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손민수 "음악은 하나의 모습에 머물지 않아"

강애란 2023. 11.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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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회화적 연습곡' 리사이틀…"17곡 하나하나 뚜렷한 캐릭터"
미국 NEC서 임윤찬 등 제자 교육…"음 틀리게 치더라도 본질 담은 연주해야"
피아니스트 손민수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 취하고 있다. 2023.11.2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임윤찬의 스승'으로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유명한 피아니스트 손민수(47)가 오랜 시간 마음에 품어왔던 음악을 들려준다.

이달 23일 서울에서 시작해 대구, 광주를 순회하는 리사이틀에서 그가 선택한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이다.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인 올해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넘어가기에는 아쉬움이 컸다는 손민수를 지난달 30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손민수는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라흐마니노프는 자기 연주를 음반으로 많이 남겨뒀다. 그의 연주를 들을 때면 마음속의 움직임이 컸다"며 "특히 연습곡은 피아니스트라면 반드시 거쳐 가는 작품으로 한두곡이라도 꼭 배우게 된다"며 "어렸을 때부터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를 들으며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동경을 품고 있었다"고 답했다.

회화적 연습곡은 작품번호 33번과 39번 2권이다. 각각 8개, 9개 곡으로 구성돼 있다. 제목은 연습곡이지만,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난곡(難曲)으로 꼽힌다.

손민수는 지난해 리사이틀에서도 피아노곡 역사상 가장 어려운 곡으로 꼽히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선보인 바 있다. 이 곡은 슈만이 "이 작품을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은 리스트 그 자신뿐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곡이다.

왜 또 어려운 곡을 선택했을까. 손민수는 "듣기에도 어렵고, 치기에도 어려운 곡은 맞다. 다만 기교적으로 어려운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것은 (곡 선택을 할 때) 제일 끝자락에 있었던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어 "복잡하고 난해한 곡만 어려운 건 아니다"라며 "때로는 가장 단순하고 간단명료하게 들릴 수 있는 곡들도 그 안을 파고 들어가면 어려움이 있다"며 "이 곡을 선택한 것은 오랜 시간 마음에 가득 차 있던 음악을 찾아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화적 연습곡'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음울하고 어두운 장면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그 과정을 거쳐 나온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의 순간도 존재하고요. 17곡 하나하나에 너무나 뚜렷한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죠."

피아니스트 손민수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 취하고 있다. 2023.11.2 ryousanta@yna.co.kr

손민수는 연주자인 동시에 교육자이기도 하다. 지난 9월부터는 2015년부터 8년간 몸담았던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떠나 미국 보스턴에 있는 뉴잉글랜드음악원(NEC)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NEC는 손민수의 모교로 그는 이곳에서 최근 세상을 떠난 미국 거장 피아니스트 러셀 셔먼의 가르침을 받았다.

손민수는 "한예종을 떠나는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결정 중 하나다. 하지만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던 단 하나의 학교가 NEC였다"며 "18살 때부터 다녔던 학교인 데다 이곳 주변 분위기 속에서 제 음악을 키워왔다. 저에게는 음악의 고향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현재 손민수가 NEC에서 가르치는 학생은 그를 따라 미국 유학길에 나선 임윤찬을 포함해 11명 정도다. 국적도 중국, 대만, 캐나다, 미국 등 다양하다.

그는 "미국에 돌아가면 마치 먹이를 물고 돌아오는 어미새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저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다"며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부족할 만큼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다. 연주자와 교육자를 병행해나간다는 것은 큰 도전"이라고 고백했다.

피아니스트 손민수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 취하고 있다. 2023.11.2 ryousanta@yna.co.kr

교육자로서 손민수는 연주의 테크닉이 아닌 음악이 가진 본질을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하고, 독창적인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올 때"라며 "바른 음을 치는 것보다 틀리더라도 연주에 맞는 음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에게도 제발 틀려도 좋으니 있는 그대로 연주하라고 한다"며 "마틴 루서 킹 같은 당대 최고의 연설가들도 보면 때로는 버벅거리기도 하고, 단어를 잘못 발음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어떤 부분에서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 연설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콩쿠르에 나가면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너무 강하게 해요. 우리가 녹음된 음반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음반에는 틀린 음이 없잖아요. 틀리지 않는 게 귀를 만족시키는 요소가 될 수는 있어도 좋은 연주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어요."

그렇다면 연주자가 자신의 연주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손민수는 음악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확신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오히려 확신을 갖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가 맞는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오히려 흥미가 떨어진다"며 "때로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길로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장애물을 넘어 찾아야 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말했다.

"음악가는 완성된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직업이 아니에요. 매일 날씨가 바뀌고, 사람의 마음이 변하듯 음악도 하나의 모습으로 머물러 있지 않아요. 매일매일 바뀌죠.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오늘 느낀 만큼 음악에 다가가는 게 음악가의 태도죠."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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