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라는 소문난 잔치의 끝은?

김연희 기자 2023. 11. 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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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에서 직접 의사 확충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증원 규모는 발표되지 않았다. 의협은 긴급회의를 열어 ‘일방 추진 시 총력 대응’을 결의했다.
10월19일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가 열렸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명확히 밝혔다. 10월19일 윤석열 대통령은 충북 청주시 충북대학교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필수의료 혁신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지역 필수의료를 살리고 초고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의료 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은 필요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심이 쏠린 ‘증원 규모’는 발표되지 않았다. 본래 ‘필수의료 혁신회의’에서 의대 정원은 주요하게 예정된 논의 사항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계획으로는 현재 교육부 소관인 국립대 병원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한다는 발표가 핵심 안건이었다. 그러나 10월19일 ‘필수의료 혁신회의’를 일주일가량 앞두고 증원 숫자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보도가 앞다투어 나오면서 의대 정원은 삽시간에 포털 메인을 장악하는 이슈로 떠올랐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부터 대한의사협의회(의협)와 의료현안협의체를 꾸려 14차까지 의대 입학정원 논의를 이어왔다. 의협이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자 8월부터는 이용자 단체·시민사회·전문가 등으로 참여 테이블을 넓힌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했다. 논의 과정에서 나온 얘기들을 종합하면 의대 정원 확대 규모는 350~500명 정도로 점쳐졌다. 한국의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18년째 3058명으로 동결돼 있다.

‘필수의료 혁신회의’ 날짜가 가까워지며 2025년 대입부터 의대 정원을 1000명 더 늘리거나, 대통령 임기 내 한 해 3000명을 더 확대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추석 연휴 직전 윤석열 대통령에게 의대 정원 문제를 보고했고, 2000년 의약분업으로 줄어든 정원 10%(351명)를 되살리는 안, 지방 국립대를 중심으로 521명을 늘리는 안을 제시했으나 윤 대통령이 1000명 이상 증원을 주문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의대 정원 확대는 “근거에 입각해 원칙대로 추진할 것이며 의료계에서 빡빡 우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이 10월17일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공식적으로는 “의대 정원 숫자는 정해지지 않았다”라는 입장이다.

10월19일 ‘필수의료 혁신회의’ 직후 발표된 안을 보면 정부는 ‘의대의 수용 역량과 입시 변동 등을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증원’하겠다고만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잇따른 보도 이후 거세지는 의사단체의 반발을 고려한 듯 “국민을 위한 정책 효과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현장 의료인, 전문가들과 우리 정부는 충분히 소통할 것”이라며 의료계와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OECD와 의사 인력 격차 점점 커져가

이날 발표된 계획에는 새로 양성된 의사 인력이 지역과 필수의료로 유입될 수 있도록 수가를 지원하고,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료분쟁 발생 시 의료인의 법적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이 담겼다. 의협은 의사 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사를 배치하는 정책의 실패로 기피 과 문제와 필수의료 공백이 발생했다고 주장해왔는데, 필수의료 분야에 몸담은 의료인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이러한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자료:보건복지부

OECD 국가와 비교해 한국의 의사 수가 적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5명으로 OECD 국가(평균 3.7명) 가운데 멕시코(2.4명) 다음으로 적고, 한의사를 제외할 경우 2.1명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 ‘응급실 뺑뺑이’ 등 필수의료 공백으로 인한 사건들이 기사화되고, 긴 시간 진료를 기다리거나 마땅한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경험이 늘어나면서 의사 부족은 피부로 체감되는 문제가 되었다.

올해 1월 보건복지부는 내부용으로 ‘의사 인력 참고자료’를 만들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이 문건을 보면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1000명씩 증원해도 2035년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3.37명으로 OECD 평균(4.5명)에 미치지 못했다.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OECD 국가 대부분이 최근 10년간 의대 정원을 크게 확대한 것도 확인되었다. 2010년과 2020년의 한 해 의과대학 졸업생 수를 비교하면 미국은 7868명, 프랑스는 2968명, 일본은 1394명이 늘어났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의대 졸업자 수는 2006년 9명으로 OECD 평균(8.9명)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2020년에는 한국 7.2명, OECD 평균 13.6명으로 격차가 벌어졌다(〈그림〉 참조).

최근 몇 년간 수행된 ‘의사 인력 추계’ 연구들은 구체적 숫자는 다르지만 일관되게 국내 의사 수급난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의사 인력은 2030년 1만4000여 명, 2035년 2만7000여 명이 부족해진다.

의협은 OECD와 비교는 의사 인력 부족을 따지는 적합한 잣대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10월17일 CBS 라디오에 출연한 대한의료정책연구원 우봉식 원장은 “국가마다 다른 의료 공급 구조, 의료 이용 문화를 고려해야 한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진료 대란은 의사 수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 제도적인 문제다”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지하 1층 대강당에서 10월17일 '의대 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가 개최되었다. ⓒ시사IN 조남진

‘필수의료 혁신회의’를 이틀 앞둔 10월17일 의협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가 개최되었다. 전국 시도의사회·대한전공의협의회·대한개원의협의회 등 의사단체 대표 81명이 온·오프라인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결의문에서 의료계 대표들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할 경우 전국 14만 의사들은 정해진 로드맵에 따라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강력히 저항해나갈 것임을 천명한다”라고 밝혔다. 파업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어진 취재진 브리핑에서 이필수 의협 회장은 “(복지부와 의협이 의대 정원을 논의하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대한의사협회는 유연성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과 관련해 기존보다 열린 태도를 내비친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회장의 자리도 마련돼 있었으나, 박 회장은 긴급 대표자 회의만 참석한 채 브리핑에는 나오지 않았다. 2020년 의료계 파업 때는 전공의들이 집단 휴진의 주축이 되었다. 이번에도 전공의와 의대생 상당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고 있지만 2020년 투쟁 이후 동력이 많이 소진되었고, 구속 수사 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단체행동은 주저하는 분위기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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