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소아 보호자도 잠시 쉼표"…'넥슨 도토리하우스' 개소

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2023. 11. 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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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넥슨 100억 기부+정부 지원으로 세운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병원내 시설 아닌 독립된 단기의료돌봄센터는 서울대병원이 최초
24세 이하 소아청소년 중 거동 어렵고 산소치료 등 요하는 환자 등
온종일 환아 간호·돌봄 매인 부모 등 보호자들의 일시적 휴식 지원
소청과 전문의·숙련된 간호인력 상주…의료·돌봄外 음악치료 등도
김민선 센터장 "도토리 같은 귀한 아이들, 건강한 참나무로 자라길"
11월 1일 정식 개소한 서울대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에서 의료진이 환아를 돌보고 있는 모습. 지난 7월부터 입원 결정을 위한 사전외래를 시작한 서울대병원은 지난달 30일부터 입원환자를 받았다. 서울대병원 제공

"민수(가명)는 (태어날 때) 산소공급이 안 돼서 숨을 안 쉬고 나왔어요. 다들 포기한 상태,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24시간 돌보면서 밤에도 많이 케어(care)해야 하는 상태다 보니 개인의 삶은 감히 생각지도 않고 있어요. 이렇게 누워 있지만, 저한테 정말 소중한 둘째 아이입니다."

저산소성 뇌병변을 안고 있는 민수는 이제 겨우 5살이다. 신생아 중환자실행(行)이 결정된 이후 아이의 돌봄은 자연히 엄마의 몫이 됐다. 기나긴 밤은 에너지 음료에 기대어 버틴다. 동생에게 손이 많이 가다 보니 놀이공원 한 번 데려가 준 적이 없는 첫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엄마는 매일 붙어 있는 둘째 아들한테도 "미안하다"고 했다.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병실을 돌며 회진 중인 김민선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센터장). 서울대병원 제공


중증소아 대상 재택의료 시범사업(보호자 없는 단기입원진료 제공)을 통해 민수를 봐온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민선 교수 보호자의 '24시간 밀착돌봄'이 필요한 중증소아환자 문제에 주목했다. 퇴원 후에도 인공호흡기 등의 도움을 상시 받아야 하는 중증 환아들은 집과 병원이 분리되지 않는다. 거의 의료기관에 준하는 의료·돌봄이 요구된다는 뜻인데, 이를 감당하는 당사자는 물론 대부분 부모다.

간호와 돌봄에 매여 있는 부모들은 본인의 건강검진은 물론 수술조차 미루는 경우도 다반사다. 김민선 교수·최유현 교수팀이 지난 2020년 중증 소아청소년 74명의 보호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이들은 하루 평균 14.4시간 돌봄에 매달리고 있었고 5시간여 '쪽잠'(5.6시간)을 자는 게 일상이었다. 수면부족이 만성화된 보호자들이 개인생활에 쓰는 시간은 2.4시간에 그쳤다.

'내가 실수하면, 아이가 잘못될 수 있다'는 책임감은 행동반경을 제한할 뿐 아니라 심리적 멍에가 되기도 한다. 보호자들이 김 교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하나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다. '왜 이 아픔이 가족에게만 맡겨져 있는지'를 고민했던 김 교수는 '단기 휴식 서비스(respite care)'란 개념을 접하고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

단기휴식 서비스란 인공호흡기·기관절개관·비위관 사용 등 민수와 같이 의료 의존상태(technology-dependent state)에 놓인 환아 부모가 지속적 돌봄부담에서 벗어나 단기간 휴식과 회복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개념이다. 해외에서는 소아청소년 완화의료 또는 장애지원 서비스의 일환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현판. 서울대병원 제공


절실한 필요에도 막대한 예산에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손을 내민 건 넥슨이다. 김 교수에게 직접 전화해 해당 사안에 관심을 표한 넥슨은 문제 해결을 위해 100억을 기꺼이 내놓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 2013년 국내 첫 어린이 재활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지원한 넥슨은 지난해 고인이 된 창업주 고(故) 김정주 대표의 유지를 이어 전국 권역별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에 힘쓰고 있다.

여기에 보건복지부가 국고지원금 25억을 보태면서 총 125억을 확보서울대병원은 논의 시작 약 5년 만인 1일,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를 정식 개소했다. 지난해 7월 첫 삽을 뜬 지 1년 3개월 만이다.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의 단기입원·돌봄치료가 가능한 독립형 어린이 단기돌봄의료시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종로구 연건동 소재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불과 5분 거리인 원남동에 위치한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는 연면적 997㎡(302평)에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지어졌다. 센터 내에는 총 16개의 중증소아 단기입원병상이 마련됐다. 병실은 모두 2인실(4실)과 4인실(2실)로 구성됐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민선 교수(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장)가 지난달 30일 언론 간담회에서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향후 운영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김민선 교수는 "처음에는 외국처럼 다 1인실로 구조를 짰는데, 1인실은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 며칠만 (아이를) 맡겨도 100만원이 넘게 나오는데, 저희가 그걸 감면해줄 순 없는 거더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의료 관련 적자는 정부의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 사후보장 시범사업에 포함돼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센터에 입원하려면 '24세 이하 소아청소년'이면서 △자발적 이동이 어려운 와상환자(추후 확대 고려) △의료적 요구(인공호흡기·산소흡입·기도흡인·경장영양·자가도뇨·가정정맥영양) 필요 △급성기 질환이 없는 안정 상태 등 3가지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환자들의 입원 여부는 사전외래를 통해 결정된다. 서울대병원은 이미 올 7월부터 센터 입원예약을 위한 사전외래 진료를 진행해 왔다. 김 교수는 "타 병원 환자라면 저희 병원에 (일부러) 한 번 오셔야 하는 등 불편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센터에서 아이를 안전하게 돌보려면 평소 상태를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세한 병력 확인과 신체검진 등 보통 30분~1시간 정도 보호자와 환자를 면담한다.

입원 기간은 해외사례를 참고해 '1회당 최대 7일(7박 8일)'로 연 5회, 최대 20일(20박 21일)까지 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다만, 다른 선진국의 경우 재택의료 등이 활성화돼 이용기간이 이같이 설정된 부분도 있다는 설명이다.

입원환자 이용부담 완화를 위해 병실이 모두 2인실·4인실인 도토리하우스의 내부는 아이들이 센터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숲'을 컨셉으로 꾸며졌다. 이은지 기자


센터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5명이 2교대로 상주하며, 간호인력까지 총 25명의 의료진이 아이들을 돌보게 된다. 간호사·간호조무사는 환자 안전 제고를 위해 '본원 일반병동 수준 이상' 인력을 배치했다. 전원 소아병동 및 중환자실에서 3년 이상 근무한 숙련된 인력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제공돼 보호자는 입원 당일에만 2시간 가량 머물며 환자 상태를 인수인계하면 된다.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해 입원환자를 즉시 본원 어린이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는 체계도 갖췄다. 센터에 상주하는 비상계획과 직원이 구급차 운전업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입원하게 될) 많은 아이들이 뇌에 문제가 있는 환아들로 체온조절이 안 되거나 심박수가 막 움직이고 호흡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저희도 '24시간' 돌본 적은 없다 보니 최근 몇 달 간 관련 스터디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는) 센터 내에서 응급상황에 대한 조치가 가능하지만, (자체)대응이 어려울 때는 소아중환자실에 연락해 환자를 이송하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암연구소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통로는 내년 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의료적 돌봄 외 다양한 치료·놀이활동이 제공된다. 캐릭터 인형을 활용한 인형극을 포함해 종사자들이 환아를 찾아가는 음악치료·미술치료도 이뤄진다. 이은지 기자


놀이치료실과 상담실 등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치료 및 휴식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도 꾸며졌다. 센터에서는 음악치료사가 병동을 다니며 1 대 1 또는 그룹 음악치료를 제공하는 한편 형제자매나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하기로 했다. 자원봉사자들도 매일 오전·오후로 아이들과 놀이 활동을 진행한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취재진이 돌아본 센터 내부에는 여러 사운드북을 비롯해 '핑크퐁 아기상어' 놀이기구 및 인형들이 가득 구비돼 있었다. 화이트톤을 바탕으로 한 인테리어를 두고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최대한 병원 같지 않게 만들어보려는 게 목표였는데, 아이들이 중증도가 높다 보니 안전하게 하려면 뭐(장비 등)가 계속 들어오고 해서 결국 병원과 비슷해지더라"며 웃었다.

복지부의 중증소아 단기입원서비스 시범사업 수가를 적용함에 따라, 환자 측은 입원기간 1주일 기준 10만원대 비용을 부담(본인부담금 5%)하게 될 전망이다. 환자 특성에 따라 일부 차이는 발생할 수 있다.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의 별칭은 '도토리하우스'다. 센터를 이용하는 모든 환아를 도토리에 빗대 건강한 '참나무'로 자라나길 소망하는 마음을 담아 지었다.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5분 거리인 원남동에 위치한 센터 외경. 서울대병원 제공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의 또다른 이름은 '도토리 하우스'다. △그루터기 상담실 △나무그늘 쉼터 △샘물 목욕실 △도토리수호대 당직실 등의 귀여운 방명(名)이 붙은 이유다. 김 교수는 "환아들이 도토리와 같이 참나무로 성장할 귀한 씨앗이라 생각한다. 도토리가 나무로 자랄 때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보살핌을 제공하는 집이란 뜻"이라며 "충전도 하고 휴식도 하며 다같이 잘 자라가길 바라는 희망과 소망을 담아 지었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은 모든 환자가 입원기간 20일을 '풀(full)'로 이용한다고 가정할 때 연간 234명(병상가동률 80% 기준)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는 12월 초까지 예약이 찬 상태다.

김 교수는 "(아직은) 보호자들이 '내가 5~6시간 자려고 아이를 맡겼다가 혹시 나빠지면 그 죄책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란 걱정들을 많이 하신다"며 "만약 예약이 쇄도할 경우, 중증도가 정말 높은 아이, 또는 싱글맘·싱글대디 등을 우선순위에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는 (원내 시설이 아니라) 독립된 센터라는 게 중요한 모델인 것 같다. 결국 각 지역별로 독립된 (단기돌봄)센터가 생겨서, 의료를 담당해주는 지역 병원과 연계되는 게 매우 중요할 거라 생각한다"며 도토리하우스가 전국적으로 퍼지길 바라는 희망도 내비쳤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소재 서울대병원 암연구소에서 열린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개소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김영태 원장은 "'부모님'은 간병인에게 맡겨도 '내 아이'는 그렇게 못하는 게 부모다.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를 통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와 가족이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가중앙병원으로서 소아청소년 환자에 대한 전인적 치료 등을 더욱 강화하고 공공의료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강조했다.

넥슨재단 김정욱 이사장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미래인 어린이를 향한 진심으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후원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개소식에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 이사장, 이재교 NXC 대표이사,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 등이 참석해 축하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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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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