있었다. 동진정에 올라서자 방파제와 마을이 차분히 펼쳐졌다. 이토록 평화로운 어촌의 이면에 전쟁의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니 놀라웠다. 최전방이라 상세한 지도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길가의 마을 주민께 묻자, 매일 오르는 산책 코스를 일러주었다. 임도를 따라 수월하게 고도를 높이더니 바닥에 깔린 코코넛 매트를 따라 억새와 숲이 무성한 길로 이끌었다. 풀이 높았으나 걷기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산책길 같은 산길은 이내 까치산 정상에 닿았다. 2층 정자인 해송정에 서자, 배를 타고 오느라 답답했던 속이 개운해졌다. 산을 내려서자 작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연평도성당이다. 까치산에서 보았을 때 눈에 띄는 한옥 건물이 있었다. 골목을 지나 다가가보니 충민사다. 문이 잠겨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잘 관리되어 있었다.

충민사忠愍祠는 임경업(1594~1646)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다. 임경업 장군이 청나라에 맞서 명나라의 도움을 청하러 가던 중 연평도에 잠시 정박했는데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해 가시나무(엄나무)를 갯벌에 꽂아 고기를 잡는 것을 보고 연평도 주민들이 따라하게 되었다. 이것이 조기잡이의 시초였다. 이후 주민들이 임경업 장군을 기리는 사당을 만들고 봄마다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분홍색으로 짙어져가는 칠면초 간척지의 낭만을 즐기는 두 사람. ROTC 중위 출신인 김웅진씨는 '웅진고웨이'라는 이름으로 여행 유튜버로 활약 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출신인 임효빈씨는 '바깥양반'이라는 이름으로 여행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조기역사관 부근의 절벽 전망대. 멀리 보이는 섬과 능선은 북한땅이다.

연평도는 일제강점기와 1960년까지 조기잡이로 유명했다. 물 반 고기 반이라 하여, 조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퍼 담는다고 했을 정도며, 어시장을 뜻하는 파시波市를 '황금의 파시'라 불렀다. 당시 어획고는 천문학적 수치로 연평어업협동조합의 1일 출납고가 한국은행 출납보다 액수가 높았다고 한다. 뱃노래에도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세, 황금바다 연평 바다로 돈 실러 가세"라는 가사가 전한다.

동북쪽 끝 전망대인 망향전망대에 닿자 10km에 불과한 황해도 땅이 가깝다. 북방한계선NLL까지 2km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데, 중국 국기를 단 배가 여러 척 보인다. 민감한 지역이라 접근이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중국 어선들이 떼를 지어 고기를 잡는다고 한다.

망향의 심정을 모르는 세대지만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잠든 고향 땅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라는 탑에 새겨진 망향가 가사에서 실향민 마음이 와 닿는다.

구리동해수욕장 넓은 주차장이 텅 비었다. 몽돌인데 파도가 닿는 곳은 모래다. 멀리 황해도 땅 능선이 구름처럼 뻗었다. 귀순 안내문과 철조망이 있는, 인적 없이 파도 소리만 있는 해변의 평화가 조금 이상했다.

뉘엿뉘엿 지는 해와 함께 군인들이 다가와 친절한 어조로 "이 시간엔 해안을 봉쇄하니 나가달라"고 했다. 남자인줄 알았는데 여군 장교와 사병이었다. 먼 섬에서 고생하는 딸과 아들이 안쓰러웠으나 빨리 해변을 떠나는 게 돕는 것이었다.

억새가 절정을 이룬 동방파제 간척지. 직사각형의 간척지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거리는 1km이다.
노을 명소인 구리동해수욕장. 해변 양쪽 끝에는 바위지대가 있다. 오후 5~6시면 해변 출입이 통제된다.

분홍빛 대초원, 칠면초 간척지

가장 경치가 좋다는 평화공원을 마지막으로 찾았다. 제1연평해전과 제2연평해전, 연평포격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비 앞에서 묵념했다. 평화롭지만 공기가 무겁게 느껴진 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조기박물관 2층 전망대에 올라서자 일명 빠삐용절벽을 닮은 북서쪽 해안선이 훤히 드러났다. 구축함 뱃머리처럼 거칠게 튀어나온 절벽 해안선과 부드러운 해변의 조화. 망망대해와 한없이 길게 뻗은 황해도 땅. 현실과 동떨어진 듯 기형도 시가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가라, 어느덧 황혼이다 / 살아있음도 살아있지 않음도 이제는 용서할 때 / 구름이여, 지우다 만 창백한 생애여 / 서럽지 않구나 어차피 우린 / 잠시 늦게 타다 푸시시 꺼질 / 몇 점 노을이었다'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중에서

동방파제 칠면초 간척지. 관광 명소로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드넓은 분홍 초원과 펼쳐진 바다는 기념사진 명소로 꼽아도 손색 없었다.
동방파제 부근의 책섬 해안선. 책을 쌓아놓은 듯 층층이 쌓인 바위가 있어 이름이 유래한다.

시인은 1980년대에 시를 썼고, 세월은 30년 넘게 흘렀다. 다섯 살 때 섬을 떠난 그의 기억엔 연평도가 없을 텐데 쓸쓸하고 장엄한 느낌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시인이 아홉 살 때 든든한 가장이던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져 가계가 기울고,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이 무렵부터 시를 썼다는 시인의 알 수 없는 불안 같은 황혼이었다.

사진 촬영을 맡은 민미정씨는 봐둔 곳이 있다며, 야영을 고집했다. 매주말 백패킹을 할 정도로 열혈 야영 마니아였기에, 곧장 그리로 갔다. 선착장 맞은편 방파제 끝 공터였다. 동방파제라 불리는 축구장 여러 개 넓이의 간척지인데 분홍색 칠면초가 환상적이었다. 강화군 석모도나 교동도 칠면초 군락지는 갯벌이라 발이 빠져 걷기 어려운데, 바싹 햇볕에 마른 딱딱한 땅이라 쾌적했다.

고기잡이를 마친 배들이 간간이 들어오고, 별들이 제 집을 찾아왔다. 밤하늘도 현실감 없긴 마찬가지였다. 연평도의 밤은 도시의 밤보다 거대했다. 도시의 아침보다 경이로웠다.

인천행 배에 올라 섬을 보았다. 골목에서 만난 주름 깊은 노인이 손 흔들고 있었다.

연평해전의 상흔이 담긴 참수리호가 전시되어 있는 함상공원.

섬 여행 가이드

둘러볼 만한 명소는 안보교육장, 까치산 해송정, 망향전망대, 구리동해수욕장, 평화공원 빠삐용전망대, 가래칠기해변 등이다. 명소를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 순회 가능하다. 15km 거리이며 가파른 곳이 있고, 찻길이 많아 도보로 온전히 둘러보긴 쉽지 않다.

자전거 또는 민박집 차량을 이용하여 둘러보는 것이 효율적이다. BAC인증지점인 안보교육장(연평면 연평중앙로12번길 25)은 마을 안쪽에 있다. 연평성당 뒤쪽 산길을 따라 오르면 10여분 만에 까치산 정상인 해송정에 오를 수 있다. 임도처럼 난 코코넛 매트 길을 따르면 동쪽 해안선 도로로 이어진다. 책섬을 따라 이어진 방파제는 억새와 칠면초, 바다가 어우러진 알려지지 않은 산책 코스다. 직사각형의 동방파제 개척지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시멘트 길이 있다. 직사각형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거리 1km이다.

숙식 연평도 플러스 가이드 참조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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